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434 전체: 556,068 )
민영환과윤치호 러시아에가다 제13회
knyoon

 

2015-04-02

민영환과윤치호 러시아에가다 제13회

 

 

 
8월17일. 토요일. 어제처럼 덥다. 서울.


 오후 8시 30분에 의화공이 나를 방문하다. 그 왕자는 18세의 명랑한 청년이다. 미숙하고 위험한 처지가 그를 조심스럽게 관망하게 만든다. 의화공은 그의 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씨를 많이 닮았다. 그는 해외로 나가는 것을 아주 두려워한다. 박영효 내각 때, 그는 일본 특사로 임명되었다. 그런데 박영효의 몰락으로 무산되었다.   전하께서는 타고난 공포심때문에 아들에 대한 부성애를 잘 보여주지 못하는 것 같다.


무얼 좀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조선에서 탈출하고 싶어한다. “희망이 없다!”고 모두 웨친다. “자아, 서쪽으로 눈을 돌려라!”란 말이 그들의 입에 달린 슬로건이다.

 

8월18일. 일요일. 시원한 아침-더운 대낮. 서울.


조선 감리교회 예배에 참석하다. 언덕위에 사는 귀부인들과 점심을 같이하다. 호레이스 알렌 박사를 방문하다. 박사가 말하기를 어윤중 같이 강직한 인재가 단지 상감의 엉뚱한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임 된 것을 아주 유감스러워한다.


브라운씨와 오랜동안 이야기를 나누다. 그는 조선에서 돌아가는 일들을 보고 실망한 듯하다. 뒷전에서 음모 꾸미기, 앞에선 썩어빠진 아첨떨기, 급속히 늘어나는 오래된 악습 들이 아무렇지 않게 국가의 재난으로 몰아가고 있다.


민영달을 방문하다. 민씨 문중 에서는 진취적인 사람이다. 그는 내게, 서울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정말 안든다고 말한다. 최근에 민씨들이 범죄와 결탁하는 왕족의 비리가 역겨워 졌다는 것이다. 나는 그에게 러시아로 여행하는 게 좋겠다고 권하다. 러시아는 조선과 복합적인 관계를 가지게 될 것이므로 조선을 위해서도 잘 될 것이다. 시간 문제일 뿐이다. 조선이 위대한 이웃나라의 조건과 의도에 맞는 믿을만한 이웃 친구나라를 갖는다면 조선으로서 아주 잘된 일이다.

 

8월19일. 월요일. 매우 덥다가 시원해진 날씨. 서울.


헨드릭스 감독에게, 조선을 방문하도록 편지 쓰다. 9월 말이나 시월에 방문하면 좋겠다고 말하다. 
의화공이 내게 편지로, 그가 일본 공사로 가는 일이 취소되고 이재순이 자기 대신 가게 되었다고 써보냈다.
사촌 치오의 부인과 ‘다른 여인’ (의화공 수발들어줄 소실-옮긴이)이 18일에 제물포를 떠나 일본에 가다.    주님의 축복이 함께 하소서!

 

8월20일. 화요일. 대낮엔 아주 더운 날씨. 서울.


민영달을 방문하다. 그는 내게 대궐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온통 옛날처럼 나쁘게만 돌아간다고 말하다. 일본이나 유럽 등의 비싼 국비연수생 25명 중에 민씨가 5명이나 된다고 개탄하다. 상감은 신원을 알 수없는 어릿광대들과 정탐꾼들에 둘러싸여있다고 한탄한다.
콜레라가 서서히 서울에서 물러가는 듯하다.

 

8월21일. 수요일. 새벽에 매우 추운 날씨. 서울.


4000 명의  병사인지 공병인지 그들에게 들어가는 국고가 가슴 속에 기어들어 온 뱀보다 더 빨리 고갈이 되어가고 있다. 정부와 대궐에서는 너무 늦게야 그 사실을 안 듯하다. 그 군인들에게 줄 임금이 바닥난 사실을 늦게야 알아챈 것이다.


일본은 조선의 궁궐이 재빠르게 파멸로 치닫는 일을  도와주려는 것 같다. 아울러 일본 대표들은 조선의 제2의 파멸을 기다리며 관망하고 있는 것 같다. 

 

8월28일. 수요일. 해가 나고 구름도 낀 날씨.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궐내에 있었다. 9월 4일 현 조선왕조 건국기념일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


1. 무지막지한 소요와 군중들을 빼면 조선은 할 일이 없는 나라 같다. 그럼에도 경이로운 일은, 그 모든 큰 소요가 어떻게 그렇게 갑자기 잠잠해 지는가이다.


2. 대궐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유교의 옛날 관습, 황당함을 되찾는듯 했다. 비록 범위가 줄어들고 변화가 있다 해도.
전하는 미천한 허풍쟁이, 험담꾼, 술수쟁이, 거짓말쟁이들이 그들의 실속 을 성취하려고 상감을 구름 위에 둥둥 태우고 둘러싸고 있다.


3. 이시쓰가(石塚)와 늦도록 담화를 나누다. 그는 말하기를, 자기는 이노우에 공 의 지시를 받은 적이 없다는 것, 조선 정부에 고문관으로 강요를 받은 사이토와 시오타루 같은 사람은 그들 업무에 적격이 아니란 것, 그리고 이곳에 주재하는 일본 대표들은 지난 봄에 차관한 300만 불에 대한 그 비참한 입씨름을 후회하고 있다는 것이다.


4. ‘전중이’(田中)란 말은 조선말로 유죄선고를 받은 노동자란 뜻이다. 이 말이 들어 온 경로는 이러하다.14년 전 쯤에, 다나카라고 하는 한 일본인 건설업자가 쿨리 몇명을 데리고 조선에 왔다. 그는 자기 이름을 프린트한 짧은 키모노 일본옷을 입고 있었다. 조선사람들은 그 쿨리들을 일본사회에서 가장 천하게 여기는 일을 시키고,비난과 멸시의 뜻으로 다나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유죄선고 받은 노동자 제도가 작년에 도입 되자, 요 몇 해동안 그 이름을 부르는 데 익숙해졌다. 그러자  사람들은 당장에 그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푸른 수의에 검은 띄를 두른 사람들을 향해서.


5. 박영효가 한 때 나를 의심했다는 정보를 듣다. 그가 일본에 목숨을 의탁한 반대파이며  불한당의 한 사람으로 나를 의심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후쿠자와(게이오대 설립자-옮긴이 )씨와 논쟁을 벌인 다음에야 그의 충고를  받아들이고  그의 정신나간 생각을 포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8월31일. 구름 끼고 더운 날씨. 서울.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궐내에서 행사 준비하다. 창고 안에 보관한  사기그릇을 점검하는 일 등등. 그리고 상감께서 2, 3년 전에 세운 외빈 숙소등도 점검하다. 나는 조심해서 다루어도 모두 부서져버리는 비싼 가구들을 보고, 궁궐이 온통 나태하고, 먹고 자고 도적질하는 놈들만 우굴거리는 곳 같아 보였다. 그 악당들의 임무는 창고지키는 일과 뭐 그런 저런 할만한 일들이 있다.  그러나 조심해서 다루는 일 외에는 할 일이 없는 대궐을 개혁하기 전엔 이 나라 개혁에 희망이 없다.


 대궐 안에서 다이 장군과 닌스테드 대령에게 음식을 해주는 사람이 한 달에 600불을 받는다고 한다.
 대령이 보고한 바로는 한 달에 300불 받는 대령이 되기보다는, 다이 장군 집의 베란다에 앉아서 일하는 숙수가 되는 것이 낫겠다고 한다. 


이학균씨가 웨이터에게 르 젠드르 장군과 손탁 여사를 위해 맥주를 주문했다. 내가 보니(정말 보기만해도 미친 노릇이다), 키가 큰 세명의 남자가 각각 맥주를 한 병씩 들고 온다.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인데! 
그런데, 이학균의 말이, 박용화가  상감에게 둘도 없는 영향을 주는 측근이라고 한다.  

 

 

 

9월 4일. 수요일.


  지난 며칠 동안 지독하게 쏟아지던 장대비가, 운 좋게도 건국기념 축제가 열린 동안에 멈추었다.여름궁전(경복궁-옮긴이 )을 일주일동안 밝혀 줄 온갖 종류의 낮은 초롱불들을 준비했다.


오후 3시에 전하께서  수완이 좋은 외교관들 에게 알현할 기회를 주셨다. 5시에는 왕비께서도 외국 대표들 부인들과 조선 대신들과 협판들에게도 똑같이 알현을 허락하셨다. 내사랑하는 어여쁜 아내와 아기도  상감님의 큰 은총을 입었다. 전하께서는 우리 딸 로라에게 예쁜 조선 부채를 하나 하사하셨다. 어린 소녀는 상감님과 악수하는 귀한 특권을 기쁘게 누렸다.


오후 8시에 오색 등불과 일본 등, 중국 등, 조선 야등이 휘황한 여름궁전 뜰에서 만찬이 시작되었다. 큰 방을 장막을 쳐서 둘로 갈라놓았다. 큰 방은 조선 신사와  외국인 신사들이 차지하고, 나머지 방은 숙녀들이 가득히 들어찼다. 정해진 시간이 되자 전하께서 짧은 연설을 하심으로서 모임의 시작을 알렸다. 그런 다음 전하는 손님들이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물러나셨다. 중전마마께서도 숙녀 들의 방에서 똑 같이 자리를 비켜주셨다. 사람들이 그 모임을 모두 즐겼다. 조선 사람들은 모두 춤 추고 음악에 따라 노래를 불렀다. 전통 불꽃놀이도 모두 좋아했다. 


신사들이 모인 방 안에서, 나는 전하의 하명을 받고 전하와 대신들을 위해 통역을 했다. 나는 전하가 말씀하시는 진지한 찬양의 메시지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외국인들 앞에  통역해드 린 것이다. 무엇보다 즐거웠던 것은, 내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웨베르공사와 씰공사가 나의 성공과 나의 건강을 기원하며 건배한 일이다. 밤 12시가 되어서야 해산하다.

 

9월 7일. 토요일. 오전에 비 내리다.


이유와 대책.


1. 김학우가 암살 된 이유.

그는 어름처럼 냉철한 법무대신으로서 대원군의 큰손자인 이준용이 나라의 재산을 착복한것을 조사하게 되었다. 이준용과 공모한 자중에 두 명이 붙잡히자, 이준용이 착복한 사실이 밝혀졌다. 김학우는 당연히 김홍집 총리에게 그 자백내용을 보고했다.김 총리대신은 전하에게 보고 하지않고  대원군에게 먼저 일러 바쳤다. 그 노인은 그날 밤으로 김학우를 없애버린 것이다. (이하영의 말에 따르면 그렇다.)


2. 전하께서 김윤식 전 탁지부 대신을 싫어하시는 이유.  

중국의 원세개 장군은 여러해 전에 무한대의 권력을 휘둘렀던 사람인데. 김윤식이  전하를 해치려는 음모에 연루되었다. 그 계획은 실패했지만, 그만큼 원세개의 영향으로 김윤식이 밀려난 것이다.(이하영의 말)


3. 이채연이  전하의 측근이 된 이유.

작년에 일본인들이 서울로 몰려 들어올 때, 이채연이 전하에게 아뢰기를, 그가 엉클 샘(미국인-옮긴이)을 보내서  임금을 구해드리게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물론 그 말같지 않은 작전은 실패했으며, 이채연은 일본인 아래에서는 감당키 어려움을 알았다. 그래서  전하께서 그가 위기를 잘 피하게 하려고 먼 지방  관찰사로 임명해 버리셨다. 위기가 지나자 전하께서 그를 다시 불어들이셨다.


4. 이노우에가 대궐을 손아귀에 넣은 방법.                            

일본정부가 조선에 3백만엔을 꿔 줌으로서 중국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한다. 이노우에는 이것을 미끼로 조정의 큰 환심을 샀다. 


5. 내가 일본인들을 싫어하는 이유.

조선의 유일한 우방이 되겠다고 표방하면서, 조선에 와 있는 일본 공사와 영사들은 수십년전에  유럽이 일본을 가지고 농락했던 것과 똑같은 치사스런 함정을 파놓고 있다. 일본은  더 치사스럽고 쩨쩨한 방법으로 조금 더 멀리 겨냥할 뿐이다. 서울에서 같은 지역 안에 혼합거주지역법을 만들면서도, 조선인이 일본인들과 휩쓸리는 일은 피하려고 한다. 조선에 파견된 일본인들은 다루기도 힘든 가장 악질적인 인간들이다. 그들의 천박함은 우리를 우방국가로 선전할수록 더 그 천박함이 들어난다. 실천하지 않으면서 그럴듯하게 선전하지만  우리를 더 오래 속일 수는 없을 것이다.

 

 9월 17일. 화요일 . 아름다운 날씨이다.   


이노우에 백작에게 잘 가라는 인사를 하기위해 용산에 갔다. 그는 오전 11시 30분에 용산을 떠났다. 그가 조선에 두번 째 방문한 동안 한 일이란, 조각조각 찢어진 오카모도의 옷을 풀로 붙여놓은 일에 비길만하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