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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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아들 어거스틴(제45회)
knyoon

 

 
(지난 호에 이어)

 “그것들에 대한 너의 연구는 그것들에 대한 너의 의문이 되었다. 그 자연의 아름다움이 너의 의문에 대한 해답이 되었지.” 어머니는 말했다.


 “사실입니다. 전 하느님과 관련된 이 세상의 구조에 의혹을 느꼈지요. 그들이 내게 말했습니다. ‘난 그분이 아니고, 그분이 나를 만들었다’고요.”


 지는 해가 평원 위로 빛을 뿌려, 평원을 가지각색 그림자와 연보라 빛, 진보라 빛, 장밋빛 사막으로 바꿔놓았고, 테베강가에 늘어선 상록수를 불꽃으로 바꿔놓았고, 둑 사이로 바늘귀에 끌려오는 실처럼 보이는 테베 강물을 은빛으로 변하게 했다. 서북향의 자줏빛 언덕은 낙타 등처럼 하늘을 누비며 몸을 꼬고 있었다. 


 “창조주께선 그의 시대에 이 세상을 모두 아름답게 지으셨구나. 생각해 보아라. 온 땅이 하느님의 저주를 받아 고통 속에 신음하고 괴로워하며 만물이 장엄하게 그 모습을 나타내 주고, 내세엔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아름다움이 있음을.”

 

 

 


 어거스틴은 정원 쪽으로 눈을 돌렸다. 정원 한가운데에 샘이 솟고 있었다. 그 샘 둘레엔 참제비고깔과 동백나무, 남빛수선화, 자줏빛 수국 등이 풍선처럼 떠오르며 무지갯빛으로 현란하게 빛났다. 그는 멜라니가 꽃에다 쏟았던 정열을 떠올렸다. 그녀의 부드러운 손길이 꽃봉오리를 어루만지며 숲 사이로 미끄러져가는 모습을 마음속에 그려 보았다. 


 모니카는 그의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얘야, 천국은 화원이 되고, 샘물이 되고, 생수가 되고, 레바논에서 흘러오는 샘의 근원이 된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더 좋은 것은 맛있는 열매가 열린 석류나무와 송진 내 나는 녹나무와 장초나무와 창포와 계피와 온갖 유향나무와 몰약과 노회초가 있는 과수원이 된단다.”


 그녀의 음성은 처음엔 아주 약했으나 점점 새 힘이 솟았다. 어거스틴은 그 변화를 보고 기뻐했다. 


 “과수원보다 더 좋은 건 공원이란다.” 그녀는 곧 이어 말했다. “하느님과 그의 양의 보좌로부터 샘솟는 생명수로 뿌려진 공원 말이다. 거기에 생명의 나무가 자라고, 그 나무는 열매를 맺고 나뭇잎은 모든 백성을 치료하기 위해 예비될 것이다. 거기엔 저주가 없고 하느님과 그의 양의 보좌만 있을 테고. 하느님의 종들은 그분의 시중을 들면서 그분의 얼굴을 뵈올 수 있겠지. 그분의 얼굴을. ”


 그녀의 음성은 부드럽게 하프의 현이 떨리듯 울려왔다. 눈을 들어 올려 정오의 햇빛이 반사된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빛나는 얼굴로, 불타는 입술을 열어서, 어거스틴이 몰랐던 성령의 불길은 그의 마음을 불붙게 하는 말을 한 것이다. 그는 더욱 감동이 되었다.


 그녀의 설교는 다시 기도로 바뀌었다. “만군의 주님! 당신의 장막은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나의 영혼도 당신의 궁전을 사모하나이다. 내 마음과 육신은 살아계신 하느님을 향해 부르짖습니다. 아, 나의 하느님, 제가 어느 때에 당신께 가옵니까? 어느 때에 시온산에 가게 되옵니까? 어느 때에 하느님의 마을에 가게 되옵니까? 어느 때에 천국의 예루살렘에 가게 됩니까? 수많은 천사들에게 어느 때에 가게 되옵니까? 처음 탄생한 교회의 모임에 어느 때에 가옵니까?

그리스도시여, 저들의 성의를 양의 피로 희게 물들인 그들이 당신과 함께 있나이다. 나의 하느님, 그들은 주야로 당신의 성전에서 당신을 섬기고 있습니다. 보좌에 앉은 당신은 그들 가운데 있습니다. 나의 구세주이시며 나의 왕이시여, 당신은 그들을 생수가 흐르는 데로 인도하십니다.”


 그녀는 조용해졌다. 그 순간 태양이 지평선을 넘을 때도 오스티아는 잠잠해 있었고, 황홀해진 어거스틴은 땅과 하늘이 합쳐지고, 감각과 영이 합쳐지고, 시간과 영겁이 합쳐짐을 느꼈다. 심장의 고동이 멈추는 듯했다. 


땅의 영상은 사라졌다. 강물도 평원도 화원도 지평선도. 모니카와 더불어 그는 천국을 걸으며, 별들 사이에 발자국을 남기며, 달과 구름을 밟으며, 최후의 만찬에서 요한이 구세주의 가슴에서 쉼과 같이 하느님의 마음 가까이 가서 쉴 때까지 나래가 달린 양 점점 더 높이 올라가고 있었다.


 어거스틴은 그 황홀경이 얼마나 계속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훗날에 가서야 그는 물질의 세계를 넘어서서 땅 위에 쓰러져 숨을 헐떡이던 일을 생각해냈다. 그 때 모니카는 다시 말을 이었다. 


 “내 아들아, 난 이 세상 것에 더 이상 즐거움을 갖지 않는다. 난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으며, 왜 여기서 주저하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이제 이 세상의 희망도 내게서 사라졌기 때문이란다.”


 “아, 어머니!”


 “내가 지체하며 바라던 것이 꼭 하나 있었다. 내가 죽기 전에 그리스도인이 된 너를 보는 일이었다. 이제 나의 하느님은 네가 그의 종이 되는 것을 실컷 보게 해주셨고, 이 세상의 행복도 멸시할 수 있게 해주셨으니. 여기서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황홀경이 지나고, 충격과 슬픔을 당한 어거스틴은 어머니를 껴안고 소리쳤다.


 “어머니! 아, 어머니. !”


 닷새가 지나자 모니카는 심한 열이 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의식이 없어져 갔다. 두 아들과 손자와 모든 식구들이 그녀 둘레에 모여서 기도했다. 나흘 동안 함께 머물러 있었다. 


 나흘째 되던 날 모니카는 눈을 뜨고 말했다. “내가 어디에 있었지?”


 “어머니, 몹시 편찮으셨어요.” 어거스틴은 그녀의 손을 잡고 비비면서 말했다.


 “아우렐리우스.”


 “네? 어머니.” 그는 어머니의 말을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듣기 위해 침대에 몸을 굽혔다.


 “네 어미를 여기에 묻을 테냐?”


 그 당시 사람들의 관습대로, 어거스틴의 생각에도 외국 땅에 어머니를 매장한다는 건 못할 일이었다. 모니카의 요구가 그를 놀라게 했기 때문에, 몇 해 만에 처음 그는 한 가지 질문에 대답을 못했다. 그의 동생 나비기우스가 대신 말했다. 


 “하지만 어머니, 우린 어머니가 완쾌하셔서 어머님을 모시고 타가스테로 돌아가고 싶어요.”


 어머니는 어거스틴에게 머리를 돌렸다.


 “너도 그 애 말을 들었지?” 그녀는 더듬거렸다.


 “난 네가 이 보잘것없는 육신을 어디에 묻어도 상관 않겠다. 단 이것만. 이것만 청하겠다. 나를 주님의 제단에서 기억해다오.”


 어거스틴은 이해했다. 그가 제단에서 기도할 때 자비를 청원하지 않고, 어머니에게 축복 받은 추억을 감사 드리라는 의도임을 그는 깨달았다.


 “어머니, 우린 꼭 그렇게 하겠어요.” 그는 눈물을 참으려고 애쓰며 말했다.


 모니카는 가벼운 미소를 띠었다. 그녀는 어거스틴이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녀의 눈꺼풀이 사르르 떨렸다. 그녀는 숨을 가쁘게 쉬었다.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은 성스러운 한 여인의 임종을 지켜보려고 한자리에 꼼짝 않고 서 있었다. 


 그녀는 마지막 숨을 거두고 베개 위에 힘없이 고개를 뉘었다. 긴장되고 적막한 순간이었다. 아데오다투스의 비통한 흐느낌이 어거스틴의 마음을 파고들어 그 울음이 그의 가슴의 외침같이 들려왔다. 


 알리피우스와 나비기우스는 얼른 아데오다투스에게 달려가 위로의 말로 달래주며 쓰다듬어 주었다.


 어거스틴은 눈이 말라붙고, 영혼도 메말라 버린 채 시신의 주위를 맴돌기만 했다. 드디어 그는 몸을 움직여 손을 내밀어 어머니의 눈꺼풀을, 자애롭게 미소 짓고 있는 그 눈꺼풀을 덮어드렸다.


 에보디우스는 성경을 더듬어 꺼내더니 시편에서 한 장을 찾아 낭송하기 시작했다. “나는 자비와 심판에 대한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오, 주여, 나는 당신에게 노래하나이다.”


 그 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 모두가 애도하며 따라 읽었다. 암브로시우스의 찬송가 가사는 어거스틴이 세상을 떠날 때에도 생각나서 그의 마음을 평화스럽게 해주었다. 

 

 

 하느님은 만물을 창조하셨고
 활짝 열린 하늘을 속박하시고
 낮은 고운 빛으로 덮으시며
 밤은 자비로운 잠 속에 감싸 주시네.
 하루의 수고가 끝날 때
 달콤한 휴식은 새로운 즐거움을 가져오네.
 슬픔에 지친 마음에 위로를,
 슬픔의 무거운 짐엔 휴식을.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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