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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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다오, 귀여운 사람아. 날 사랑하는지?”
knyoon

 

 

(제20회)

 

(지난 호에 이어)

 그 사람은 인사를 하고 가버렸다.

 어거스틴은 멜라니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말해다오, 귀여운 사람아. 날 사랑하는지?”

 

 “사랑은 무엇일까?”

 

 잠시 동안 어거스틴은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

 

 “당신은 사랑에 대해 일가견을 갖고 있어요.”

 “난 무슨 일에나 일가견을 갖고 있지.”

 “사랑은 무엇일까?” 그녀가 되풀이 말했다.

 

 “사랑은 빛, 모든 색깔의 왕자. 그 빛은 네가 보는 온갖 것을 채워주네. 비록 네가 다른 일에 몰두해 있다 해도 사랑은 그의 온갖 연기를 다해 너를 사로잡으리라.”

 

 “자기가 지은 거야?”

 “그럼.”

 “난 또 그대가 시인임을 미처 몰랐네.” 그녀가 말했다.

 “정의 내릴 수 없는 일을 누가 단언 할 수 있으랴?” 그는 옆으로 돌아누웠다.

 

“다만 애를 쓸 뿐이지. 아침에 눈을 뜨면 햇빛이 내 눈 속에 흘러 들어 오고, 그 빛은 나의 온 하루를 즐겁게 하네. 빛은 달콤하기 때문에. 너에 대한 사랑이 내 마음속에 비치고 있네. 사랑은 달콤하기 때문에. 그대의 아름다운 얼굴 내 앞에 다가오네. 이윽고 나의 하루는 즐거워라.”

 

 그녀는 입술을 다물고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기울여 온 사랑에 보답이 없을 때 거기엔 사랑에 대한 독침이 있을 뿐, 달콤한 것이 쓴 잔이 되리.” 하고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만약 내가 너의 사랑에 보답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불꽃 속에 타 오르리.”

 

 그녀는 어거스틴의 입술 위에 손가락을 갖다 대었다. 잠깐 동안 그는 멜라니가 사랑을 고백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는 “당신은 참 이상한 분.” 하고 중얼거렸다.

 

 그는 멜라니의 손을 꼭 붙잡았다.

 “멜라니, 날 사랑할 수 없겠소?”

 따뜻한 날씨인데도 그녀는 몸을 떨었다.

 

 “내 사랑 멜라니, 왜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할까?”

 “두려워서.”

 “왜?”

 멜라니는 고개를 한 옆으로 갸우뚱했다.

 “왜 그래, 멜라니?”

 

 “난 두려워, 왜냐하면...만약에 내가 한 번 사랑에 빠진다면 다시는 사랑을 못하게 될 테니까.”

 

 “내 맘 속엔 너에 대한 사랑 외엔 다른 어떤 것도 있을 수 없다구.” 하고 그는 필사적으로 말을 했다.

 

 “때가 와서 그대가 날 버릴 때 당신은 유명해 지고, 그 때에 당신은 내 마음을 천 갈래로 찢어놓을 걸.” 하고 그녀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절대로 그럴 리가! 약속해.”

 “아니, 그렇게 될 걸.”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는 내 종달새, 이것만은 얘길 해 두지. 넌 아주 외롭고 외로운 사람, 네가 나를 탐색해 왔듯이 난 너를 탐색해 왔어. 넌 의심 때문에 괴로움을 당하고 있음을 알기나 하는지?”

 

 그녀는 웃니로 도톰한 아랫입술을 지긋이 깨물었다.

 “내가 확신하는 걸 믿을 수 없어?”

 그녀는 눈물이 글썽했다.

 

 “멜라니, 내 말을 믿어. 난 할 수 있어. 그리고 해볼 테야.”

 그녀는 어거스틴에게서 손을 풀고 일어서려고 했다.

 

 “멜라니, 나하고 같이 가. 너에 대한 확신과 행복과 그리고 내가 보호하고 있는 사랑 사이에 가로막힌 건 아무것도 없어. 오직 너의 의지만 방해를 하고 있어.”

 

 “그리고 나의 양심이.” 그녀는 시선을 멀리 던지며 말했다.

 

 “어거스틴, 틀렸어. 우리 사이에 아무런 확실성이 없는데 행복이 있을 게 뭐야.” 그녀는 말끝을 흐렸다.

 “난 네가 필요해.” 그가 말했다.

 그녀는 떨면서 일어나 오두막집을 향해 급히 달려갔다.

 “멜라니, 기다려!”

 

 그래봐야 아무 소용도 없는 일. 그녀는 빨간 대문 안으로 사라져버렸다.

 

 이틀 밤이 지난 날 어거스틴은 식탁에 앉아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는데 네브리디우스가 불쑥 나타나 기름 묻은 종이를 흔들고 있었다.

 

 “밖에 웬 사람이 왔는데, 네게 오는 편지를 가지고 있더군. 그래서 내가 그걸 전해 주겠다고 했지.” 하고 그는 말했다.

 

 어거스틴은 펜을 떨어뜨리고 그 편지를 받았다.

 

 멜라니가 어거스틴에게 : 나의 아버지는 집을 팔고 시라큐스로 배를 타고 가버리셨어요. 이것이 편지의 전부였다.

 

어거스틴은 그 기름종이를 식탁 위에 떨어뜨리고는 벌떡 일어나 그 방을 휙 나가버렸다. 네브리디우스가 채 물어보기도 전에 그는 말콰 쪽으로 가고 있었다.

 

 20분쯤 지나 숨이 차게 달려온 그는 하얀 오두막집이 보이는 오솔길을 비틀거리며 올라가고 있었다. 가냘픈 모습이 문 앞에 외롭게 웅크리고 서 있었다.

 

 “멜라니!”

 “어거스틴!”

 

 그는 멜라니를 팔에 끌어안았다. 그녀는 저항 없이 안겨 왔다. 그에게 찰싹 달라붙어 있는 그녀의 몸은 떨고 있었다. 뺨에 닿는 그녀의 뺨은 따뜻하고 눈물로 젖어 있었다.

 

 어거스틴이 숨을 돌릴 동안의 한 순간이 지나갔다.

 “아, 어거스틴, 난 어떡하면 좋아?”

 “귀여운 나이팅게일, 너 자신과의 싸움은 이제 끝났어.” 하고 그는 용기를 내도록 흥분해서 말했다.

 “넌 나의 것!”

 

 그는 기쁨을 감추려 들지도 않았다. 그녀도 그 말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기억을 더듬어 한 구절을 인용했다. 그 구절이 어머니에게서 얻어들은 것이었음을 잊은 채.

 

 “바닷물이 사랑의 불길을 끌 수 없으며, 홍수도 그 불길을 삼킬 수 없으리. 나의 천사여, 이것이 진실이요. 그대는 바다와 홍수를 지나 내게로 오고 있는 거요. 그대가 무엇을 지나왔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녀는 고개를 뒤로 젖혀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눈은 감기고 눈물이 그녀의 뺨 위에 반짝였다. 짙은 라일락 향기가 풍겨왔다. 피부색의 달빛이 그녀의 날씬한 상아 같은 몸매에 비쳐와 그 모습을 더욱 뚜렷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예쁠 수가...” 그가 말했다.

 

 “어거스틴, 사랑하고 있어. 사랑해!”

 

 어거스틴은 그녀에게 몸을 기울여 그들의 첫 키스를 받아 들였다. 두 사람에게서 시간과 공간이 부서지는 파도가 다시 바다로 몰려나가는 잔물결처럼 뒤엉켜왔다.

 

 

∽ 14 ∽

 

나는 사랑을 받기도 하고 쾌락의 굴레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그리하여 슬픔의 굴레 속에 기꺼이 갇히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의심과 공포와 분노와 불평의 굴레 속에. -고백록

 

 

 “멜라니!”

 멜라니는 침실로 들어가는 커튼 문틈으로 미끄러지듯 돌아섰다.

 “왜 그러세요? 여보.”

 

 그녀는 왼쪽 귓바퀴 뒤로 흐르는 노란 회향풀 같은 잔 머리칼을 빗어 넘기며 대답했다.

 

 “내가 어제 준 200세스터를 어쨌는지 알고 싶어.”

 어거스틴은 양피지 조각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식탁에서 피곤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 양피지엔 세로로 줄 이은 숫자가 양 뿔로 새겨 있었다.

 

 “먹을 것 사는 데 다 썼어요.” 그녀는 어거스틴의 뒤로 돌아가서 팔로 그의 목을 감았다. 그녀에게선 레몬 같은 회향풀 냄새가 풍겨왔다.

 “그건 왜 물어요?”

 “돈을 좀 아껴야겠어서.”

 어거스틴은 손바닥에 쥔 펜을 직직 그어댔다.

 

 “빚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 같아.”

 “제가 낭비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는 대답을 않고 계산만 했다.

 “그래요?” 그녀가 다그쳐 물었다.

 

 그는 그렇다고 중얼거렸다.

 그녀는 팔을 빼서 움츠리고 어거스틴의 옆으로 돌아섰다. 그녀는 얌전하게 서서 등 뒤로 팔을 돌려 초조하게 손가락을 비틀고 있었다.

 

 “어거스틴.” 그녀가 말을 꺼냈다.

 “왜 그래?”

 “이 옷은 당신과 함께 있는 2년 동안에 처음으로 산 단벌옷이어요.” 그녀는 입고 있는 가벼운 웃옷을 만지작거렸다. 소매가 넓고 허리엔 푸른색 양털 리본으로 허리를 묶은 보랏빛 옷이었다.

 

계속해서 양피지를 직직 그어대는 펜소리가 났다. 멜라니는 말을 더 하려다가 그만두고 어깨를 풀썩 추석인 다음에 침실로 들어가려 했다.

 

 어거스틴은 펜을 내던지고 팔을 쭉 펴서 손가락의 근육 운동을 했다. 그는 여자에게 소리쳤다.

 “잠깐!”

 멜라니는 걸음을 멈추었으나 그에게 등을 돌린 채였다. 그녀는 반항심에 고개를 쳐들었다. 서쪽 창문으로 오후의 햇살이 만(灣)을 가로질러 쿠루비스 반도에 뻗친 육지 위로 비취는 것을 바라보았다.

 

 “난 말야, 오늘 아침에 당신이 시장에서 돌아올 때 호위병이 있었다는 걸 알고 있어.” 그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그녀의 고개가 더 높아졌다.

 “부인하진 않는군.”

 “난 당신에게 염탐꾼이 있는 줄은 몰랐군요.”

 

 “어떤 사내가 당신을 만나러 세 번씩이나 집으로 왔었다는 것도 알고 있어.”

 “그 염탐꾼은 누구죠? 알리피우스, 호노라투스, 아니면 네브리디우스?”

 “버질의 말이 맞았어. 여자는 변덕스러운 존재여서 항상 변절할 수 있다고 했지.”

 “남성이 여성의 매력을 알아냈다는 이유로 여자는 비난받아야 하나요?”

 어거스틴의 뺨이 빨개졌다. 그는 벌떡 일어나서 의자를 꽝 치며 소리쳤다.

 

 “넌 창녀야!”

 

 그녀가 천천히 돌아섰다.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녀의 이마엔 차디찬 평온이 감돌았고, 그녀의 손은 힘없이 한쪽으로 늘어져버렸고, 그녀의 눈은 까만 호수처럼 잠잠했다.

 

 “당신 말이 옳아요. 난 당신의 창녀예요.”

 그녀는 한 마디 똑똑히 말했다. 그녀는 발꿈치를 돌려서 침실로 달려 갔다.

 

 어거스틴은 화를 벌컥 낸 것을 합리화시켜보려고 어떤 변명을 생각해내면서 증오심에 그 방을 둘러보았다. 그 방은 멜라니가 오기 전에 알리피우스와 호노라투스와 네브리디우스와 함께 살던 같은 건물 안에 있다.

 

 멜라니는 자기가 훌륭한 가정주부가 못 된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했다. 땅거미가 져오는 어둠 속에서 그 방은 마치 교활한 에버소레단(團)이 휘젓고 지나간 자리처럼 어지러웠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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