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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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러시아에 가다(8)
knyoon

 

(지난 호에 이어)
빼뽀네가 치밀어 오르는 화를 간신히 참고 할 수 있는 말은 고작 다음과 같았다.


“난 지옥이 정말로 있는지 없는지는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습니다.”


그는 침을 튀겨가며 이야기했다.


“하지만 만약 지옥이란 것이 있다면, 바로 당신이 가야 할 곳이오.”


“그럼 저 세상에서 다시 만나게 되겠군, 동무.”


 이쯤 되니 빼뽀네가 버티고 있던 담벼락이 무너져버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신부님.”


그는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어째서 신부님은 그렇게도 기를 쓰고 나를 파멸시키려고 드십니까?”


“자네를 죽어라 하고 파멸시킬 사람은 아무도 없소, 동무. 러시아 여행에 내가 낀다고 해서, 러시아 사태에 어떤 영향을 주겠소? 내가 그곳에 가든지 안가든지, 좋은 일은 좋은 일대로, 나쁜 일은 나쁜 일대로 일어나고 마는 것이오. 왜 그리 불안한가? 러시아가 당신네 신문이 만들어 내고 있는 노동자의 천국이 아닌 것이 두려워서인가?”


빼뽀네는 어깨만 들썩했다. “나로서는 말일세.”


돈 까밀로가 말을 이었다.


“러시아가 우리 신문이 그려놓은 것만큼 나쁘지 않기를 바란다네.”


“아주 좋은 생각이십니다!”


빼뽀네가 냉소를 띠고 소리쳤다. “참으로 사심이 없고 냉철한 분이십니다 그려!”


 “난 결코 사심 없는 사람이 못되오.”


돈 까밀로가 대꾸했다.


“러시아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것은 내게도 무관한 일이 아니오. 그래야 그들이 집에 조용히 들어앉을 것이며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도 않을 테니까.”


일주일이 지나서 까밀로 타롯치 동무는 러시아 여행에 갈 수 있도록 선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싸구려 가방을 들고 다른 아홉 명과 함께 공산당 본부에서 보고를 했다. 당의 한 젊은 관리가 상원의원이 소개해서 온 사람들을 영접하고 간단하게 작별인사를 했다.


“동무들, 여러분들은 완수해야 할 뚜렷한 사명이 있습니다. 여러 분들은 본인은 물론 국내에 있는 다른 동무들을 위해서도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돌아와야 합니다. 돌아와서 친구에게나 적에게나 똑같이 영광스러운 소비에트 연방의 발달된 기술과 평화 정신에 대해서 말해주어야 합니다.”


빼뽀네의 얼굴이 불안감으로 창백해져 갈 무렵, 돈 까밀로는 발언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었다.


“동무.”


돈 까밀로가 말했다.


“우리가 돌아온 다음, 우리 친구들에게는 그들이 이미 다 알고 있는 일들을 얘기해줘야 하고, 적에게는 그들이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일들을 말해주기 위해서만 우리가 여행한다는 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일입니다. 내 생각에 우리의 사명은 우리의 주인인 러시아사람들에게, 그들이 우리 이태리 사람들을 전쟁의 위협에서 해방시켜준 것에 대해 우리 이태리인이 기쁨과 감사에 넘치는 인사를 전해주는 것이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이지요, 동무”


 당의 관리가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말할 것도 없는 사실이지요.”


 관리는 가슴을 내밀고, 약간 화가 난 얼굴을 하고는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러자 빼뽀네는 험상스레 돈 까밀로를 노려보았다.


 “말할 것도 없는 사실에 대해선 얘기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게다가 당신은 그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있소.”


“아니, 알고 있소.” 돈 까밀로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 사람은 지금 스물 다섯 살이며, 전쟁이 났을 때는 열살 이었소. 독일군에 대항해서 싸운 경험도 없고, 따라서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 것임을 알리가 없지, 그리고 평화 문제와 군축 문제를 제안하기 위해서 흐루시초프 동무가 미국 여행을 한다는 것이 심리적으로도 얼마나 중대한가를 모르고 있다네.”


“말 잘하셨소.”


나니 스카못지아 동무가 말했다. 우람하게 생긴 그는, 로마의 무산 계급인 트라스테베르 지구 출신으로, 강인하고 저돌적인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싸움이 벌어졌다 해도, 그 현장에 당의 우두머리들이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관료주의자들이 관료 제도를 확립시켰을 때 말이죠…” 


밀라노에서 온 노동자 계급 출신의 론텔라 동무가 덧붙여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빼뽀네가 가로채고 나섰다.


 “우린 여기에 회의하러 온 게 아닙니다. 우리가 빨리 움직이지 않았다가는 기차를 놓치게 됩니다.”


 그는 돈 까밀로에게 마천루라도 무너뜨릴 만큼의 위력을 갖춘 원자폭탄 같은 눈초리를 던지면서, 문 쪽으로 큰 걸음을 옮겨 놓았다. 그러나 돈 까밀로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당의 노선에서 단 한치도 벗어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를 얼굴에 나타내고 있었다.


기차 안에서 빼뽀네가 해야 할 중요한 임무는, 악마 같은 까밀로타롯치 동무가 그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경계하는 일이었다.


 그는 돈 까밀로가 지나갈 길목을 가로막고 마주 앉았다. 그러나 돈 까밀로는 말썽을 일으킬 기분이 아닌 것 같았다. 그는 주머니에서 책 한 권을 꺼내어 헤아릴 길 없는 묘한 표정을 하고 책 읽기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 책의 붉은 겉 표지에는 황금 망치와 낫이 인쇄되어 있었다. 그는 이따금 눈을 들어 차창 밖으로 지나치는 들판과 마을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가 책을 주머니 속에 다시 넣자 빼뽀네가 말을 걸어왔다.


 “매우 좋은 책이겠군요.” 


“최고의 책이오.” 돈 까밀로가 말했다.


“레닌의 말씀을 모아서 만든 어록이니까요.”


그리고 한 번 읽어 보도록 책을 건네주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불어로 써 있어서 참 안됐소. 하지만 자네가 듣고 싶은 부분은 번역해서 들려 줄 수가 있네.”


“그럴 건 없소, 동무.” 빼뽀네는 책을 그에게 다시 돌려주며 말했다. 


그 책의 임자는 조심스럽게 주위를 돌아 보고는, 다른 동료들이 졸거나 만화잡지를 넘기고 있는 모습을 보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책의 겉 표지는 붉은 색이었고, 《Pensees de L’enine》이라는 불어가 쓰여 있었지만 사실은 그 책이 라틴어로 된 매일 기도서 이었음을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첫 번째 역에 도착하자 많은 사람들이 기차에서 내렸다. 스가못지아 동무가 포도주 한 병을 들고 왔고, 론델라 동무는 저녁 신문의 호외 뭉치를 들고 왔다. 그는 호외를 들여다 보더니 혐오감을 느끼는지 고개를 저었다. 신문 1면에는 흐루시초프가 미국에서 마지막 날에 찍은 사진들과 그를 둘러싼 군중들이 웃고 있는 모습이 실려 있었다. 


“난 뭐가 뭔지 모르겠군. 이빨을 드러내고 히죽이 웃고 있는 얼간이들 속에서 흐루시초프 동무가 함께 웃고 서있는 모양은 비위가 틀려서 더 이상 못 보겠소.”


“정치란 건 두뇌가 문제지, 감정이 문제되는 건 아니지요.” 돈 까밀로가 말했다.


“소비에트 연방은 평화의 공존을 성취하려고 여태껏 노력해왔소. 냉전 이데올로기를 키워온 자본주의자들은, 웃을 자격도 없는 자들이오. 냉전의 결말은 자본주의의 몰락을 가져올 테니까 말이오.”


그러나 론텔라는 밀라노 노동자들이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고집을 세우며 말했다.


“다 좋아요. 하지만 난 자본주의자들을 싫어한다고 말할 권리가 있소. 그리고 그자들과 함께 웃다가 잡히느니 차라리 죽는 꼴을 보여주는 게 낫겠소.”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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