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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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까밀로 신부와 공산당 읍장 빼뽀네의 고향을 찾아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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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따라서 인간성 회복과 마을의 평화를 위해서는 총이라도 메고 뛰쳐나올 수 있는 돈 까밀로 신부에게 하느님의 아들로 이스라엘 신앙의 기초가 되는 자유와 해방의 의미까지 해석해 주는 십자가상의 그리스도 예수, 인간이기에 실수도 연발하는 돈 까밀로에게 양심의 카운셀러가 되어주는 그리스도 예수, 제도 때문에 늘 원한 관계에 놓이는 사회적 민주주의자(돈 까밀로)나 민주적 사회주의자(빼뽀네)에게 늘 윤리적인 결단을 요구하면서도 햇빛처럼 공평한 그리스도 예수라는 인물 설정은 이 작품에서 금상첨화이다. 이러한 그리스도를 우리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있게 만드는 힘을 작가는 창조해 낸 것이다. 


그 작가의 따님 샬롯테에게 나는 지금까지 가장 궁금했던 일을 물었다. 즉 돈 까밀로와 빼뽀네의 모델은 누구인가? 그리고 과레스끼의 성격은 이 두 사람을 모두 닮진 않았는지? 하는 점이었다. 예상대로 아버지 과레스끼는 극단적인 두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돈 까밀로 같은 신심과 양심을 가진 동시에 빼뽀네처럼 소박하면서도 극렬한 성격에 유모어를 덛 붙인 것이라고. 


또한 돈 까밀로의 모델은 과레스끼가 존경하는 페르난델의 사진을 보고 자극 받아 그려냈으나 성격까지 일치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전후 이탈리아에서 사라져버린 의협심이나 혈기, 가난과 부자유를 어딘가 황당한 이 신부를 통해 대변하려는 사명감에서 만든 것이라고 했다.


빼뽀네는 전후 밀라노에서 과레스끼와 정적이었으나 친구 사이가 된 유명한 공산주의자 쥬느 체르비의 모델이라고 한다. 이 두 주인공에게서 정치, 사회제도의 베일을 벗겨 버리면 결국 똑같은 형태의 인간성을 발견하게 된다.


출판업자나 영화제작자들도 처음엔 작가이기 이전에 극렬한 극우파인 과레스끼를 위험시하고 냉대했으나, 돈 까밀로 시리즈뿐만 아니라 로맨틱하고 해학적인 소설이 계속 발표되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자, 비로서 20여권의 책, 저술, 번역, 영화 등에 서로 앞다투어 계약하기에 이른 것이다.


‘과레스끼 식당’ 창 밖은 이제 아주 깜깜해졌고, 식탁 위의 호롱불마다 심지를 돋구어 놓았다. 손님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한다. 몇 병째인지 모르는 와인이 잔에 아직 남아 있었고, 등잔 불빛에 두 뺨이 빨갛게 익은 듯한 샬롯데와 우리들의 이야기는 영 끝날 것 같지 않았으며 우리도 일어서기 싫었다. 그러나 영업에 방해가 되기도 하려니와 되돌아갈 길을 생각해서 일어서는데 의자는 내 마음 같이 아주 무겁다.


의자 때문에 내가 쩔쩔 매는 것을 보고 그들 남매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 아버지의 계략이었어요. 술꾼들이 술을 마시면 의자를 내던지곤 하니까 일부러 무거운 나무로 의자를 만든 거에요. 품질도 좋아서 오래 쓰거든요.”

 

 

 

 

 


죠반니노 과레스끼가 아들의 생업을 위해 손수 설계해서 만든 서까래 천장과 호롱불이 걸려있는 ‘과레스끼 레스토랑’ 안에 그가 열렬하게 바라던 따뜻함과 평화로움이 넘쳐 흘렀다.


과레스끼 가족들과 아쉬운 이별을 나누고, 친절한 택시 기사의 배웅을 받으며 파르마 역에 내리니, 기차가 예정보다 한 시간이나 늦게 들어온다고 했다. 희미한 가로등 밑에 점점 기온이 떨어져가는 철로 옆을 이리저리 서성거리다가 나도 모르게 조그만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Ave,--Mari—a! Grazia-- plena Domi—mustecum—Bene-det—atus--.
Hin—e—ribus….Je—sus Chri—stus. Santa maria Materdehi!.  


방금 만나고 온 과레스끼 가족과 돈 까밀로 신부의 실루엣 상, 그리고 내 옆에 실제로 서 있는 파드레 때문인지 갑자기 아베마리아를 부르고 싶어졌다. 20분 이상이나 자기 도취 속에 반복해 부르고 있는데, 나의 유일한 청중이던 파드레가 입을 열고 말했다.


“라 스칼라로 가서 부르시죠!”


라 스칼라! 그 말에 나는 또 감격해서 소리쳤다.


“어머나, 내 노래를 라 스칼라에 가서 부르라구요? 농담이라고 해도 듣기 싫진 않은데요. 정말이지 난 적응성이 지나쳐 탈이에요. 밀라노에 오기 전 취리히에서 이틀을 지내는 동안 내 머리 속엔 밀라노에 대한 동경 때문에 스위스인들이 모두 이탈리안으로 보이는 거에요. 그러다가 기차가 밀라노에 들어서면서부터 내 입에선 내가 아는 이탈리아 노래는 다 흘러나오더군요.


과레스끼의 집에 가는 도중에 레 론꼴레 베르디 마을의 베르디 동상 앞에 내려 사진을 찍었지요? 사진기의 셔터 소리를 신호로—첫 음정이 비슷했나봐요—슬프고도 아름다운 베르디의 아리아 ‘Ce-le-ste Aida, for-madii-vira’가 들려오는 듯했어요. 과레스끼 집에선 또 어땠구요? 그 집 현관에 들어서자 오른쪽 문에 사람 크기만하게 그려놓은 단장 짚은 베르디가, 바로 옆의 벽에 붉은 카르멘이 춤추는 그림을 보면서 ‘La donna mobile!(항상 변하는 여자의 마음)’하고 노래 부르며 들어서는 것만 같아 깜작 놀랐지 뭐예요? 그래도 끝까지 멜러디와 가사를 아는 건 아베마리아뿐이어서 이 노래를 나 혼자 열 번도 더 불렀지요.”


마치 La Scala(밀라노의 유명한 오페라 극장 스칼라좌)에서 노래발표회라도 하게 된 듯 내 레퍼터리를 주워섬기자, 파드레는 아무 말없이 내 팔을 끌어 지하도로 내려가는 층계 앞에 세워 놓았다.


“자, 여기가 La Scala(층계라는 뜻도 있음)구요. 밀라노의 La Scala보다는 이곳이 사람들이 더 많이 다니는 곳이니까 한 번 더 불러보시죠. 그리고 그 아베마리아의 가사는 이탈리아어가 아니고 라틴어랍니다.”


때마침 무안해진 나를 달래듯 밀라노 행 기차가 덜컹거리며 들어서고 있었다. “쳇, 돈 까밀로보다 더 짓궂은 신부님이잖아요?” 속으로 마구 눈을 흘기면서도 “Si Si. Grazie! (네, 네. 고마워요.)—이건 분명 이탈리아어겠지요—Scala로 가죠 뭐!” 하고는 기차에 붙은 작은 스칼라를 꽝꽝 딛고 올라섰다. 어두운 하늘 밑에 종각이 달린 파르마 교회의 불빛이 작은 별처럼 여창(旅窓)에 아름답게 비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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