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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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러시아에 가다(27)
knyoon

 

 

 

(지난 호에 이어)
큰 지네같이 꿈틀거리는 이상한 괴물이 물줄기를 뿜으며 들어섰다. 어디선가 갑자기 보도니의 아내가 그 자리에 나타나더니 문을 닫으러 뛰어갔다. 그 괴물의 반짝이는 방수덮개가 마루로 밀려 떨어지자 그 속에서 여섯 명이나 되는 어린 아이들이 튀어나왔다. 여섯 살부터 열두 살 정도의 귀엽게 생긴 아이들이었다.


“러시아에서의 당신의 실종은 조금도 시간 낭비가 아니었군요, 보다시피!” 돈 까밀로가 소리쳤다.


보도니가 다시 한 번 그를 응시했다. “아무래도 전에 어디선가 본 것 같아요.” 그가 되풀이 해서 말했다.


“그럴리가 없을 거요.” 돈 까밀로가 말했다.


“본 기억이 나더라도 잊어주시오.”


교육을 잘 받고 자란 아이들이었다. 비록 처음 잠깐 동안은 그들이 큰 소동을 벌였지만, 엄마의 몇 마디 말로 곧 조용해졌다. 아이들은 난롯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 낮은 목소리로 서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저 애들은 아직 어려서요.”


부인은 뜻밖에 찾아온 훌륭해 봐는 이태리 손님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아이들은 할머니께서 2층에서 편찮아 누워계신 걸 잊은 모양이에요.”


“우리가 그 분을 찾아 뵈어도 괜찮을까요?” 돈 까밀로가 말했다.


“그래 주신다면 어머니께서 아주 좋아하실 거에요. 다른 사람을 만나 볼 기회가 거의 없었으니까요.” 


그들은 나선형 계단을 밟고 올라가 천정이 낮은 다락방으로 들어 갔다. 얼굴에 주름살이 가득한 노부인이 깨끗하게 다림질한 하얀 침대 시트를 깔고 누워 있었다. 보도니의 처가 어머니에게 폴란드 말로 뭔가 들려주자 어머니도 작은 소리로 대답을 했다.


“주님께서 어머니를 병문안 해준 분들에게 축복을 내리시기를 빈다고 말씀하시는군요.”


보도니의 처가 설명했다.


“어머니는 너무 노쇠하셔서 과거 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으시답니다.”


침대 머리맡에는 성화가 걸려 있었는데, 돈 까밀로는 그것을 자세히 보려고 허리를 굽혔다.


“검은 마돈나군요!” 그가 소리쳤다.


“그래요.”


보도니의 처가 중얼거리며 말했다.


“폴란드를 보호하는 여신이지요. 폴란드 노인들은 대개 카톨릭 신자입니다. 어머니 연세를 생각해서 용서해 주세요.”


조심스럽게 말하는 그녀의 눈에 막연한 공포의 빛이 떠올랐다. 빼뽀네가 안심시키는 말을 꺼냈다.


“용서고 뭐고 없습니다. 이태리에선 젊은 카톨릭 신자도 많은 걸요. 신자들에게 믿음이 있는 한 아주 정당합니다. 우리의 적수는 사제들이랍니다. 그들은 정치와 종교를 혼동하기 때문입니다.”


노부인은 딸의 귀에 대고 뭔가 소곤거리고 보도니에게 그것을 알아봐달라는 눈짓을 보냈다.


“이 분들은 우리를 해치러 온 게 아닙니다.” 보도니가 말했다.


“어머님은 듣고 싶은 게 있으시대요. 교황님에 대해서…” 보도니의 처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 분은 아주 건강합니다.” 빼뽀네가 대답했다.


돈 까밀로는 주머니 속에서 뭔가 끄집어냈다. 노부인은 눈이 휘둥그래져서 그 물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앙상한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흥분해서 딸의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어머니는 그게 정말 교황님이신가 알고 싶으시대요.” 


“다른 사람 아닌 바로 그 분입니다. 교황 요한 23세.”


빼뽀네의 얼굴이 창백해지며 걱정스러운 태도로 주위를 둘러 보았다. 돈 까밀로는 그의 팔을 잡아 문 쪽으로 끌고 가면서 말했다. “보도니와 함께 아래층에 내려가서 아직도 비가 오고 있는지 알아봐 주게.”


빼뽀네가 항의하려고 하자, 돈 까밀로가 그의 말을 가로 막았다. “내게 참견하지 말게, 동무. 자네 친구를 아껴주고 싶거든 말일세.”


그래서 두 여성과 돈 까밀로만이 방 안에 남게 되었다. “마음 놓고 말씀하시도록 하십시오. 나도 어머니처럼 가톨릭 신자니까요.”


두 여인이 한참 얘기를 나눈 다음 딸이 어머니의 말을 전했다. “어머니는 당신에게 감사 드리고 계셔요. 그리고 축복을 주고 싶어 하셔요. 그 분은 사진을 갖게 되어 이젠 평화롭게 돌아가실 수 있답니다. 우리 아버지께서 교회의 마지막 예식도 없이 돌아가시는 걸 보신 게 가장 고통스러우셨답니다.”


“하지만 마음 놓고 당신네 가족을 방문할 수 있는 신부 같은 게 있지 않습니까?” 돈 까밀로가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 사람들은 신부같이 보이긴 하지요.” 그녀는 설명을 계속했다.


“그들은 하느님의 사자가 아니라 공산당의 사자입니다. 그 사람들이 우리 폴란드인에게 무슨 이익이 있겠어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돈 까밀로는 그의 윗저고리를 벗고, 가짜 만년필 속에서 십자가상을 꺼내어 잉크병에 꽂은 다음 침대머리 탁자에 세워 놓았다. 그리고는 성배로 쓸 알루미늄 컵도 꺼냈다.


15분쯤 지났을 때, 빼뽀네와 보도니는 오랫동안의 침묵이 걱정되어 위층으로 올라가 문틈으로 방안을 들여다 보았다. 놀랍게도 그들의 눈 앞에 돈 까밀로가 미사를 드리는 게 보였다. 


노부인은 두 손을 마주 대고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인 채 돈 까밀로의 동작을 하나하나 따라 하고 있었다. 노부인은 성체를 받은 다음 새로운 힘이 그의 혈관을 흐르는 것 같았다.


 노부인이 딸의 귀에 대고 숨을 몰아 쉬며 속삭였다. 그녀의 딸이 남편 옆에 가서 섰다. 


“신부님” 그녀가 흥분해서 말했다. “우리를 하느님 앞에서 성혼시켜 주셔요. 지금까지 우리는 사람 앞에서만 결혼했습니다.”


밖에는 마치 러시아의 비구름이 모조리 이 그레비네크에 몰려온 것처럼 여전히 비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결혼 반지도 없었다. 그러나 노부인이 그녀의 넷째 손가락에서 낡은 금반지를 뺐다.


“예수님,” 돈 까밀로가 말했다.


“제가 말이나 문구가 몇 마디 좀 틀리더라도 그걸 언짢게 여기진 말아 주십시오…”


빼뽀네는 돈 까밀로가 그를 아래층으로 밀어 내릴 때까지 돌부처처럼 서 있었다.


“어서 가서 아이들을 모두 이리로 데려오게, 모두 다 말일세.” 그는 명령을 내렸다.


빗줄기가 뜸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돈 까밀로는 너무 긴장하고 있어서 성사를 잘 끝낼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는 6남매에게 세례를 주었다. 그러나 그가 겁을 낸 것과는 달리 한 마디도 한 줄도 빠뜨림 없이 해냈다. 오직 하느님만이 그에게 그 일을 끝낼 수 있는 능력을 주실 수 있었던 것이다.


모든 의식이 한 시간 내에, 아니 한 순간에 끝이 났다. 돈 까밀로는 어느 사이엔가 빼뽀네와 함께 부엌 식당에서 보도니 맞은편에 다시 앉았다. 이미 아침 해가 떠오른 시각이었다. 여섯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동자들이 어두운 구석마다 환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돈 까밀로는 의식의 횟수를 세어보았다. 어린이에게 12번, 그들의 부모에게 4번, 노부인에게 2번 주었다. 노부인은 아래층에 함께 있진 않았지만, 돈 까밀로의 기억 속에서 그녀의 눈동자를 지워버릴 순 없으리라. 그는 그러한 표정들을 전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때 나디아 페트로프나 동무가 문 앞에 나타났다. “일이 잘 되어갑니까?” 그녀가 물었다.


“모든 일이 완벽하게 되어갑니다.” 돈 까밀로가 말했다.


“우리는 소비에트 시민 스테반 보도니같이 유능한 안내자를 우리에게 배당해 주신 것에 대해 오라 고프 동무에게 대단히 감사 드리고 있습니다.”


빼뽀네가 집주인과 손을 흔들며 악수하고 문으로 걸어가면서 한 마디 덧붙였다. 돈 까밀로는 그 집에서 제일 나중에 나왔다. 그는 문지방에서 몸을 돌리면서 십자가의 성호를 그었다.


“Pax vobiscum,” 그는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노부인의 눈이 이에 응답하는 듯이 말했다. “아멘,”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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