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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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제21회)
knyoon

 

 

(지난 호에 이어)
 계속해서 양피지를 직직 그어대는 펜소리가 났다. 멜라니는 말을 더 하려다가 그만두고 어깨를 풀썩 추석인 다음에 침실로 들어가려 했다.


 어거스틴은 펜을 내던지고 팔을 쭉 펴서 손가락의 근육 운동을 했다. 그는 여자에게 소리쳤다.


 “잠깐!”


 멜라니는 걸음을 멈추었으나 그에게 등을 돌린 채였다. 그녀는 반항심에 고개를 쳐들었다. 서쪽 창문으로 오후의 햇살이 만(灣)을 가로질러 쿠루비스 반도에 뻗친 육지 위로 비취는 것을 바라보았다.


 “난 말야, 오늘 아침에 당신이 시장에서 돌아올 때 호위병이 있었다는 걸 알고 있어.” 그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그녀의 고개가 더 높아졌다.


 “부인하진 않는군.”


 “난 당신에게 염탐꾼이 있는 줄은 몰랐군요.”


 “어떤 사내가 당신을 만나러 세 번씩이나 집으로 왔었다는 것도 알고 있어.”


 “그 염탐꾼은 누구죠? 알리피우스, 호노라투스, 아니면 네브리디우스?”


 “버질의 말이 맞았어. 여자는 변덕스러운 존재여서 항상 변절할 수 있다고 했지.”


 “남성이 여성의 매력을 알아냈다는 이유로 여자는 비난받아야 하나요?”


 어거스틴의 뺨이 빨개졌다. 그는 벌떡 일어나서 의자를 꽝 치며 소리쳤다.


 “넌 창녀야!”


 그녀가 천천히 돌아섰다.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녀의 이마엔 차디찬 평온이 감돌았고, 그녀의 손은 힘없이 한쪽으로 늘어져버렸고, 그녀의 눈은 까만 호수처럼 잠잠했다.


 “당신 말이 옳아요. 난 당신의 창녀예요.”


 그녀는 한 마디 똑똑히 말했다. 그녀는 발꿈치를 돌려서 침실로 달려갔다. 어거스틴은 화를 벌컥 낸 것을 합리화시켜보려고 어떤 변명을 생각해내면서 증오심에 그 방을 둘러보았다. 그 방은 멜라니가 오기 전에 알리피우스와 호노라투스와 네브리디우스와 함께 살던 같은 건물 안에 있다.


 멜라니는 자기가 훌륭한 가정주부가 못 된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했다. 땅거미가 져오는 어둠 속에서 그 방은 마치 교활한 에버소레단(團)이 휘젓고 지나간 자리처럼 어지러웠다. 


 방석들은 방바닥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아카시아 나무로 만든 상자는 뚜껑이 열린 채 그 속에 든 것이 반쯤 밖으로 흘러나와 있고, 밝은 색 회벽은 얼룩점으로 더럽혀져 있고, 한쪽 벽에 놓인 대나무 침상 밑엔 먼지가 뽀얗다. 동쪽 창틀에 얹힌 금간 항아리엔 시든 매역취나무 줄기가 몇 개 꽂혀 있었다. 


 “이 방 꼴좀 봐!” 어거스틴이 화를 벌컥 내면서 소리 질렀다.


 “더러운 돼지우리 속의 돼지도 여기선 10분도 못 참을 거야. 내가 어떻게 2년씩이나 참아왔는지 모르겠단 말야.”


 그의 욕설이 끝나자 침묵이 흘렀다. 


 “어째서 내가 친구들과 함께 있는 걸로 만족하질 못했을까?”


 그는 왔다 갔다 하면서 의자와 책상 모서리를 걷어찼다. 


 “적어도 질서란 게 있었는데.” 그는 가만히 서 있다가 생각에 잠긴 얼굴로 침실을 향했다. 그리고는 또 소리쳤다.


 “난 광대 노릇을 해 왔었지. 이젠 그 짓을 포기해야겠어.” 


 흐느껴 우는 소리가 그의 귀에 들려왔다. 어거스틴은 치를 떨었다. 손가락으로 귀를 틀어막고 방을 나와 누미디아의 서늘한 황혼 속으로 집을 뛰쳐나갔다.


 지중해의 바람이 그의 얼굴 위로 부드럽게 불어왔다. 삼나무와 유칼리나무가 늘어서 있는 깨끗한 거리는 단조로운 그의 집보다 안도감을 주었다. 


 해가 질 무렵, 그는 비르사 산에 올랐다. 복잡한 도시를 벗어난 그는 다리를 쭉 펴고 팔짱을 끼고 카르타고 만 저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의 마음이 바다안개처럼 떠다니도록 내버려두었다. 


 멜라니와의 이태 동안은 그에게 폭풍 같은 기간이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정열적이었던 6개월이 지나간 후, 그들의 결합에도 단계적인 변화가 보였다. 어거스틴은 그 변화를 분석해 보려고 애를 썼지만 그것은 헛된 노력일 뿐이었다. 

 

 


그는 처음 못지않게 멜라니를 사랑했음을 그녀와 자기 자신에게 맹세하기도 했다. 그러나 왠지 그런 큰 소리가 공허하게 조롱조로 울려왔다. 그는 어떻게 된 건지 전연 알 수가 없었고 미친 듯이 그 해답을 찾으려고 전력투구할 뿐이었다. 그는 연못에서 물을 마시려고 고개를 숙였으나 물은 뒤로만 흘러가서 목이 바작바작 타는 탄탈루스와 자기를 비교해 보았다. 


 그 변화가 실제로 그의 정신 상태의 변화와 일치되었다는 게 이상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거스틴은 그의 지성적인 정열이 둔해지기 시작했음을 알았다. 고전에 대한 관심도 시들해졌다. 버질의 시마저 그를 지루하게 만들었다. 교수들과 친구들은 그의 태도가 무기력해진 것에 주시하며, 무엇이 그런 태도를 가져왔을까 궁금해 했다. 정복할 세계가 이젠 더 이상 없어졌기 때문일까?


 순수한 의지의 힘으로 그는 무기력 상태에서 회복되었다. 겉으로 나타난 모든 것, 즉 그의 외모와 친절과 사람들에 대한 박력 있는 태도는 여전했던 것이다. 다만 멜라니와 자신만이 그를 계속해서 사로잡고 있는 내면의 혼란과 비정상이 따르는 긴장을 알고 있었다. 


재정적인 곤란과 개인적인 질투심, 일상생활의 마찰이 화덕 불에다 숯을 집어넣어 준 것 만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이 모든 사실보다 더 깊은 것은, 조수처럼 신비스럽게 끄는 힘과 그 강력한 인력이었으며, 이 두 가지 힘은 모두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어거스틴은 이것을 해안에 깊게 드리워진 저녁의 검은 그림자로 쳤다. 불빛이 언덕 아래에 있는 도시에 번쩍였다. 낮게 웅얼거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바람이 점점 세차게 불어 만에 있는 바닷물을 휘저어 소용돌이치며 흰 거품을 일게 했다. 그 거품은 비르사에 서서 쓸쓸하게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마음의 소용돌이를 생각하게 했다. 


 문득 그의 머리속엔 타가스테에 있는 아버지의 농가에 하얀 벽이 있는 방들이 떠올랐다. 그는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밤중이었다. 어거스틴과 나비기우스와 주니아는 마루에서 어머니 발밑에 앉아 있었다. 모니카는 그들에게 성경을 읽어주곤 했는데, 그날 밤은 잠언서부터 읽었다. 잠언서는 모니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었다.


 “마음은 자신의 그 괴로움을 아나니...”


 어거스틴이 그 구절이 끝 나기도 전에 물었다. 


 “어머니, 그 말이 무슨 뜻이어요?”


 그는 어머니의 대답을 결코 잊지 않았을 텐데 질문을 한 것이다. 어거스틴이 그 질문을 했을 때 집 밖에서 파트리키우스의 발자국 소리가 난 것 같았다. 아버지는 시내에 일을 보러 갔다가 돌아온 것이다.


 모니카는 손을 내밀어 어거스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얘야, 얼마 안 있으면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된단다.”하고 그녀는 부드럽게 말했다.


 어머니의 그 말씀이 옳았다.


 어거스틴이 다시 돌아왔을 때, 멜라니는 그 곳에 없었다.


 “애인 중의 한 놈한테 가버렸겠지.” 그는 혼자서 분을 터뜨렸다.


 그는 기름등잔에 불을 붙이고 청어와 찐빵으로 저녁을 들었으나 맛이 없었다. 책을 읽어보려고 했으나 그것도 소용이 없었다. 그의 마음은 멜라니에게 가 있었다. 저녁 무렵 알리피우스와 호노라투스가 마실을 왔다. 호노라투스의 꿰뚫는 듯한 통찰력이 무슨 일인가 일어났음을 알아차렸다. 


 “무슨 일이 있었나?” 호노라투스가 물었다.


 “별로 대단한 일은 아닐세. 재정적인 곤란이 좀 있긴 하지만.”


 어거스틴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했다.


 알리피우스가 방을 둘러보더니 물었다.


 “멜라니는 어디 갔나?”


 “아, 밖에 좀 나갔어.”


 “이렇게 늦게?”


 “음.” 어거스틴이 대답했다.


 호노라투스는 그가 혼자 있고 싶어한다는 걸 눈치챘다.


 “자, 알리피우스, 우리 가서 책이나 좀 읽자.” 하고 그는 말했다.


 그들이 돌아간 다음, 어거스틴은 침실로 들어가 옷도 벗지 않은 채로 누워버렸다. 몇 시간 동안을 그는 발작이 난 듯이 이리저리로 몸을 뒹굴었다. 멜라니에 대한 분노와 함께 그녀의 신변에 대한 걱정이 마음속에 범벅이 되어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난 멜라니가 미워.”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나 그 여자를 미워하고 그 여자를 사랑해. 카룰루스가 레스비아에게 어떤 감정이 있는지 알 만하군. 카룰루스처럼 난 고민에 빠진 거야.”


 그가 옅은 잠이 들었을 때 이미 동녘에 먼동이 트기 시작했다. 얼마를 잤는지 모른다. 해가 떴으므로 오래 잔 것 같진 않았다. 옆방에 있는 마루를 건너지르는 물체의 소리가 그의 잠을 깨웠다. 깜짝 놀란 그는 침대에서 내려와 문 쪽으로 달려갔다.


 이른 아침의 햇빛 속에 멜라니가 그가 마지막 본 모습 그대로 서 있었다. 어두운 그림자가 그녀의 눈꺼풀 밑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눈동자엔 슬픈 빛을 띤 채 그녀는 방을 치우고 있었다.


 “멜라니, 뭘 하고 있는 거야?”


 그녀는 어거스틴을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더 훌륭한 주부가 되어보려구요.”


 이것이 배신의 죄를 덮어버리고자 하는 희생의 공물이냐고 물으려 했으나, 그는 참았다. 멜라니가 그의 침묵을 말 없는 고문으로 받아들이기를 바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멜라니는 젖은 걸레를 들고 카우치 밑의 바닥을 닦으려고 무릎을 꿇고 있었다. 걸레를 바꿔 쥐면서 그녀는 말했다.


 “당신 생각이 잘못이어요. 난 당신께 신의를 지키지 않은 적이 없어요.”


 어거스틴의 마음이 부글거렸다.


 “시장에서 집에 데려다 준 사람은 어떤 선원이었어요. 어떤 술주정꾼이 길거리에서 날 희롱했어요. 이 때 그 선원이 지나가다가 그 소리를 들었어요. 그 사람이 주정뱅일 때려눕히고 보호해주려고 집까지 온 거예요.”


 “또 다른 놈은 뭐야?”


 “날 찾아온 사람 말예요?”


 “그래.”


 “몰라요. 친척이겠지요.”


 “말콰에서 대낮에 당신하고 같이 있던 로마 병정처럼 말이지?”


 “어머니는 커다란 농장을 가지고...”


 “그 사람들이 모두 카르타고에만 모인 모양이로군.”


 멜라니의 얼굴에 고통스런 빛이 떠올랐다.


 “날 더 이상 괴롭히지 마세요. 견딜 수 없어요.”


 그는 여자에게 용서를 빌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가 집을 나간 문제가 아직 남아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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