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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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러시아에 가다(20)
knyoon

 

 

 

(지난 호에 이어)
“동무는 지옥으로 곧장 갈 권리도 있소. 그러니 동무의 조직도 함께 데려 가버리시오.”


돈 까밀로는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예수님, 저 자의 말을 들으셨나이까?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공산당 조직을 찾아봐도 당이 인정하는 전속 사제가 있는 유일한 조직이 여기 말고 또 어디 있나이까? 그런데 저 자는 그러한 조직을 지옥에나 가라고 말합니다요!”


일에는 한계가 있다. 안전 면도날이 호미로 사용된다면 그건 아주 위험한 무기가 될 수 있다. 빼뽀네는 그 무기로 자신의 턱을 그어버린 것이다. 그의 턱 밑으로 피가 흘러내렸다. 


장기 근무한 당의 투사로 위장한 신부를 러시아에 데리고 왔을 때부터, 게다가 이 마귀 같은 바티칸의 사절이 세포 조직의 지도자로 스스로를 내세웠을 때 어찌 이 공산당 상원의원의 마음에 평화가 깃들 수 있었겠는가?


빼뽀네가 피가 나는 턱을 닦아내고 있는 동안에, 돈 까밀로는 그가 검토해 볼 셈으로 몰래 꺼냈던 기록 서류들을 그의 같은 방 친구 여행 가방 안에 도로 집어넣는 작업을 해냈다.


“동무, 만일 그 서류들이 아주 개인적인 것이라면 말이오.”


돈 까밀로가 말했다.


“더 이상 얘기 안 해도 좋소. 하지만 만약 내가 좀 곤란한 실수를 하더라도 놀라진 마시오.”


바로 그때 스카못지아가 들어왔다. 그는 버스가 호텔 앞에 기다리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잿빛 하늘이 보이는 가을 아침이었다. 남자의 위 저고리 같은 것을 입은 부녀자들이 거리를 청소하고 전차를 운전하며, 포장해 놓은 광장에 타르 칠을 하며, 새로 짓는 건물 속에서 건축 공사를 하고 있었다. 음식 배급소 앞에는 간편한 부인복을 입은 여자들이 한 줄로 늘어서서 참을성 있게 배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돈 까밀로는 빼뽀네 쪽으로 몸을 기울여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저 부녀자들은 남자의 권리뿐만 아니라 여성의 권리도 가지고 있네그려!”


빼뽀네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는 돈 까밀로와 함께 운전기사 바로 뒷자리에 앉아 있었고 나머지 여덟 명은 그 중간에 있는 의자를 제각기 차지하고 있었다. 페트로프나 동무가 이따금 오리고프 동무의 말을 통역하기 위하여 일어났는데 그때마다 그녀는 일행 전체의 얼굴과 마주치게 되었다. 


이러한 좌석 배정은 돈 까밀로가 맞은 편에 있는 빼뽀네와, 바로 두 자리 건너 앞 자리에 앉아 있는 타반과 스카못지아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것을 가능케 했다. 돈 까밀로는 밀라노의 론텔라 동무를 제거했고, 제노아의 바치까 동무의 신용을 뒤흔들어 놓았으므로 이젠 타반을 뒤쫓을 차례였다.


‘타반 안토니오: 42세이며 베넷도에 있는 푸라노바에서 출생함. 1943년에 입당. 소작농이며 활동적이고 충성스럽고 믿음직함. 사회적 경제적인 분야에 대한 지식에 한계가 있어 농민 계층에서만 활용. 아버지는 사회주의자. 가족은 120년간 같은 농지에서 일했음. 노련하고 부지런한 농부임.’


이것은 돈 까밀로가 빼뽀네의 기록서류 가운데서 훔쳐낸 내용들이다. 이제부터 농민 출신 타반은 ‘요주의 인물’이 되었다. 그들은 도시를 뒤로 하고 농촌을 여행 중이었다.
“우리는 지금 ‘붉은 깃발’ 소브코스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페트로프나 동무가 설명했다.


“혁명 후에 처음으로 세워진 집단농장 중의 하나입니다. 전체 면적은 3만 에이커이며 그 중에 1만 에이커가 경작되고 있습니다. 54대의 트랙터와 15대의 추수기, 15대의 트럭 등의 장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80명 가량의 일꾼이 있지요. 현재 소비에트 연방엔 소브코스가 6천 개나 있고, 그곳엔 소가 4백만 마리, 돼지가 6백만 마리, 양이 1천2백만 마리가 있습니다.”


넓고 평평한 들판을 벗어나자 갑자기 인가의 흔적 같은 것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조그만 집들이 물결 모양의 지붕을 얹은 큰 건물 둘레에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사료 창고와 곡식 창고들이 여기저기에 보였다. 버스가 먼지를 일으키는 좁은 길로 털털거리며 지나갈 때, 그들은 수십 대의 큰 트랙터가 밭갈이를 마친 농장 여기 저기에 녹슬고 먼지가 덮인 채 방치된 것을 볼 수 있었다.


사람이 사는 인가에는 또 다른 트랙터와 농기구들이 비바람에 노출된 채 농장 건물이 있는 마당에 널려 있었다.


“4백만 마리의 소!”


돈 까밀로가 깊은 숨을 내쉬며 외쳤다. “굉장한 숫자지요!” 빼뽀네가 동의했다.


“그 숫자에다가 집단농장 콜호즈에 있는 2천7백만 마리를 더하면 3천l백만 마리에 이른다네.”


“어마어마하군요!”


“1960년 말경까지는 4천만이 될거요.”


돈 까밀로가 계속해서 말했다.


“그러나 집단 농장화하기 전인 1928년에 비한다면, 아직도 2백만 마리가 부족하다네.”


빼뽀네는 돈 까밀로가 또 무슨 꿍꿍이로 그런 소리를 하는지 알아낼 재주가 없었다.


“동무” 돈 까밀로가 다시 설명했다.


“소비에트 연방은 모든 것을 공개하고 있으며, 모든 일이 잘 되어가고 있는가 아닌가를 공개적으로 알리는 세계 유일한 나라요. 그것은 모두 공식적인 통계이며 우리는 이 통계로 미루어 과학과 공업 분야에 큰 발전을 이룩한 반면에, 농업 분야에선 아직 뒤떨어져있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가 없소. 모스크바나 키예프, 그 밖의 모든 도시에서 시베리아 땅을 파도록 지원자를 보내야 하오.”


그는 제법 동정하는 듯이 두 팔을 쭉 내밀었다. 그리고는 농민 출신인 타반의 귀에 들리도록 빼뽀네에게 분명하게 말을 했다,


“동무, 저 트랙터들의 상태를 보았겠지. 동무는 내가 내리는 결론이 얼마나 타당한 것인가 자네 스스로 판단해 보기 바라네. 문제는 이것이오. 농부는 어디까지나 농부라 그 말이오. 고향에서 계속 있어왔던 온갖 일들을 한 번 생각해 보시오. 그곳에서도 누가 가장 뒤떨어진 사람들이었소? 농부들이오! 그래요, 난 근로자들이 하루 빨리 그들의 처지를 개선해 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걸 압니다. 그러나 그들은 노동자일 뿐이오. 농민이나 농부들의 생활양식을 바꾸도록 노력해 보게! 그 사람들을 계급에 대한 의식을 갖게 하든가 또는 무산주의 운동에 끌어들일 수 있는가 한 번 시험해 보게!”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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