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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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러시아에 가다(33)
knyoon

죠반니노 과레스끼 지음

유니스 윤경남 옮김

 

 

 

 

 

(지난 호에 이어)
버스 기사는 차 밑으로 기어들어가는 일을 단번에 거절했다. 그가 싫어하는 건 어쩌면 너무나 당연했는데 빼뽀네는 보도니와 운전기사가 격렬하게 말싸움하는 것을 듣고는 오히려 놀랐다. 


그는 한 마디 거들어 보려고 했으나, 보도니는 계속해서 그에게 소리를 질렀고 결국 그 버스기사는 발걸음을 돌려 콜호즈 쪽으로 걸어가 버렸다.


“지옥으로 꺼질 놈 같으니라고!”


보도니는 그가 가버린 다음에도 중얼거렸다. “그 사람이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그래요?”


빼뽀네는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버스 밑으로 기어 들어가고 싶지 않았던 것뿐인데.”


“그 사람을 여기서 쫓아 버리려면 다그치는 길밖에 없었거든요” 보도니가 설명했다.


곧 트럭을 들어 올리고 일을 시작했다. 보도니는 나사를 풀고 너트를 빼면서 동료들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기 이 자리가 1942년 성탄절쯤, 제가 포로가 되기 전에 심한 격전이 벌어졌던 곳입니다. 러시아인들이 압도적인 숫자로 우리를 공격해 왔고, 우리가 후퇴할 때는 수많은 전사자들을 남기고 떠났답니다. 30명 가량의 포병과 저격병들이 포위되어 포로로 잡혔고, 그들 가운데서도 대부분이 부상당했거나 병이 들었었지요.


 러시아인들은 방금 여러분이 방문했던 티피즈에 있는 콜호즈의 그 창고 안에 포로들을 가두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루 뒤에 그 지구를 탈환해 보니, 그들은 이미 모두 죽었더군요. 러시아인들은 그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기관총으로 쏘아버린 겁니다. 시체를 찾아낼 때 저는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정말 끔찍한 광경이었지요.”


돈 까밀로와 빼뽀네는 손가락이 얼어붙는 듯 추웠으나 계속해서 작업을 했다.


“우리는 시체를 모아서 매장했지요.” 보도니가 이야기를 계속했다.


“여기서 북쪽을 향해 반 마일도 못 가서 오른쪽으로 짐마차가 다니던 자국을 보시게 될 겁니다. 거기서 바로 백 야드 앞에 관개수로가 나오고, 한 옆엔 무성하게 자란 생나무 울타리가 있습니다.


그 생나무 울타리를 따라 이백 피트쯤 걸어가면 담쟁이 덩굴로 엉켜있는 큰 참나무가 보입니다. 매장지가 바로 그곳입니다. 길 옆의 마차길 자국과 관개수로와 그리고 마차 길에서 참나무까지의 사잇길을 평행으로 긋는 네모진 땅 안에 묻혀 있지요.”


세 사람은 말 한마디 없이 반 시간 가량 일을 계속했다. 


“나머지 일은 제가 혼자 할 수 있습니다.” 보도니가 말했다.


“누가 오기만 하면 제가 경적을 울리겠습니다. 담쟁이 덩쿨 밑을 보시면 뭔가 찾아낼 수 있으실 겁니다.”


돈 까밀로는 결심한 듯 자리를 떴고, 빼뽀네도 그를 따라가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하늘에는 새까맣게 구름이 몰려오고 있었고, 바람은 헐벗은 벌판 위로 계속 불어 젖혔다.
“바람이 멎으면 눈이 내리겠는데” 돈 까밀로가 말했다.


“제발 신부님이 파묻힐 만큼만 눈이 내려 주었으면!” 빼뽀네가 대꾸했다.


그들은 단숨에 달려서 수로까지 왔다. 수로 바닥엔 두꺼운 얼음장이 깔려 있었다. 돈 까밀로는 남은 길을 마저 가려고 그 얼음장 위로 기어 내려갔다. 두 사람이 어두운 하늘을 향해 앙상하게 마른 가지들을 들어 올리고 서있는 큰 참나무 밑에 이르자, 그들은 다시 울타리나무 사이의 갈라진 틈으로 올라갔다. 그들의 눈 앞에 넓은 들판이 펼쳐지고 그곳은 아직도 초록색 밀 줄기들이 덮여 있었다.


잠깐 동안 그들은 우두커니 서서 그 황량한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돈 까밀로는 억지로 몇 걸음 앞으로 내어 딛고는, 떨리는 손으로 칭칭 감겨 올라가는 덩굴을 옆으로 헤쳐 보았다. 


나무의 몸통 위엔 ‘1942. 12. 27’ 이라는 날짜와 ‘Italia’ 라는 글자가 있었고, 그 위엔 십자가가 새겨져 있었다.


돈 까밀로는 담쟁이 덩굴을 먼저대로 덮어 내려놓았다. 빼뽀네도 천천히 모자를 벗어 들고, 그곳에선 보이지 않는 나무 십자가와 차가운 땅속에 제각기 흩어져 파묻혀 있는 뼈들을 생각하면서 멀리 들판을 바라보았다.


“작고한 이들을 위하여 미사를 드리나이다. 주여, 저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옵소서…”


소리 나는 쪽을 돌아다보니 그 참나무 아래, 보도니가 급하게 새겨 놓았던 십자가 밑에서 돈 까밀로가 라틴어로 장례미사를 집전하고 있었다


“주여, 영원한 빛을 그들에게 비추소서. 자애로우신 주여, 당신의 빛을 성인들과 함께 비추소서. 주여,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부드러운 밀대 줄기가 바람에 흐느끼고 있었다. “내 아들아, 너는 어디에 있느냐?”


빼뽀네는 지나간 전쟁 중에 신문에 실렸던 기사 가운데, 이렇듯 절망에 찬 통곡의 제목이 붙어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어디에 있느냐, 내 아들아!”


보도니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한쪽 귀는 가까이 다가오는 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콜호즈 쪽에서 어떤 사람이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오자 그는 경적을 울려서 경고를 보냈다.


그 사람은 보도니가 걱정했던 버스 기사가 아니고 귀가 유난히 큰 이태리 친구였다. 그 친구는 아주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그가 가까이 오자마자 보도니는 그를 불러 세웠다.


“동무, 다른 사람들이 돌아올 때까지 나 좀 도와주게나.”


타반은 코트를 벗어버리고 기꺼이 일을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빼뽀네와 돈 까밀로는 서둘러 돌아왔다. 그들은 버스 있는 데까지 오자 빼뽀네가 타반에게 말했다.


“그 연장을 내게 넘겨줘요.”


타반 동무는 기름걸레에 손을 닦고 그의 코트를 다시 입었다. 그는 담배 꽁초에 불을 붙이고 서있는 돈 까밀로의 근처를 왔다갔다 하다가, 드디어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동무, 바쁘지 않으시다면 말 좀 합시다.”


“전문가들이 일을 떠맡았으니 말 못할 이유가 있겠소?” 돈 까밀로가 대답했다. 두 사람은 함께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갔다. 


“동무” 타반 동무가 약간 곤란한 기색을 보이며 말했다.


“동무는 진실한 사실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이야길 해주셨소. 그 이야기엔 나도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답니다. 하지만 동무가 농민 계급 전체를 비난할 때만은 뜻을 같이할 수 없군요. 도시에서는 노동자들이 현대 문화의 발전 과정에서나 정치 현장의 한가운데서나 마구잡이로 부닥칩니다. 그런 반면에 농민들은 고립된 상태에서 살고 있으므로 어떤 지역 감정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순 없습니다. 그들의 머릿속에 새로운 사상을 넣어준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에요. 웬만해선 그 사람들이 그런 것을 이해 못하니까요. 그러나 그 가운데서 몇 사람은 알아차리고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보려고 노력하기도 하지요.”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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