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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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아들 어거스틴(제41회)
knyoon

 

(지난 호에 이어)

 


▲The Duomo, Milano

 

 

 ∽ 29 ∽

 


 나의 연인은 내 결혼에 방해가 되어 내 곁을 떠났고, 그녀에게 매달렸던 내 마음은 찢기고 상처나 피를 흘리고 있었습니다. -고백록


 
 주일마다 모니카는 암브로시우스의 설교를 들으러 성전에 나갔다. 어거스틴도 가족 몰래 빠져나와 성전 현관에 있는 예비신자석에 앉아 있곤 했으나, 아무에게도 알리진 않았다. 그는 멜라니도 역시 참여할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상하게 예배시간이면 집안에서 보이지 않곤 했으니까.


 그는 예배에 참석할 때마다 부인석으로 그녀를 몰래 찾아보았으나 예비신자와 방청인이 많아 쉽사리 눈에 띄지 않았다.


 여름이 다 지난 어느 날 밤, 멜라니가 아데오다투스의 침대를 정리하고 있는데, 아들이 불쑥 어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어머니, 왜 슬퍼하셔요?”


 “어머나, 내가 슬퍼한다구?” 그녀는 깜짝 놀라 물었다.


 “그래요. 제가 도와드릴 게 없을까요?” 


 그녀는 아들의 이불을 턱까지 가만히 끌어올려 덮어준 다음 조용히 말했다.


 “아무일 없단다. 귀여운 것. 아무것두 아니야…예수 그리스도만이 할 수 있어요.”


 “어머닌 그리스도를 믿어요?”


 “그럼, 진심으로.”


 “아버지두?”


 그녀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버진 믿음이 확실치 않단다.”


 “할머니가 다음 주일에 나를 교회에 데리고 가고 싶으시대요.”


 “잘 됐다. 난 우리 주님께서 너를 암브로시우스처럼 위대하고 성스러운 인물로 키워주시라고 늘 기도한단다.”


 “어머니.”


 “왜?”


 “전 가끔 이런 느낌이 들어요. 난 어른이 될 때까지 살 것 같지 않은 이상한 느낌이요.”


 그녀는 아들의 머리를 가슴에 껴안고 미칠 듯이 말했다.


 “그런 말 하지 말아, 내 아가야. 생각도 하지 말아!”


 “생각하지 않을께요.” 조금 후에 그는 말했다. “엄마! 엄만 참 아름다와요.”


 “아름다움이란 무얼까, 아데오다투스?”


 “아름다움이란 어머니 속에서 비쳐 나오는 강한 빛.”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꼭 네 아버지와 같은 소리를 하는구나. 잘 자거라, 내 귀여운 것.” 그녀는 아들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엄마, 안녕히 주무세요.”


 느닷없이 어둡고 불길한 예감이 멜라니의 마음에 떠올라 공포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희미한 음성이 이렇게 말하는 듯 했다.


 “그 아이를 다신 보지 못할 것이다.”


 그녀는 깜짝 놀라, “아데오다투스!” 하고 불렀다.


 “예? 어머니.”


 “지금 뭐라구 말했니?”


 “아니요, 어머니.”


 “정말이냐?”


 “정말이어요.”


 “아…그럼, 얘야, 잘 자거라. 난 너를 너무나 사랑한다.”


 “저도 어머닐 사랑해요.”


 그녀는 다시 한 번 더 아들의 머리를 그녀 가슴에 끌어안고, 그녀를 꼭 닮은 아이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녀는 아이를 팔에서 내려놓고 등잔불을 끄고 자기 방으로 살그머니 빠져나갔다. 그녀는 침대 위에 쓰러져 몸부림쳤다. 느낌이나 생각이나 눈물마저 마비되어 버리는 듯했다. 


 얼마 지나자 그녀는 옆방에서 어거스틴이 심하게 기침하는 소리를 들었다. 감기가 심한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기침을 그치고 얘기를 시작했다. 그녀는 자기 이름 소리를 분명하게 들었다. 그래선 안되리라 생각하면서도 자제할 힘을 잃고 일어나 발꿈치를 들고 마루로 나가 어두운데 서서 엿듣고 있었다.


 “멜라니는 너의 장래를 막고 있다. 무슨 수를 써야겠다.” 모니카가 말했다.


어거스틴이 기침을 다시 했다. 어머니에게 대답할 때 말소리가 너무 작아 결혼이란 말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건 안 된다고 내가 여러 번 말했다.” 모니카의 단호한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집안은, 너나 내가 싫어하든 좋아하든 학문하는 집안이다. 멜라니가 좋은 여자란 점은 나도 알고있다. 불행하게도, 그 애의 잘못은 아니지만, 멜라니는 전혀 층이 다른 가문 출신이다.”


 어둠 속에서 멜라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가문이 어떻든 전 멜라니를 사랑합니다.” 어거스틴이 말했다.


 “아우렐리우스, 내 말 좀 들어봐라. 넌 교양과 지성이 있는 사람이야. 데오도루스 총독님도 네가 밀라노에서 아주 뛰어난 사상가가 될걸 믿고 있다고, 사람들이 내게 말해주더구나.”


 “참 좋은 일이군요. 하지만 성공해서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사람은, 실패하면 별로 옹호를 받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건 그만 두고라도, 하느님과의 관계가 더욱 중요하단 말이다.”


 “무슨 관계요?”


 “난 네가 이스라엘의 왕자나 예언자가 될 운명임을 믿어왔다. 갈수록 그 확신이 더해진단다.” 


 “저를 교회에서 보셨기 때문인가요?”


 “그건 한가지 표징일 뿐이지.”


 “알겠어요. 그러니까 멜라니는 저를 그 왕국에서 쫓아내는 원인이란 말씀이지요?”


 “물론이다.”


 멜라니는 뛰는 가슴을 진정하려고 두 손을 가슴에 갖다 댔다.


 “자기 아들과 꼭 어울리는 여자가 하나 있다고 믿는 어머니가 이 세상에 있을지 모르겠네요.” 


 어거스틴이 말하고 기침을 다시 했다.


 “그건 네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 아우렐리우스.”


 “그럴까요?”


 “네가 잘못임을 증명해 보랴?”


 “어떻게요?”


 “난 네가 결혼할 절차를 다 만들어 놓았다.” 어머니는 길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멜라니는 몸이 잦아드는 듯했다.


 “뭐라고 하셨지요?” 어거스틴이 쉰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 아가씬 밀라노 최고 귀족가문의 딸이다. 그 애는 깨끗하고 활달하고 젊은이다운 신선함이 있더구나. 교양과 기지와 미를 겸비했고. 꼭 맞는 배필이지.”


 “하지만, 어머니…”


 “얘야, 내말이 옳단다. 모든 일이 약속되어 있어.”


 멜라니는 어거스틴이 또 심하게 기침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게 손으로 입을 막았다. 몸을 떨면서 더듬더듬 그녀의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실신한 듯 방바닥에 쓰러졌다.


 한밤중이 되어 어거스틴은 침실에 들어갔다. 기침 때문에 몸이 쇠약해지고 마음이 병든 채로. 그는 사람들이 짜놓은 계획을 알면서 멜라니를 대할 생각을 하니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해졌다.


 등잔에 기름이 다되어 가물거렸다. 어거스틴은 깜짝 놀라서 주춤했다. 침대가 비어있었다. “멜라니!” 하고 그는 큰 소리로 불러 보았다. 사방이 조용했다.


 그는 이불 위에 양피지 두루마리가 구겨진 채 놓여있는 걸 보았다. 그것을 집어들고 등잔 밑으로 갔다. 불에 가까이 대보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깜박거렸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멜라니가 어거스틴에게:


 결국은 몇 해 전에 치렀어야 할 일을 이제야 할 수 있는 힘을 얻었어요. 여보, 나는 당신을 떠나렵니다. 나를 찾으려고 하지 마세요. 잘한 일이 못될 겁니다. 나는 수도원에 들어가 불상하고 죄 많은 내 인생을 주님 섬기는 일에 바치렵니다.


 아데오다투스를 부탁합니다. 그 애는 자기가 오래 살지 못할 거라고 말하는군요. 그 애 말이 맞을 거예요. 하느님은 다윗이 죄를 짓고 얻은 아들을 치셨습니다. 하느님은 내 죄의 아들도 치실까요? 내가 언젠가 알게 되어 믿고 사랑하던 그리스도에게 돌아갑니다. 난 그분이 내 죄를 용서하셨다고 믿어요.


 난 당신을 영원히 사랑할 것이고, 당신을 위해 영원히 기도를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린 이 세상에선 다시 못 만날 거예요. 난 참을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리 구세주의 영광의 집에서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될 것을 얼마나 갈망하는지요!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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