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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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러시아에 가다(3)
knyoon

 
 
(지난 호에 이어)


“아무도 나를 보진 않았겠지요? 마치 24시간 내내 감시당하고 있는 기분이랍니다.”


“자네 완전히 돌았나?” 돈 까밀로가 그에게 물었다.


“아닙니다. 하지만 이제 막 그렇게 될 참입니다.” 빼뽀네는 의자에 앉아 이마 위의 땀을 훔쳐냈다.


“도대체 나하고 지금 이야기 하고 있는 사람은 신부요, 아니면 마을에 소문이나 퍼뜨리는 방송국장이요?”


“그건 자네가 어떤 말을 하느냐에 달려 있지.” 


“난 신부님한테 이야기하러 온거요.”


“그렇다면 신부로서 들어주겠네.”


돈 까밀로가 신중하게 말했다. 빼뽀네는 손에 웅켜쥔 모자를 한참 동안 비틀고 있다가 마침내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신부님, 난 큰 거짓말을 했습니다. 내가 바로 빼삐또 스삐제구띠요.“


돈 까밀로는 이 폭탄선언에 어찌나 놀랐는지 숨이 막혀 돌아가실 뻔했다.


“자네가 그 천만 리라를 탔다구?” 돈 까밀로는 정신이 좀 들자 말했다.


“그럼 왜 진작 그렇게 얘기하질 않았나?”


“난 지금도 그런 얘길 모든 마을 사람들에게 선전할 생각은 없습니다요. 난 신부님에게 고해하러 온 거구요, 신부님이라면 당연히 내가 거짓말한 죄를 범한 사실 외에는 관심을 가지실 필요가 없는 거 아닙니까?”


그러나 돈 까밀로는 빼뽀네에게 단단히 설교해 줄 수 있는 이 좋은 기회를 절대로 놓치고 싶진 않았다.


“자신이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지! 결국은 공산당 ‘동무들’ 중의 한 사람이 천만 리라를 타낸 꼴이니 그럴 수가 있는가 말일세. 어째서 그런 지저분한 일들을 부르조아 반동 분자들한테나 맡겨두지 않았나? 훌륭한 공산당원이라면, 이마에 땀을 흘려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을텐데?”


“난 지금 농담하러 온 게 아닙니다, 신부님. 복권 한 장 산 게 뭐 그리 죄가 된다고 그러십니까?”


“나도 농담하고 있는 게 아닐세. 그리고 그 일이 죄가 된다고는 말하지 않았네. 다만, 훌륭한 공산당원이라면 그런 짓을 안했을 거라고 했을 뿐이지.”


“웃기지 마십시오. 사람들이 모두 다 그렇게 하는걸요.”


“그거 안됐군. 게다가 자넨 특히 더 나빠, 자네는 프롤레타리아 노선을 주장하고 있는 지도자니까! 복권이란 자본주의자들이 대중을 이용하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이고, 돈 한푼 들이지 않고 던질 수 있는 신나는 미끼 아닌가? 돈이 들기는커녕 자본가들에게 돈 벌일 해주고 있지. 훌륭한 공산주의자라면 어떤 형태건 간에 복권 같은 것에는 필사적으로 반대해야 옳다고 생각지 않나?”


빼뽀네는 어리둥절한듯이 돈 까밀로를 쳐다 보았다. “신부님, 혹시 머리가 어떻게 된 건 아니십니까?”


“아니지. 머리가 어떻게 된 건 내가 아니고 자넬세. 복권이란 무엇이며 어떤 작용을 하는가? 만일 어떤 폭군때문에 강제 수용소에서 징역 사는 사람이 1천 명 있다고 치세. 그런데 매일 먹을 것이라고는 형편없는 빵 한 조각씩밖에 없다고 쳐보세. 그들은 굶주림과 싸우기 위해 어떻게 하는지 알겠나? 각자가 하루 배급받은 빵에서 5분의 1을 떼어, 자기 이름을 쓴 종이 쪽지와 함께 그 폭군에게 준다네. 그러면 이 폭군은 그 쪽지를 전부 모자에 넣은 다음 일요일마다 제비를 한 장씩 뽑는다네. 행운에 당첨된 사나이는 그동안 동료들이 내 놓은 빵의 절반을 받게 되고, 나머지 절반은 폭군이 수고비 명목으로 가져가 버린다네. 그러니 불쌍한 죄수들은 혹시나 하는 희망 속에 자기 식량의 5분의 1을 폭군이 살찌게 하는데 바친 셈이 되네. 결국 그런 추첨을 계속해서 이득을 보는 건 폭군 한 사람뿐일세. 이건 자본주의자의 착취와 더불어 아주 잘 알려진 이야기라네.”


빼뽀네는 참을 수 없다는듯 어깨를 움추려 보았으나, 돈 까밀로는 아는 체도 않고 계속 열변을 토했다.


“그러니 그따위 미끼에 현혹되어선 안되네! 노동자들에게,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제외하고 달리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방법이 있다 고 믿게 하는 것은, 그것이 뭐든 간에 다 노동자를 해롭게 하고 그들의 적에게 이익을 줄 뿐이란 말일세. 복권 같은 것에 한몫 낀 것은, 자네가 대중의 이상을 배신하는 행위를 했음을 의미하네.”


이제 빼뽀네는 더 견디어낼 재간이 없었다.


“난 아무도 배신하지 않았단 말이오!” 그는 항의했다. “나도 다 생각이 있어서 한 일이란 말입니다!”


“물론 나도 그건 알고 있다네, 빼뽀네 동무. 자네의 목적이 인민을 위해 이상을 실천하는 데 있음을 말일세. 그리고 자본주의자들이 비용을 대준다는 건 기대할 수가 없으므로 자네 스스로 비용을 조달하기로 결심했다는 것도 당연한 일이네. 다시 말해서, 만일 자네가 훌륭한 공산당원이라면, 복권 같은 데 끼여든 일도 공산주의 정신에 따른 것이란 이야기네. 계급투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갈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는 것도 난 알고 있네. 그러니까 자네는 틀림없이 그 천만 리라를, 훌륭한 당원임을 입증하기 위해서 공산 당 금고에 집어넣겠네그려?”


빼뽀네는 돈 까밀로의 입을 틀어막을듯이 두 팔을 내어 휘둘렀다. “아니, 이것 보세요, 신부님. 도대체 우리를 사사건건 정치하고 관련시켜야 할 필요가 어디있소?”


“여보게, 빼뽀네. 그렇다면 자네가 사랑하는 혁명은 어떻게 되는 건가?”


빼뽀네는 화가 나서 그의 발로 마룻바닥을 팡팡 굴러댔다.


“아, 알겠군, 동무.” 돈 까밀로가 비아냥거렸다. “내일의 혁명보다 오늘 내 호주머니 속에 들어올 천만 리라가 더 중요하다 이거지?”


돈 까밀로는 잿속의 불씨를 쑤셔보고는 빼뽀네에게 다시 물었다. “얘기하러 온 건 그것뿐인가? 천만 리라 벌게 됐다는 얘기 뿐이냐구?”


“아무도 모르게 그걸 현금으로 바꾸려면 어떻게 하면 좋겠소?”


“로마로 곧장 달려가면 될텐데.”


“안됩니다. 모두들 나를 철저히 감시하고 있거든요. 게다가 내 반박문이 내일 나온단 말입니다.”


“그럼 믿을만한 사람을 보내보게.”


“단 한 사람도 믿을만한 사람이 없소.”


“저런. 그럼 어떻게 말해줘야 하나? 거 안됐구먼!” 


“신부님이 가서 내 대신 돈을 좀 받아다 주십시오.”


빼뽀네는 돈 까밀로 앞에 봉투 하나를 던지듯이 내밀고는 횡하니 사라졌다. 돈 까밀로는 다음날 아침에 길을 떠났는데 사흘동안 보이지를 않았다. 


사흘 뒤 밤 늦게야 그는 마을에 도착했다. 사제관으로 들어가기 전에 그는 성당 안의 제단 앞에 잠깐 들렀다. 그는 들고 온 서류 가방을 제단 앞의 난간 위에 걸쳐 놓았다.


“예수님.”


돈 까밀로는 침울하게 말했다.


“여기에 1만 리라 지폐가 백 장씩 들어있는 열 꾸러미의 뭉칫돈 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빼뽀네가 탄 천만 리라입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단 한 마디 말씀은 그 작자가 이만한 상품을 받을 자격이 전혀없다는 얘깁니다.”


“복권을 다루는 당국에 가서 그렇게 말해보렴,” 예수님이 충고하셨다. 


돈 까밀로는 아무 말도 못하고 돈 가방을 든 채 사제관 2층으로 올라가서, 빼뽀네와 미리 약속한 대로 전등불을 연달아 세 번이나 켰다 껏다 해보였다. 


빼뽀네는 잠도 자지 않고 망을 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의 침실 등불을 연달아 두 번 켰다 껏다 해서 신호에 답을 보냈다. 그리고 두 시간 후, 그는 외투깃을 눈썹까지 치켜 여미고, 아무도 모르게 사제관 안으로 숨어 들어왔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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