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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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의 비사>제6회-계관시인, 윤치호의 영문일기1897년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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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8일. 월요일.맑은 날씨.



“아니, 윤선생, 김홍륙이 얼마나 정직하고 충성스런 분인데요. 지난 해에 이완용과 이윤용과 그  무리들이 상감 앞에 코도 내밀지 않을 때, 상감의 안전을 위해 목숨을 걸고 밤 낮을 가리지 않고 지켜드리며 일한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그 사람이 바로 김홍륙이란 말입니다.


“사람들이 그를 싫어하는 건 상감께 너무 가까이 모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자들은 윤선생도 미워할테고, 그런 여건에 있는 사람이면 누구를 막론하고 미워할 겁니다. 


“맞아요, 상감의 측근에서 배회하는 자들 중에는 나쁜 사람이 많습니다. 실제로,  궁내부대신 이재순은 온갖 악행을 다 저지르며 다니고 있고, 환관과 궁녀들이 왕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왕은 너무 위약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조선 안에 어디서 더 나은 사람을 찾아볼 수 있을까요?  이 나라에는 70개 이상의 외국선교부와 700명 이상의 본토 교인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교인들 중의 누군가는 기회만 생긴다면 거짓말에 상대방 모함에 도적질도 마다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을까요? 당신네 조선 사람들의 문제는, 하나같이 정치인 행세를 하려고 들지만 해놓은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점이에요.


 조선이 불행하게 된 가장 큰 근본은 대원군에게 있습니다. 외국인 가운데 오직 네 사람만이 조선의 개혁을 위해 흑인노예들처럼 일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나의 남편 웨베르, 그레잇하우스 장군, 브라운씨, 서재필 박사 등 이에요. 민영환은 어떤 사람에게 한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겐 또 다르게 전달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너무 낙심하진 마세요. 당신에게 좋게 보이는 모습만 찾아보기도 바쁜 세상이잖아요? 우리 부부의 도움이 필요할 때는 무슨 일이든 얘기해 주세요. 일이 어떻게 진행되어가나 기꺼이 경청해 줄 테니까요.”


 이상은, 맥빠진 웅변술로 앵무새처럼 되풀이 해 들려주는 웨베르 부인의 말씀이었다. 웨베르 부인은 단호한 신념과 능력과 영향력을 과시하면서 유창한 언변으로, 남편인 웨베르 공사를 대신하는 참모역활을 하고 있다. 그녀는 아주 긍정적인 척 하면서 자기 남편을 그리고 자신의 입장을 슬쩍 높이 올려놓는 재주가 있다. 그들의 편에서 저지르는 실수의 가능성은 조금치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도에서 나오는 태도가 분명하다. 그녀가 즐기면서 말하는 논의의 요지는 ‘도둑이 다른 도둑을 잡게 만드는 제도’에 있다.


 웨베르 부인은 김홍륙의 부정직한 짓을 애써 변명하고 나선다. 조선 사람들 모두 다 그렇지 않느냐고 일깨워 주려는 듯한 말투로.


 뭔가 흉칙한 일이 벌어질 듯 섬찟한 느낌이 든다. 김홍륙의 수중에 드신 상감과 마귀같은 간신들 사이에서. 웨베르 공사만이 마귀의 손아귀에서 놀고 계신 불상한 우리 상감님을 끌어낼 권한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자니 만사가 잘 되어갈 리가 없다. 정의도 없고, 경제력도 없고, 희망도 없다.

 

 


 나는 웨베르 공사에게 내가 해야할 의무와 생각을 충분히 얘기해 주었다. 이 싯점에서  내 일신의 평안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정치판으로 돌아가야겠다. 웨베르 부인의 말이 옳다. 조선은 모든 국민들이 일을 많이 하고 말은 적게-특히 정치적인 이야기는-하는 것이 최상책이라고 한 말은 더 말할 것없이 옳은 말씀이다.


 저녁 9시가 되어 내 방으로 돌아오다. 이건호 씨가 찾아오다.  그의 동생이 상감이 환궁하시도록 하는 최근의 음모에 연루되고 또 다른 일이 겹쳐서 10년 형을 선고받고 제주도로 귀양 가게 되었다고 한다. 


 리이드 박사님과 송도로 여행할 준비로 부산하다. 거의 자정이 되어서야 잠 자다. 나도 이젠 지쳤다. 


2월 9일. 화요일. 아주 맑고 추운 날씨.      


 우리가 송도에 타고 갈 마차를 아침 일찍 해뜨기 전에 끌고 온다던 마부들이 8시가 지나도록 오지 않는다. 8시 10분이 되어서야 출발하다. 매서운 북서풍이 하루종일 몰아친다.  내 행색 때문에 하루종일 괴로웠다. 리이드 박사님은 나보다는 조금 낫다. 그는 일기에 대비해서 따뜻한 겨울 옷을 준비해 오셨기 때문이다.


 고양에서 점심식사를 하다. 그 여관에 십 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려와서 인사를 한다. 그 가운데 몇 사람은 우리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오후 5시에 파주에 도착하다. 다행이도 그날 밤을 지낼만한 허름한 여관방을 찾아냈다.


2월 10일. 수요일 맑게 갠 날씨인데 아주 춥다. 


 우리가 북쪽 방향으로 더 나아가자 추위는 더욱 사무쳤다. 장단에서 점심식사를 하다. 3시 30분에 송도에 도착하다. 이틀 동안의 마상 행진과 도보 행진과 살을 에이는 듯한 추위때문에 나는 다리를 들어올리기도 힘 들었다. 이모부 이건혁씨 댁으로 곧장 가다. 이모부는 아주 멋진 집에 살고 계셨다. 리이드 박사와 나를 환영하며 진심으로 반가워 하셨다.


 이모부가 리이드 박사를 카펱이 깔리고 큰 거울이 달린 안방으로 안내하자 리이드 박사님이 놀라시는 모습이 너무 재미있다. 한 치도 흐트러짐이 없고 빈틈 없는 신사이신 이모부가 자랑스럽다. 


 이모께님도 반갑게 인사 드렸다. 귀엽게 생긴 젊은  처녀는 이모님의 딸인데 함께 살고 있다. 그런데 이 이종매가 14세에 결혼했다니! 사람들이 모두 내게 친절하게 대해 주느라 애쓴다.


 저녁 식사후, 나는 이모부님께 우리 여행의 목적을 말씀 드렸다. 이곳에 선교기관을 세우고 계몽학교를 설립할 목적으로 송도를 답사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이모부는 흔쾌히 우리 계획에 동의하시고, 안전하고 단단한 대지를 물색하는 일을 성심껏 도와주겠다고 하신다.   


2월 11일. 목요일. 맑고 포근한 날씨.   


 아침 식사를 마치고, 이모부는 리이드 박사와 나를 그의 집에서 가까운 어떤 대지를 구경시켜주셨다.


 우리가 올라간 언덕은 한 때 고려 시대의 궁궐이 서 있던 자리였다. 지금은 건축물의  주춧돌만 남아있다. 현재의 조정이 이 궁궐을 존속하지 못했구나 하는 것이 내 마음 속에 짚여 오며 측은감이 일었다. 내 생각을 아시고 이모부는 아주 당연한 듯이 말씀하신다.


“자기 나라(조선-역자주) 궁궐을 지키지 못한 자가 어찌 다른 백성(고려- 역자주)인들 거두었겠는가?”


 이모부 말씀이, 이용익이 몇 해 전 송도에 살때, 그의 강제 징수 정책 때문에 폭동이 일어났으며, 비도덕적인 생활로 인해 추방당하고, 많은 주민들에게  복수의 대상으로 집안이 파멸되고 말았다고 한다.


2월 12일. 금요일. 아름답고 포근한 날씨.


 오전 8시에 이모부 댁에서 출발하다. 남쪽으로 가는 여행이므로 푸근한 날씨라서 일정이 힘들지 않았다. 파주에서 밤에 여장을 풀다.


2월 13일. 토요일. 아름답고 포근한 날씨.


 아침 6시 반에 파주를 떠나다. 오후 4시에 서울에 도착하자 지쳐 버렸다.


2월 18일. 목요일. 또 다시 아름다운 날씨.


 전동집, 산정(山亭)으로 옮겨 가다. 방 안팎으로 돌아다니며 보이는 것은 모두 내 사랑하는 아내를 생각나게 한다. 벽장 안에서 아내가 신었던 옛날 신발 한 켤레가 나오다. 그 신발에 나는 무한정 키스를 퍼붓지 않을 수가 없구나! 아내가 없이는 행복감을 맛볼 수가 없구나. 하느님, 우리가 빨리 다시 만날 수있는 은총을 베푸소서!


이런일 저런일을 생각하며.


1. 전에 어느날, 정킨씨가 서소문 밖에 있는 그의 집을 현찰 450불에 팔거나, 500불에 3년동안 3회 할부로  팔 겠다고 제안하다. 그 집을 3년 활부로  사기로 하다.


2. 웨베르 부인의 애국심에 대한 개념이란, 왕에게 헌신함을 의미한다. 행복이란, 그 사람의 개인적인 충성심이 그의 의무와 국가복지가 일치할 때에만 생기는 것이다.


3.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사람들이 내게 취직시켜 달라고 졸라댄다.하릴 없이 바쁘게 돌아다니는 이 건장한 남자들은 조선사회의 독버섯이 되리라. 갈취 하기에 바쁜 관료주의자들이 득실거리고, 해면같은 식객이 우굴거리는 사회 조직체, 미신 행위 인구가 날로 늘어나는 사회, 이것이 조선사회의 풍속도란 말인가.


4. 조선 여자들의 생활은 또 어떠한가. 쉴 새없는 고역의 나날이리라. 여자는 많은 상전을 모신 종에 불과하다. 남편이라는 상전, 시부모라는 상전, 아이들이라는 상전, 등. 여인들은 그들의 시간을 황당한 조선 가정제도의 의무에 몽땅 바쳐야만 한다. 정신적인 자기개발의 시간도, 아름다움을 감상할 시간도 없다. 음식과 의복 만들기가 생활의 전부이다. 


조선  여자들에게, 꽃들은 반갑지 않게 얼굴만 붉힌다. 조선  여자들에게, 그림은 뜻 모를 색채일 뿐. 조선  여자들에게, 새들의 노래소리 들려오지도 않는다. 


조선 땅에는 아이들 손에 쥐어줄 장난감이 없다. 조선 땅에는 여인이 감상할 꽃이 없다.       조선 땅에는 남자들이 독립할 자유가 없다.


5. 내 나이 열 다섯 때는 여관에서 먹는 고급 반상이 기껏해야 15전에서 20전이었다. 지금은 점잖은 여행자가 한 끼 밥을 먹으려면 20전에서 25전을 주어야 한다. 15년 전에 인력거꾼은 20전에서 25전 받았는데, 지금은 십리만 가도 현금으로 400 내지 450전을 주어야한다.


6. 지난 몇 주간 동안, 이른바 유생(儒生)과 진신(縉神) 벼슬아치들은 상감께서 환궁 하시도록 청원하는 탄원서를 상감께 올리고 있다.


독일 공사관 앞 광장과 공사관 길 입구에 돗자리를 깔아놓고 부복한 채.


웨베르는 이 항거 데모를 국왕에게 환궁하시라는 제안이라기 보다는 상감님을 겁주려는 것 같다고 말하다.

 

2월 20일. 토요일. 아름답고 좋은 날씨.


 상감께서 오후 2시에 *정동의 새 궁전에 드시다. 정동으로  환궁하신 게 기쁘다. 하지만, 조정의 분위기가 개선되리란 기대는 하지 않는다. 자리를 옮겼다고 해서 본성이 변하진 않을 터이므로.


어여쁜 내 사랑에게서 마음을 상쾌하게 해주는 편지를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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