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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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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환과윤치호, 러시아에가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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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30

민영환과윤치호, 러시아에가다(4)


개화의 선각자 윤치호 일기 제4권
1895년 외부협판 윤치호가 쓴 민비시해와 춘생문 사건
역술(譯述) 윤경남 Yunice K. Min (국제펜클럽본부 회원)
[email protected]

 

 

*사진;윤웅렬 장군과 윤치호 부자(1882년)  

 

 

<1895년 1월의 상황: 역자 주>

1.윤웅렬 장군 부자는 10년 만에 사면을 받고 윤치호는 10년간 중국과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개화의 꿈을 안고 귀국한다.
2.조선은 갑오개혁을 시도했으나 재정파탄으로 일본으로부터 300만 엔을 차관한다.   
3.동학군을 진압한다는 구실로  일본군은 청국군을 몰아내고 조선에 진주한다.
4.이노우에 공사가 조선정부에 20개 조건을 제시하고, 실질적으로 내정간섭을 시작하다.
5. 상해 남감리교 선교부의 속사정을 기록하다.


 

1월11일. 금요일. 구름이 끼고 아주 추운 날씨. 상해 


북풍이 요 며칠을 두고 불어대어 난로불도 소용없게 만든다. 애퐁 자매의 집에서 몇 시간을 즐겁게 지내다. 아, 사랑스러운 여인이다! 사랑하는 아내는 그 자매가 내게는 아무것도 아닌양 터놓고 맡기는구나.


오후 5시에 옌 부인을 방문하다. 옌부인 집을 빌리고 싶지 않다고 말하러 갔다. 시엔숭은 내가 없는 동안 부모와 함께 지내기로 했기 대문이다. 옌부인은 영어를 아주 잘한다. 그녀는 자기 둘째 아들을 내게 인사시킨다. 외국에서 공부 하고 와서 못 쓰게된 중국사람이 있다면 바로 이런 사람이다. 나는 미국 남부에만 있었다고 말했더니, 그는  경멸하는 태도로 말하기를. “당신은 뉴욕에 가봤어야 하는데. 남부에서는 뉴욕보다 더 큰 도시가 없지요.”하면서, 난로 앞에 있는 안락의자를 차지하고 앉는다. 그의 발엔 맵씨나는 스립퍼를 꿰고, 입에는 시가를 물고서. 그의 어머니는 내가 샹해 사투리를 못알아 듣는줄 알고 나를 잘 대접하려고 애쓰면서, ‘희망에 부풀어 있는 젊은이’에게 말한다.


“넌 어째 벙어리처럼 거기 앉아 있는게냐? 에미보다 네가 영어를 더 잘 하쟎니. 어서 손님을 즐겁게 해드려야지.”


아들은 아무 말도 안한다. 그 젊은이는 내가 영국이나 뉴욕에 가본 일이 없다고 나를 깔보고 가련하게 여기는 게 틀림없어 보인다. 하지만 도리어 내게는 그가 우습게만 보인다. 그리고 아들이 런던이나 뉴욕에 정말 가 본것으로 알고있는 착한 어머니가 측은해 보인다.


리쳐드씨와 저녁나절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그가 말하기를, “당신 나라의 구호를 ‘전진과 박애정신’으로 하면 어떨까요. 난 중국인의 국민성은 별로에요. 기독교문화에서 좋은 것을 배우려고 하는 것, 그네들이 선량해서가 아니라 중국이 외국의 세력에 스스로 대항하기 위해서 라고요.”


그는 잠시 생각하는 듯 머뭇거리더니, 저녁식사로 중국 음식을 함께 먹자고 한다. 음식은 쌀밥에 생선과 야채 한 공기를 중국식으로 요리했다. 그는 깡통에 데운 소흥주를 마셨다. 나는 다루기 힘든 친구와 신경쓰며 밥상에 마주앉아 있는 것보다는 그와 함께 간단한 요리를 대접 받은 것이 더 즐거웠다. 

 

1월12일. 아주 추운 날씨. 이따금 희미하게 햇빛나다. 상해.


미야게(三宅)씨를 방문하다. 대화 중에 그가 내게 물었다. 


“ 청국이 조선을 중국의 일개 주로 포함시켰다면 전쟁이 터졌으리라 생각합니까?”
“글쎄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요. 다시 말해서,  청국이 그렇게 비켜간 것은, 나라의 어둡고 쓸모없는 정책이나 방어할 힘조차 없는 조선의 여건 때문이 아니라, 일본과 다른 세력들과  전쟁을 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일겁니다.


게다가, 아무에게나 감정을 상하지 않고도 침략해서 착복하면 조선반도가 공식적으로 먹혀들어올텐데,  청국이 무엇때문에 아무한테나 감정을 건드리겠습니까?  구걸하는 조선 정부에 돈을 조금 꿔 준후에 관세나 통신기등의 중요한 것을 담보로 잡고  저주받고 운명이 다한 조선의 목을 서서히 그러나 지긋이 곧장 조여왔지요. 이런 식으로 조선은 몇해를 두고 왕과 조정이 들어내지는 않았어도  청국의 속국이 되고 있습니다. 청일전쟁이  청국의 계획을 깨 버린거지요.”


“그러면 당신은  청국이 시도한 일들을 일본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확신하는겁니까? 당신은 조선정부가 일본한테서 5백만엔을  차관하기로  했다는 소식은 들으셨지요? 조선의 남쪽 3개 도의 쌀을 속국공물로 바치는 조건으로 말입니다.”


“나는 아주 확신하고 있어요. 일본이 조선의 개혁이 희망적이라고 생각하는 한은 조선을 도우리라는 점을요. 일본의 개입이 조선에  고마운일이 될지 저주가 될지는 전적으로 조선의 조정이 지혜로운 애국심을 발휘 할것인지 아니면 어리석게 이기주의 를 택할것인지에 달렸지요. 조선은 이제  상황을 개선할 좋은 기회를  맞았습니다. 만일 조정과 국민이  올바른 정신으로 성실하게 실천하지 못하면 이 절호의 기회를 모조리 망칠 가능성이 있지요.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상태에서 나라를 지킨들 무슨 송용입니까”


F씨가 인도하는 가정기도회 모임에 참석하다. 그후에 헬렌 선생과 오랫동안 환담을 나누다.

 

1월13일. 일요일. 상해.


 어제 밤엔 무척 추웠다. 대야에 담은 물이 1인치 이상 바닥까지 거의 얼어붙었다. 주일학교가  종강하게 되어  본넬 교수가 학교를 떠나는 강연을 하다. 그는 많이도 옮겨 다녔다. 그는 가벼렸지만, 지난10년 동안 그의   젊은 제자들에게 좋은 영향과 모범을 보여주었다. 그가 필요하게 느껴지는 이 시간에, 그에게 나의 사랑에서 울어나오는 중요한 기념표시라도 보여줄 힘이 있으면 좋겠다.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낮잠 자다. 곧바로 중국인 교회의 저녁예배 시간에 참석하다. 알렌박사댁에서 저녁을 들다. 친절하고 어머니 같은 모습을 한 알렌박사 부인을 보고 나는 내 모든 고충을 그녀에게 털어놓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내가 알렌 박사와 그의 가족들과 따뜻한 난롯가에 앉자 나의 귀국에 관한 이야기가 오고갔다. 벌써 10년이란 세월이  흘러 간 사실이 믿어지질 않는다. 그때, 정월 초하룻날 아침에  로호르 씨가 내게 영문법을 공부했는가 물었었지. 알렌 박사는 <뉴스>지에 실리지는 않았으나 내가 쓴“조선의 대화”라는 제목의 논문을 높이 칭찬 해주었다.

 

1월14일. 월요일. 춥고 구름 낀 날씨. 상해


오늘 아침에 본넬 교수가 내게 편지 한 통을 보여주다. 난킨 대학의 퍼거슨 씨가 그 학교에서 본넬교수에게 한 자리 주겠다고 제안한 내용이다. 본넬 교수가 그 제안을  제대로  받아들이기를 바랄 뿐이다. 


오후 늦게 미야께(三宅) 씨가 나를 방문하다. 그는 내게 조선에서 관직을  받는다면 유길준  보다 낮은 직위를 받지 않도록 충고한다. 그가 중국으로 오기전에 김옥균에 의해 조선으로 갈때 이야기를 처음으로 내게 말하기를, 비밀 특사로서 지낼만한 돈이 없었다는 것이다.


내가 가르쳤던 두 소년이 내게 바나나와 귤을 세 바구니나 가지고 왔다. 나는 그 선물을 아주 고맙게 여겼다. 애퐁 자매의 집에서 저녁을 먹다. 자매의 계부 피터 중씨가 와 있었다. 그는 아주 명랑한 사람이다.


15일. 화요일. 비교적 개인 날씨. 해가 나다.


아침 11시에 학교 교사와 장학생들 모두 학기 말 종강 예배를 보기 위해 예배실에 모이다. 알렌 박사가 외국인의 시각으로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짧은 인사말을 하다. 그리고는 상금으로 7불에서 1불 사이에 해당하는 돈을 각기 다른 학급에 맞게 시상하다.


그 시상제도는 본넬 교수가 도입한 제도였다. 알렌 박사와 L씨는 이번 학기만 지나면 그 제도는 없앨라거라고 한다. 내 생각에 이 제도는 학생들에게  사기 를  높이기 위해서도 지속이 되어야 할텐데, 생각한다.
오늘은 애퐁자매를 두 번이나 봤다. 지난 주에 매일 자매를 찾아간 일은 내게 기쁘고 신선한 기분이었다. 아름다운 자매를 보러 갈 때마다 내 발 걸음이 빨라진다.

 

1월17일. 목요일. 거친 바람-몹시 추운 날씨. 상해.


 견딜 수없이 초조하게 기다리는 하루 이틀이 지나, 세상에서 가장 어여쁜 내 사랑이 12시 경에 매킨타이어 홈에 도착하다. 그녀가 온다는 기쁜 소식은 ‘인력거’로 매킨타이어 홈에 달려가는 시간보다 더 빨리 내게 전해졌다. 사랑하는 아내는 개더 부인의 서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내가 방에 들어서자 아름다운 그녀의 몸이 내 팔 안에 던지듯 안겨왔다. 창백한 얼굴, (엄청) 아름답고 고운 모습, 나를 무아경에 빠지게 하는 더할 나위없는 그 미소를 띄고  안겨 왔다.  내가 10년만에 귀국하는 계획을 뒤로 돌려 놓는듯한 느낌이다. 오, 하느님, 나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내 어여쁜 아내와 아기를 다정하게 돌보아 주소서!


오후 2시에 아내와 아기를 데리고 내 방으로 돌아왔다. 내 방은 북풍이 부는 듯 너무 추워서 난로도 소용없을 지경이었다. 


밖에는 한 겨울 삭풍이 윙윙 거리는데, 나는 편편찮은 내 방에 앉아 있네.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여인, 애틋하고 사랑스럽고 지쳐있는 여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네. 
나에게 온통 매달려 있는 그녀의 불안함과 고통과 마음 씀씀이를 생각 하면서, 
내가 지금 달려가고 있는 불확실성과 모험을 깊이 깊이 생각해 보았네. 아무도 헤아려 주는 이 없이 오랫동안 내 사랑이 나 없이 홀로 겪었을 외로움과 불안감을 깊이 생각해 보았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런 저런  상념 속에 휩싸여 앉아 있네. 


 그 어느 누구도 사랑이 넘치는 ‘시’의 의미를 전혀 몰랐으리. 인생의 ‘산문’이  이런 것임을 발견하기 까지는. 

어여쁜 내 사랑을 따뜻하고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나는 춥고 배고픈 곳이라도 기꺼이 달려 가리라.

 헤이굿 선생에게서 즐거운 이야기가 담긴 편지를 받다. 하느님, 고귀한 저 여인을 축복하소서!

 

1월18일. 금요일. 맑은 날씨. 바람이 불고 몹시 춥다.-하루 종일 땅까지 얼어붙다. 상해.


 나가미에게서 편지를 받다. 도쿄에 있는 내 사촌(치오)이 내게 우편으로 보내준 60불을 받았음을 알려주다.
우리들의 귀여운 친구가 나의 보배인 아내와 함께 하루를 지내다. 아내와 그의 자매 애퐁! 이 두 여인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프다! 


오, 하느님, 내 사랑 시엔숭과 그의 자매 애퐁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HR양을 방문하여 50불을 꺼내어 맡기다.--그녀의 이름이 적힌 영수증을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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