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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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러시아에 가다(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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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반니노 과레스끼 지음

유니스 윤경남 옮김

 

 

<삽화: 조반니노 과레스키>

 


 
(지난 호에 이어)


지옥의 문턱에서


오늘은 빼뽀네에겐 아주 기쁜날! 우주 세포단 일행은 트랙터 공장과 콜호즈를 방문한 다음에, 개간된 옥토가 끝없이 펼쳐져 있는 평원을 20시간이나 계속해서 기차 여행을 했다.


이러한 방문은 일행에게 소비에트 연방의 농업 자원과 공업의 능률에 대한 개념을 심어주긴 했지만, 그것은 그렇게 큰 감명을 주지는 못했다. 실제로 계속해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은 서방 세계를 더 좋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의혹과 그릇된 생각들은 싹 없어질 거라고 빼뽀네는 생각했다. 서방 세계의 견해는 결국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으므로. 그들이 드넓은 모스크바 거리를 타고 다니던 호화판 초현대식 버스는 우크라이나에서 진흙탕 길을 흔들거리며 달리던 수송 차량과는 아주 달랐다.


그리고 아무리 둘러보아도 볏짚이엉을 엮어서 얹은 헛간도 없었으며 오직 하늘 높이 치솟은 마천루들뿐이었다. 서방세계의 견해를 대표하는 돈 까밀로 조차 잠깐 동안 말문이 막힐 정도였다.


“그것 때문에 실망할 건 없소, 동무.” 빼뽀네는 돈 까밀로의 귀에 대고 소곤댔다.


“동무의 눈으로 직접 보고 있는 것조차도 선전이 창출해 낸 신기루랍니다. 여기 있는 동안, 만약에 운동을 하고 싶으면 크레믈린 궁 근처를 산보하시면 됩니다. 둘레가 겨우 3마일밖에 안되니까요.”


빼뽀네는 페트로프나 동무가 준 자료를 가지고 되풀이해서 설명했다. 그의 음성엔 마치 그가 자기의 두 손으로 모스크바를 건설하기나 한 것처럼 자부심이 들어 있었다. 


방문객들이 찬탄하는 말에 오리고프 동무는 기쁜 마음에 몸이 떨릴 지경이었다. 그는 냉담하고 무관심한 관료주의자만은 아니었다. 한 달에 1천 루불을 받는 대가로 적어도 1천 루불 값어치의 일을 열심히 했다. 


그는 자신이 보잘것없지만 공산주의 국가의 거대한 조직 속에서 중요한 일부분을 맡고 있다는 확신 때문에 항상 행복하게 생각했다.


“1루불을 만드는 데는 l백 코펙이 필요하고, 1백만 루불을 만드는 데는 1천 루불의 천 배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나의 l코펙이 없다면 1백만 루불은 완전한 게 못 된다.”


이것이 그가 사회를 보는 태도였다. 그리고 그의 판단은 보기보다 어수룩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단 한 개의 코펙을 투자한다는 것은 그에게 자신이 곧 백만장자라는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방문객들이 입을 벌리며 찬탄하는 것에 그는 자랑스러운 마음이 생겼다. 그는 그의 방문객들이 모스크바에서 놀랄만한 것은 다 섭렵했다고 생각하자, 모스크바 관광의 예비 단계가 끝났음을 알리도록 페트로프나에게 지시했다.


“오리고프 동무 말씀이, 여러분들은 이제 다리를 뻗고 앉아서 쉬어도 된다고 하십니다.”


페트로프나가 큰 소리로 알렸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걸어서 호텔에 가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이삼백 마일 밖엔 안 되니까요.”


그들은 위풍 있는 광장 한가운데에서 버스를 내렸다. 오리고프는 마치 별것 아닌 어떤 일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일행을 이끌고 승강기가 있는 작은 건물로 들어갔다. 그 다음에 그들은 땅속 깊이 내려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이 지하도로 내려갈 때 페트로프나 동무가 말했다. “이것이 지하철입니다!”


유명한 모스크바의 지하철은 바빌론 식의 웅장함이 있었다. 가는 곳마다 구리와 대리석으로 된 조각품과 양각과 그림들과 반짝이는 유리창 등으로 장식이 되어 있었고, 바닥은 모두 밍크를 깔아놓은 듯했다.


 빼뽀네와 그의 일행은 압도되었고 오리고프 동무는 만족감으로 끓어 올랐다. 스카못지아가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그는 나직한 음성으로 페트로프나를 불렀다.


“이것은 동무 다음으로 가장 멋지고 화려한 소비에트 연방의 모습이군요!” 


페트로프나는 너무 놀라서 어쩔줄을 모르다가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동무, 소비에트의 예술과 공생이 이뤄놓은 이와 같은 업적은 농담할 일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동무, 난 농담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스카못지아가 고집했다.


그가 너무나 진지하게 말했기 때문에 한 순간 페트로프나는 당원으로서의 위엄을 잊고, 스카못지아에게 자본주의적인 미소를 보냈다. 그럴 동안 빼뽀네는 돈 까밀로를 툭 쳤다.


그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이런 것 상상해 봤어요? 우리 두 사람이 다 관련되어 있는데 그 신부님은 뭐라고 말씀할까 하고 말입니다.” 지하철은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난 그분이 뭐라고 말씀하실는지 알고 있지.” 


돈 까밀로가 대답했다.


“그분은 이렇게 말했을 거요, 황금 접시에 담겨 나온 양파보다는 흙으로 빚은 접시에 담겨 나온 스테이크를 먹겠다고.”


“아주 수준 낮은 물질주의자시군요!”


빼뽀네가 말했다. 그러나 그의 상상의 날개는 스테이크 쪽으로 가고 있었다. 지금은 그 유명한 해빙의 시대였다. 그래서 소비에트 정부는 방문객들을 최고급 호텔에 투숙시키고 있었다. 호텔 안에는 방이 천 개가 넘었고, 연회장은 아주 정교하게 꾸며놓았고, 모퉁이마다 승강기가 있어서 지하철만큼이나 웅장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점심 식사가 끝난 다음, 돈 까밀로는 로비에 있는 안락의자에 앉아서 사람들이 오고 가는 것을 구경했다. 그들은 제각기 다른 피부색에 다른 종족들이었다. 검은색, 갈색, 노란색, 백색 등 가지각색 인종이 세계 각처에서 몰려와 각기 다른 언어로 떠들어대고 있었다. 마침 그때, 경계하는 눈빛으로 빼뽀네가 그의 옆에 와서 앉았다.


“이런, 꼭 바벨탑같군.”


돈 까밀로가 말했다.


“정말 그렇게 보이는군요.” 


빼뽀네가 동의했다.


“하지만 비록 저들이 각기 다른 언어로 말하고 있지만 서로서로 이해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똑같은 생각들을 하고 있다구요. 그게 바로 공산주의의 힘이지요.”


“동무는 오늘 아침에 레닌 묘역을 방문하려고 늘어서 있는 사람들을 보았나요? 레닌은 암흑 속에 빛을 던져준 사람이기 때문에 그에게 경의를 표시하느라 사방에서 몰려오는 겁니다.”


돈 까밀로는 심각하게 빼뽀네를 쳐다보았다.


“동무, 동무가 읍장이 되었을 때는 이런 사실을 몰랐었나?” 


“아니요. 알고 있었죠. 지금과 마찬가지로 전에도 알고 있었지요. 다만 깨닫지 못했을 뿐입니다.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 보고 내 생각을 깨끗이 정리했지요. 예수 그리스도가 유행이던 시절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 때에는 사람들을 한데 많이 묶어두는 일은 미신에 속했으나, 지금은 이성에 속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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