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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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아들 어거스틴(제56회)
knyoon

 

(지난 호에 이어)


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런 어느 날 마을을 소란케 하는 편지 한 통이 타가스테의 주교로 있는 알리피우스한테서 왔다. 그 음흉스런 이단이 어거스틴과 가장 가까운 친구에게까지 공격을 한 모양이었다. 


 “펠라기우스의 과오가 놀라 출신의 착한 친구 파울리누스에게 그의 검은 그림자를 던진 것을 알면 슬퍼할 것이오. 나는 설득에 실패했으니까 그 사람을 당신한테 맡길 수밖에 없소. 아마 당신만이 그의 의심을 없애 주고 그를 다시 참된 신앙의 무리 속에 돌려보내줄 수 있을 것입니다.” 알리피우스의 편지였다. 


 줄리안의 먼 친척이 되고, 어거스틴과는 밀라노에서 알게 된 성실한 귀족 파울리누스는 교양 있는 사람이었으며, 유망한 시인이었다. 개종 후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의 재산을 나눠주었다. 그렇게 진실한 그리스도의 추종자가 이단의 유혹에 빠졌다는 것은 어거스틴에게는 슬픈 일이었다. 


 7년째 「하느님의 도성」을 집필하고 있는 히포의 주교에게, 비 내리는 어느 날 아침에 두 사람이 찾아왔다. 그의 상상의 세계에서 간신히 벗어난 어거스틴은 하인이 나가자 일어서서 방문객을 정중히 맞아들였다. 


 파울리누스는 평범한 갈색 튜닉을 입고 있었다. 밀라노에서 보았던 보석들이 그의 머리에서 없어졌고, 무거운 반지가 매달려 있던 손가락엔 아무런 장식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어거스틴은 해결되지 않는 어떤 복잡한 문제로 오랫동안 고민해온 양 미간에 새의 가슴뼈 같은 주름살이 져있는 그를 자세히 쳐다보았다.


 당황한 듯이 파울리누스는 한 손을 그의 입으로 가져갔다.


 “알리피우스가 주교님께 말씀 드리지 않았던가요? 제가 펠라기우스를 연구하고 있다고요.” 그는 서두도 없이 말을 꺼냈다.

 

 

 

 

 


 어거스틴은 그의 두 손을 마주 잡고 기분 좋게 응수했다. 


“우리도 마찬가지요. 난 최근에 그가 쓴「의지의 자유에 대한 변론」을 다시 읽었습니다.”


 “그러시다면 그 저자를 제가 명석한 사상가로 생각한다고 말씀드려도 이해하시겠지요.”


 “물론이지요. 그 뿐 아니라 그는 도덕군자이기도 하지요.” 어거스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파울리누스는 긴장을 풀고 뭔가 알고 싶은 듯이 알리피우스를 바라보았다.


 “어거스틴, 당신은 펠라기우스를 만난 적이 있지 않소?” 알리피우스가 물었다.


 “그럴 기회가 없었네. 그가 히포를 지나는 길에 내게 들렸는데 유감스럽게도 내가 없었지 뭔가. 그렇지만 서신 왕래는 있네. 그의 서신도 아주 정중했네. 난 그 사람과 싸우는 게 아니고 그의 신앙과 싸우는 걸세.” 어거스틴이 대답했다.


 “그의 신앙 말이지요? 주교님.” 파울리누스가 애타는 듯이 물었다.


 “의지의 자유는 하느님이 인간에게 준 하나의 선물이라고 했지요. 그 말이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거부해야 할 악이 없이는 선을 택한다 해도 의미가 없지요.”


 “잘 지적하셨소. 펠라기우스는 뿌리가 꽃을 피운다는 말을 증명하기 위해 자연을 내세웁니다. 이 주장에선 인간의 의지는 뿌리가 되므로 그는 그것을 그의 선택에 따라 꽃도 피고 악령의 술도 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무언가 자극을 받은 듯 파울리누스는 그의 말을 재빨리 받아 말했다.


 “그러면 주교님은 그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응답하시겠습니까?”


 어거스틴이 서슴지 않고 대답했다.


 “그와 반대의 선택을 생각해 봅시다. 만약 우리가 하늘에서 구속된 자를 믿는다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소? 그리고 천사들은 어찌 될까요? 그들은 ‘죄를 지을 수 없는’ 상태에 있지 않습니까? 천사들이 선한 것 외에 다른 것을 선택할 수 있을까요?”


 파울리누스가 멈칫 하자 어거스틴이 한층 더 열을 올리며 말했다.


 “그럼 자유 외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걸까요?”


 파울리누스는 눈을 내리 깔고 이마엔 주름살이 더 깊이 패었다.


 “펠라기우스의 주장대로 뿌리는 선의 열매와 악의 열매를 다 생산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우리 주님의 가르침에서 얼마나 빗나가는 건지 아시겠지요?” 어거스틴이 계속해서 말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시지요? ‘모든 선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느니라. 선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지 못하고, 못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느니라.’” 


 파울리누스는 무릎 사이에 두 손을 꼭 쥐었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자녀이고 한 뿌리에서 나왔으므로 인간이 선과 악, 정의와 불의를 행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선한 일을 하는 건 하느님의 은총이 시키시는 것이고, 악한 짓을 하는 것은 우리의 죄 지은 마음이 그리로 인도하기 때문이지요.”


 파울리누스는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인간은 참으로 죄가 많군요.” 그가 말했다.


 “주교님은 인간의 본성을 어두운 면에서 보고 계시군요.”


 “당신 말이 옳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여.” 어거스틴은 자기 가슴에 손을 대며 말했다.


 “음행과 육욕에 빠진다는 게 무엇인지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도 의지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요?” 파울리누스는 진지해졌다.


 “펠라기우스는 의지가 결정하는 대로 우리가 죄를 짓기도 하고 안 짓기도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는 그것을 후각에 비유했습니다. 즉 우리는 나쁜 냄새를 맡으려고 할 수도 있고, 싫으면 코를 다른 곳으로 돌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우리의 두 손을 묶고 우리를 해로운 연무가 사방에서 피어 오르는 곳에 우리를 두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어떤 힘을 가지고 있을까요? 우린 그 연무를 들이마실 수밖에 없겠지요.”


 파울리누스는 그의 두 손을 좍 폈다.


 “주교님은 참 지략이 풍부하십니다. 그러나 주교님의 요점을 증명하기 위해서 우릴 부자연스런 입장에 몰아넣으시는군요.”


 “그럴지도 모르지요. 우리 주님은 어떤 사실이든 외면하실 분이 아니니까요. 인간의 마음속에서 악한 생각, 음행, 음탕, 살인, 절도, 신성모독, 자만, 어리석음 등이 나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속에서 나와 우리를 더럽힙니다.”


 “난 아직도 이런 모든 악이 의지와 함께 시작된다고 주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파울리누스가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어거스틴이 미소를 지었다.


 “파울리누스, 한 가지 물어봐도 좋습니까?”


 “좋습니다.”


 “펠라기우스의 말대로 사람이 원하기만 하면 자기의 본성을 자유로 완성시킬 수 있다면, 어째서 지금까지 그렇게 한 사람이 하나도 없을까요?”


 파울리누스는 창 밖으로 폭우 속에 휘적이는 나무를 내다보며 말했다. 


 “우린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 세계는 아직도 젊은 상태입니다. 바다마다 그 너머엔 새로운 지평선이 나타나고, 아마 새로운 땅도 있을 겁니다. 선원처럼 쉬지 않고 우리의 경계선을 더 멀리 밀고 나갈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세상의 끝에서 새로운 발견을 하리라는 걸 의심치 않습니다. 우린 정신적인 방주를 타고 항해하기 위해 시간을 바쳐야 합니다.”


 어거스틴은 다시 파울리누스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봐요, 우린 현세에 살고 있소. 매일같이 나는 여러 가지 우환에 둘러싸여 지내는 사람들과 접촉을 하고 있지요. 희망이 끊긴 사람들, 인생의 허무함이 영적인 상처를 입어 그의 꿈이 뱃전에 부서지고 물결처럼 산산조각이 난 사람들하고 말입니다. 그들은 젊었을 때의 나처럼 향락을 찾고 있지요. 슬픔과 혼란과 위험한 상태에 거꾸로 잘못 떨어지기도 하며 말입니다. 그들의 고통을 구해주려면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할까요? 그들이 살아생전에 완전한 인간의 종족을 기대해 볼 순 없을까요? 당신은 그것이 해답이 아니란 걸 알고 있지요. 구원을 위해서 그들이 필요한 건 ‘지금’이라는 시간입니다.”


 파울리누스는 어깨를 들썩함으로써 그 논리를 시인했다.


 “그러나 펠라기우스를 공정하게 평해서, 주교님은 그가 신의 은총을 믿는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못하실 겁니다.”


 “예, 그 사람도 은총을 믿지요-어떤 면에선 말입니다.”


 무심하게 어거스틴은 갈대 펜 끝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는 의사가 아픈 사람들에게 주려고 혼합하는 약초가 효험이 있다고 믿는 식으로 은총을 믿지요. 그러나 그것은 이방세계의 위대한 의사선생님이 말하는 그 은총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죄악 가운데서 죽은 자가 너를 살렸다’ 했습니다. 죽음이 병을 의미하지만은 않습니다.” 어거스틴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당신네 펠라기우스는 은총이 우리 운명을 개선하는 데 그저 도움이 되는 정도로 말하는군요. 그런데 바울은 이렇게 말했지요. ‘여러분은 내가 아닌 오직 믿음을 통해 은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누구도 자신을 위해 자랑하지 못하도록 주신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파울리누스는 아무 말이 없었다. 다시금 그의 얼굴에 회의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그런 모습을 보며 어거스틴은 의자에 몸을 기대고 부드럽게 말했다. 


 “존경하는 파울리누스 씨, 나도 내 이성의 성곽 속에서 인생의 문제를 풀어보려고 애도 써봤지요. 그늘진 사랑에 물려보려고 나만치 애를 태운 사람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요? 교만한 낙심과, 안절부절하며 쉴 수 없는 피로와, 쓰디쓴 영혼의 괴로움을 나는 좀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하느님과의 일체감에서 벗어나 산산조각이 나버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가장 자비로우면서 가장 공정하신 분, 아름다우면서도 강하신 분, 새롭지 않으면서도 전혀 낡지 않은 그분에게서 내가 얼마나 축복을 알게 되었는지를 말입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면서 자신은 변치 않으시며, 전능하고 자비하셔서 하늘에서 내려와 심연에서 나를 이끌어내어 택하시고, 죽음의 수령에서 붙들어 주시고, 다정하게 그분의 품에 품어 주셨습니다. 파울리누스여, 이것이 은총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청산유수 같은 그의 이야기가 끝나자 파울리누스의 얼굴엔 갈등의 빛이 고통스럽게 떠오르고, 마침내 그의 음성에는 간절한 애원이 섞여 있었다.


 “저도 주교님 같으신 믿음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거스틴은 한숨을 쉬었다.


 “믿음 역시 하느님의 선물임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하느님의 조건에 따라서만 그것을 우리의 것으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조건이란. ?”


 “그것은 우리가 참된 고뇌 속에서 죄를 벗고 하느님의 유일한 중재자이신 그리스도의 자비에 의존해야 된다는 얘깁니다. 당신은 그 신앙을 지니고 있었지요. 거짓 믿음의 수령자들이 당신에게서 그 신앙을 빼앗으려 했습니다. 그들에게 넘어가 희생되지 않도록 하십시오.”(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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