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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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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환과윤치호 러시아에가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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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0

민영환과윤치호 러시아에가다(11)

 

 

3월19일. 화요일. 아름다운 날씨. 서울.

 10 개 부처에 사람들이 몰려 있어도 할 일이 없다. 農部만 해도 3명이면 족한데 지금 30명이 넘게 있다. 學部에도 마찬가지이다. 


얼마 전에, 한 일본인 방문객이 내게 말하기를, 자기는 그 웅대한 대궐을 구경하러 온 그 많은사람들이 그렇게 가난에 찌들어 있는 것을 보고 너무 놀랐다고 한다. 별로 놀랄 일도 아니다. 인과응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어여쁜 나의 보배, 내 아내에게 편지 쓰다. 존경하는 리쳐드슨 선생에게도.
자애 깊으신 내 어머님이 독감에 걸리셔서 몹시 앓고 계시다.


3월20일. 수요일. 아름다운 날씨. 서울.


오후 5시에, 배재중학교에서 미국의 교육제도와 조선 교육제도의 결점에 대해 강연하다.
내 연설이 끝나자, 우범선이 내게 말하기를, 그런 연설하는 일로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내가 외국인의 보호 아래에 있는 개인의 안전에 대해서 말하는 것도, 교육과 정보는 개혁의 뿌리가 제정될 때 결국 가지와 잎사귀의 관계라고 말하는 것도 다 시간낭비라는 것이다. 그 충고는 내 마음에 깊은 상처를 준다. 내가  절실한 개선책을 순수한 열망으로 말한 것인데, 이기적인 동기를 제언한 것처럼 책망하다니. 우범선은 분명히 교육보다는 법률제정 쪽이 맞는 것 같다.


김노완이 내게 정보를 주다.


1. 무예청은 지금  임금님 의 스파이 노릇을 하고 있다.
2. 유길준은 교활하고 위험한 인물이다. 그는 나를 상품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3. 상감께서 일본사람을 내보내고, 영어와 러시아어를 하는 사람으로 바꾸려고 하신다. 그러나 미국대표가 임금에게 말하기를 공화국은 일본과의 전쟁에 휩쓸리거나 영향을 받지않을 것이며, 조선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3월31일. 바람이 불지만 햇빛이 좋은 날씨. 서울.


1. 지난 1주일 동안 감기를 앓고 누워 지내다.
2. 24일에 영 알렌 박사와 캔들러 박사와 맥도날 형제로부터 편지를 받다. 나의 어여쁜 아내는 소식도 없다.
3. 차관 계획이 3백만원으로 비참하게 책정되다. 반은 은화로, 반은 지폐로 했다고 한다.
일본 정부의 왜놈들은 비열하기 짝이 없다. 이곳에 주재하는 일본대표들은 조선이 얼마나 희망도 없고 도움도 제대로 받을 줄 모르는 나라인가를 실감하기에, 흔들어 털어내기 작전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미국한테는 그런 치사스런 차관을 한다고 말할 면목은 없을 것이다.
4. 며칠 전에 탁지부독판(재무 대신 역자주)에게 편지를 내다.
상인들과 기능공들에게 휘둘리지 않아야 할 중대한 이유를 제안하고, 쓸데없이 비싼 임금만 축내는 관리들 수를 줄이도록 건의하다.
5. 어제 작은 아버님(윤영렬)이 강계부사로 요직에 발령나시다.
6. 27일에 캔들러 박사에게 편지 쓰다. 


(4,5,6월 일기 없음)


 

 


1895년   7월 7일. 일요일. 서울.


아침 5시. 박영효씨와 이규완, 신응희 체포 령이 내렸는데 도망쳤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서 깨어 일어나다. 안경수가 경무사로 임명되었다고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길준이 내게 어제 밤에 심각하게 문제가 된 궁내 포고문을 보내 소식을 확인해주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박영효가 다시 충성함으로서 자신이 지은죄를 속죄하기를 바라며 사면해 주었다. 그러나 이제 그가 배은망덕하게도 음모에 가담했음을 알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재판부에 그를 계속 추적할 것을 명하노라. 그리고 그의 안전을 보장하며 동행자들도 함께 사면의 은총을 받게 될 것이다. (閏 5월14일)”


 우리는 안전하단 말인가? 박영효, 조선의 전권을 쥐고 있던 그가 어제 밤에 자기 목숨을 구하려고 야반도주했다. 그의 앞에서 굽신거리던 사람들의 자비를 바라고. 나는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다.


 내 아내 윤 부인과 아기를 커틀러 박사에게 보내서 며칠 지내게 하다. 


 저녁에, 허치슨 씨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스코틀랜드 사람이지만, 조선에 대한 정치적인 견해는 강직한 프러시안답다. 그는 내게 다른 나라는 말고 러시아를 신뢰하는 게 좋겠다고 말한다.


난파선이 된 박영효에 대한 그의 견해는;
박영효가 스기무라 일본 공사 에게 왕비를  제거 하기 위해 50명의 일본 군사를 지원해 달라고 한 것. 러시아 공사의 지휘하에 있는 그 일본인은 감히 그 요청을 들어주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는 그 일본인이 그 소식을  상감에게 알린 것이다. 러시아가 도와줌으로서 사전에 발각이 된 것이다. 전하는 어제 밤에 바로 포고령을 내리셨다.

 

7월8일. 월요일. 서울.


오늘 아침에 알렌 박사를 방문하다.
그는 박영효의 모의에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음을 말하다. 그러나 알렌은, 그의 죄목을 믿기엔 얼마나 사실과 거리가 먼지 박영효는 몰랐을 거라는 의견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일본이 박영효를 전적으로 내치려는 것 같다. 그리고 러시아 공사도 그를 좋아하지 않음으로 박에게서 더 이상 다른 동기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소문과 생각들의 난무 속에서 전체적인 진상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분명히 알 수있는 사실은, 박영효의 몰락에 왕비가 재치있게 손을 쓴 일이다. 왕비는 박영효를 대원군과 한 통속으로 몰아넣었다. 왕비는 또 그를 김홍집과 그 일당에게 보내서 이용한 것이다. 결국 김홍집이 박영효와 한 통속이 되게 만들었다.
파멸에 이르게 될 다음 타자는 누구일까?


조선 사람들은 누구나 반상과 나이를 막론하고 박영효의 몰락을 즐겁게 관망하려는 듯이 보인다. 피로 물든 윤오월 14일 밤은 불행한 사건의 조짐이 되기에 충분하다.

 

7월12일. 금요일. 서울.


오늘 오후에, 나는 외부 협판으로 전직 발령이 나다. 내마음 같아서는 학부에 계속 남아 있기를 바랬는데도 말이다.

 

7월16일. 화요일. 서울.


오후 2시에 임명장을 받으러 입궐하다.


1. 사람들은 이노우에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모양이다. 그가 앞서 펴낸 정책을 보면, 아직까지 그가 뭔가를 완수해놓은 건 아니다. 그는 앞서 언급한 배타적인 정책을 따르려고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전하와 왕당파를 몰아냄으로서 러시아에 가까와지게 만들 것이다.


2. 일본과 러시아가 진정으로 조선에 좋은 역할을 하는 국가라면, 그들은 그들의 특권을 활용하여  임금을 지켜드리고, 또 한편으로는  각료들이 그들의 노선을 잘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3. 외국 대표들 간의 친선을 도모하는 연합정신이 절대로 필요한 때이다. 대궐과 외국공관 사이에서 악마 같은 술책을 부리며 비열한 상거래를 하는 화적떼들을 타파하기 위해서도 시급한 일이다.


4. 러시아 공사가 말하기를 왕비가 졸라대고, 김홍집이 졸라대고, 대원군도 지원해달라고 졸라댄다는 것.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나?
옛날에 결심한 대로 침묵,  신중함, 확고한 태도를 지킬 일 밖에 없을 것같다.


5. 나의 갓 테가 6.3 센티미터 폭이다. 일반적으로 쓰는 갓 테두리의 반 이다. 군부 대신 신기선이 내게 그런 갓을 쓰고 다니는 것은 협판 격에 맞지않는다고  나무란다.


6.  당신의 속 좁은 마음자리 칫수나 따져서 말하시오. 박영효의 속 좁은 처신에 대하여 수군거리다 등등.
이제  박영효는 가 버렸다. 조선 정부 안에서 인생의 태양 같이 빛나던 그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7. 사사키라는 일본 사람이 조선사람과 대화한 이야기를 쓴 것을 보았다. 그 조선사람 말이, 박영효는 음모에 말려들었다는 것. 조선사람이 이 멋진 연극 내용을 상감께 알린 것. 그래서 박영효에게 벼락이 떨어진 것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도 안전하다고 할 수가 없겠구나.


7월19일. 금요일. 좋은 날씨. 서울.


오전 일찍 제물포에 공식 방문하게 되다.
이탈리아 왕의 조카인 아메데 공작을 맞으러 나가는 전혀 달갑지 않은  출장길이다. 덥고, 먼지 투성이에, 느리기 짝이 없는 행보.

 

7월22일. 월요일.


오후 2시에 이탈리아 왕자와 그의 일행을 모시고, 이런 경우에 전세 내는 기선을 타고 돌아오다. 강물 따라 기선 여행을 하니 기분이 참 좋다.


오후 8시에 용산에 내렸다. 가마와 조랑말들과 노비들, ‘지게꾼’들, 경찰과 군인들이 정신없이 법석 대다. 이른바 안내를 맡은 사람은 안내만 하면 된다. 나는 군중들 틈에서 수하물을 잃어버리는 등 혼란스런 시간을 보냈다. 우리가 남대문에 들어서자 손님들이 체류할 장소 준비가 안되었다는 보고를 받고, 부랴부랴 영국 공사관으로 손님들을 안내하게 되었다. 나는 너무 창피하고 화가 나서 아메데 공작과 일행을 쳐다볼 ‘낯’이 없었다. 그러나 밤이 되자 나는 그 일행들을 공사관 안으로 떼밀어 넣다시피 하는 수밖에 없었다. 공사관 안에 들어서자 실망하고 지쳐버린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김윤식 대신을 만나러 들어갔다.


그동안 일어난 일들을 설명했다.그는 나를 데리고 궁궐로  가서 손님들이 내일 묵으실 수있는 숙박시설이 있는지 보러갔다.(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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