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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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러시아에 가다(29)
knyoon

 

 

 

(지난 호에 이어)
“내 말 좀 들어봐요 동무, 사회주의 체제에선 자유로운 삶을 누릴 자질이 농부에겐 없단 말이오. 그들이 알고 있는 건 그저 명령에 복종하는 것뿐이오. 농부들에게 땅을 준다는 게 얼마나 웃기는 얘깁니까? 땅은 단 한 뼘이라 하더라도 국가에 귀속해야 합니다. 우리는 농민들이 책임감을 어느 정도 갖게 되기까지는 정부가 주도하는 소브코스를 세워야 합니다.”


“동무, 그것으로도 족하지 않습니다.” 스차못지아가 맞장구치고 나섰다. “그 사람들의 멍청한 머릿속에 그런 감각이 생기려면 몇 백 년은 걸릴거요.”


주위의 불빛은 희미했으나 타반의 넙적한 볼은 컴컴한 데서도 빛날 만큼 빨갛게 달아올랐다. 돈 까밀로는 그의 총알을 좀 더 쏘아댈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빼뽀네의 오른쪽 발꿈치가 그의 못이 박힌 왼쪽 발등을 밟아버렸다. 총대로 그의 배를 찌른다 해도 굴복할 돈 까밀로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축축한 날씨에 오래 걸어서 생긴 발가락의 못은 그가 다시 입을 열 수 없게 만들었다. 


먼지가 가라앉자 오리고프 동무는 방 한가운데에 양 다리를 벌리고 서서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발판과 널판지를 가져다가 긴 식탁을 만들었고 어떤 사람은 마직물을 한아름 들고 와서 식탁 위에 덮었다.


난로가 따뜻해지기 시작했고 램프 불 몇 개 더 켜졌다. 식탁 위엔 접시와 나이프와 포크, 스푼, 유리잔이 놓였다. 오리고프 동무는 빼뽀네와 그의 일행이 한쪽 구석에 어정쩡하게 몰려 서있는 것을 힐끗 바라보고, 그들 사이에 긴장감이 일고 있음을 눈치겠다.


눈깜짝할 사이에 그는 아가씨 세 명을 불러 보드카를 돌리게 했다. 두어 잔의 술이 들어가자, 사회주의의 궁극적인 승리에 대해서 가졌던 방문객들의 신념이 다시 회복되었다. 돈 까밀로만이 예외인 것이 보드카 때문에 그는 더 의기소침해져 버렸다.


방문객들은 공산주의의 굶주림에 철저히 희생되었기 때문에, 김이 나는 양배추와 감자가 든 수프가 나오자 늑대처럼 코를 박고 먹었다. 식욕이 충분히 채워진 것을 보고 오리고프 동무는 페트로프나 동무에게 그날 오후의 불편에 대해 갚은 유감의 뜻을 표시하도록 했다. 돈 까밀로는 다시금 악마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면서 인사말에 답하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실 우리는 오늘의 모험이 즐거웠습니다.” 그가 말을 꺼냈다. “왜냐하면 오리고프 동무께서, 공산주의 지도자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를 모범적으로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엔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주인의 자부심이 그의 말에게조차 고귀함을 준다고요. 말과 주인을 모두 삼켜버린 현대의 기계화 시대, 사회 발전의 시대에 있어서, 공산당의 업적에서 오는 정당한 자부심으로 오리고 프 동무마저 고귀하게 되셨다고 말씀 드리는 게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


오리고프 동무는 이러한 재담을 기뻐했고 돈 까밀로가 그에게 보낸 최고의 칭찬에 만족을 느꼈다. 


빼뽀네는 상원의원으로서, 당원으로서, 사절단 단장으로서 갖출 중대한 비밀 서류가 잔뜩 들어있는 서류가방을 가지고 다녔다. 만찬이 진행되고 있을 때 그는 그 서류가방을 마룻바닥에 내려놓는 실수를 저질렀다. 


돈 까밀로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의 옆에 앉아 있었고, 그 서류가방을 열고 재빨리 내용물을 조사할 기회가 생겼다. 서류 밑바닥에는 브랜디 한 병과 맛있는 이태리제 쌀라미 소세지 한 조각이 숨겨 있었다.


빼뽀네가 그의 주위에서 일어난 일을 깨닫게 된 것은, 오리고프 동무가 갑자기 그에게 선물에 대해 감사한다면서 그 선물들을 모두 여기 모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게 좋겠다고 말했을 때였다. 그 선물이란 물론 브랜디 한 병과 이태리제 쌀라미 소시지였다.


돈 까밀로가 선물을 건네주고 돌아오며 말했다. “아주 훌륭한 행동이었네. 자네가 만 리라짜리 지폐의 거스름 돈을 가지고 우리에게 보드카를 사서 돌린 것만큼이나 훌륭한 것이었어”


 빼뽀네는 화난 얼굴로 그를 쏘아 보았다. “마지막에 웃는 자가 진짜 웃는 자요.”


 그는 대꾸하며 말했다. “우리가 집에 돌아가려면 아직도 먼 길이 남아 있다는 걸 명심하십시오.”


오리고프 동무는 긴 식탁의 한 쪽 끝에 앉아 있었다. 그의 오른 편에는 콜호즈의 감독 겸 정치 비서 노릇을 하는 사람이 앉았고, 왼편에는 나디아 페트로프나 동무가 앉아 있었다. 페트로프나 옆에는 나폴리에서 온 살바토레 카피체 동무가 있었는데 그는 그녀와 스카못지아 동무 사이에 끼어들고 있었다.


카피체가 페트로프나 동무에게 다정한 눈길을 잔뜩 담아 보내며 말했다. “내게 기타가 있었다면 나는 타롯치 동무보다 더 멋진 연설을 할 수 있었을 겁니다.”


페트로프나가 콜호즈의 감독에게 뭔가 말해주자, 그는 식탁에서 사라졌다. 아무도 알아챈 사람은 없었다. 방 안의 더위와 보드카와 담배 연기가 그 방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른한 행복감을 맛보게끔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독이 다시 제자리에 돌아왔을 때 카피체가 괴성을 지르는 바람에 그들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기타다!”


티피즈의 콜호즈 농장엔 작동하는 기계라고는 단 한 대도 없었지만 기타가 있었다. 더욱이 아코디언까지 있었고, 한 소년이 그 악기를 아주 잘 켰다. 


카피체가 기타의 음률을 맞추는 동안 소년은 아코디언으로 행진곡을 연주했다. 이 순간, 평상시에 말이 없던 소작 농부 타반에게 갑자기 영감이 떠올랐다. 그는 소년의 손에서 아코디언을 잡아채서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을 침묵하게 하는 가락을 울렸다.


그는 ‘말파리’라는 가곡과 폴란드의 춤곡인 ‘미그리아바카’를 연주했는데 너무나 잘했기 때문에 그의 귀가 어디에 붙어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살바토레 카피체 동무는 합세할 준비를 갖추고 아코디언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는 ‘오 솔레미오’를 불렀다. ‘보메로’에서 ‘포씨리프’까지, ‘지 테레사’에서 ‘퍼니쿨리 퍼니쿨라’로, ‘나폴리 만의 달빛’에서 ‘남쪽나라의 일’에 이르기까지 그의 모든 노랫가락마다 나폴리의 정취가 담뿍 실려있었다.


만일 그가 재청에 응하지 않았더라면, 사람들은 그를 갈기갈기 찢어 놓았으리라. 그는 여섯 곡이나 더 불렀다. 그러자 스카못지아 동무는 입에 거품을 물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카피체가, 한 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페트로프나 동무를 바라보며 노래하고 있었고, 페트로프나는 아주 넋이 빠진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타반 동무가 폴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 춤은 아주 마술적인 효과를 나타냈다 순식간에 식탁과 그릇들이 깨끗이 치워졌고, 술을 계속해서 마실 사람은 그 옆의 콜호즈 사무실로 피신해야만 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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