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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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와 함께 산다는 원칙에 어긋난다는 거요?”
knyoon

 

 

윤경남 칼럼

(제18회)

 

(지난 호에 이어)

 “그래서 나와 함께 산다는 원칙에 어긋난다는 거요?”

 그녀는 또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정부는 이런 종류의 결합은 허락하고 있지 않소?”

 “정부는 내 양심을 소유하진 못해요.”

 어거스틴은 그가 이번 목표를 성취하려면 논리의 병기창에 있는 무기를 모두 동원해야 되리란 것을 깨달았다.

 “난 여러 달 동안이나 당신을 보지 못했는데... 예비신자라면 규칙적으로 예배에 참석해야 하지 않을까?” 그 말의 모순이 세례 입문자인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오고 있음을 그는 그 순간 깨닫지 못했다.

 “안 그렇소?” 하고 그는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 때문이지요. 나갈 때는 몰래 빠져나가야 하니까요.” 그녀가 말했다.

 

 

 갈매기 한 마리가 시끄럽게 깍깍거리며 오두막집 위로 날아갔다. 어거스틴은 불길한 시선으로 그 새를 노려보고 입술을 다물었다. 갈매기가 사라지자 그는 말했다.

 “나 좀 봐요. 왜 레포리우스는 당신을 결혼시키지 않을까?”

 

 

 그녀는 종내 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어거스틴은 심장이 뛰는 걸 느꼈다.

 “여섯 번이나 나를 결혼시키려 했지요. 아버지가 골라놓은 사람들을 당신이 보았어야 하는 건데, 모두가 괴물들이었지. 아버지가 날 결혼하도록 강요하신다면 난 목숨을 끊겠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포기하셨나?”

 “네, 아버진 이상한 분이에요. 하지만 양심은 있어요.”

 “왜 자기 손으로 결혼시키려고 야단이지?”

 “시라큐스에 대한 향수 때문이지요. 고기잡이가 되기 전엔 뱃사람이었어요. 아버진 시라큐스에서 배를 버린 다음부터 내내 그리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하셔요.”

 

 

 “당신은 거기서 태어났소?”

 “네.”

 “당신은 어때? 당신도 그 곳을 그리워해?”

 다시금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거스틴은 그런 몸짓이 사랑스러웠다.

 “그게 무슨 상관이어요? 난 여자인데.” 그녀는 서글픈 듯이 말했다.

 “내겐 상관이 있소. 어머니 얘길 해 봐요.”

 멜라니는 자세를 바꿔 앉았다. 그녀는 두 팔을 뒤로 받치고 몸을 뒤로 기울였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항구 저편으로 떠가는 솜구름을 꿈꾸듯이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천사 같은 분이었어요.”

 “당신도 그래.” 그는 충동적으로 말해버리고는 그녀의 반응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고는 말을 이었다.

 “어머니는 굉장한 그리스도교 여신도의 노예였는데, 그분이 어머니에게 읽는 법을 가르치고 책도 빌려주셨어요. 어머니는 그 책들을 내게 읽어주셨지요. 돌아가시기 전에 내게 읽는 법을 가르쳐주셨어요.”

 

 

 “무얼 읽었소?”

 “호우머, 소크라테스, 핀다르...”

 “그리스 학자들이군!” 어거스틴이 코웃음을 쳤다.

 “그리스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으세요?”

 “난 로마인이야. 하긴 상관할 것 없지. 시라큐스 얘기 좀 해봐요.”

 “세상에 시라큐스 같은 곳이 또 있을라구요.”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키케로는 그 도시를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했어요. 생각나세요?”

 “그럼 당신은 시안느의 샘도 보았겠네?”

 “그럼요. 디오니시우스의 귀도 보았지요.”

 “유랄라스의 요새도?”

 “미네르바의 사원도요.” 그녀가 말했다.

 “시라큐스 극장은 무료공연이라고 들었는데.”

 “그래요. 애스킬루스는 그 도시에 왔을 때 자기의 연극을 감독했지요.”

 “플라톤도 거기 있었지.”

 “핀다르도, 폴루타크도. 아, 시라큐스야말로 장엄한 도시지요! 시라큐스의 꽃은 너무나 향기로워 사냥개도 그 냄새를 따라갈 수 없다고들 하지요.”

 

 

 반시간이 흘렀다. 어거스틴은 자꾸 질문을 던지고, 멜라니는 시실리에 대해서 얘기했다. 그러면서 그는 황홀경에 빠져 그녀의 대답에 귀를 기울이곤 했다. 그녀의 입에서 흘러넘치는 말씨에 힘을 줄 때의 고동과 한숨을 좋아했다. 그럴 때면 밀물 썰물 같은 파도에 그들이 함께 휩쓸리는 듯 했다. 어거스틴의 가슴이 벅차올라 그의 행복감을 소리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느라 애쓰기도 했다.

 

 

 해는 정오가 가까움을 알리고 있다. 멜라니는 부두 쪽을 바라보았다. 어거스틴은 그녀의 자제력이 되살아남을 느꼈다.

 

 “가야겠소.” 그는 발을 비비며 마지못해 일어섰다. 멜라니도 일어났다.

 “다시 와도 괜찮겠소?” 그가 물었다.

 “좋으시다면.” 그녀는 수줍게 말했다.

 “당신은 아름다워. 당신의 바구니를 들어다 줄까?”

 “아녜요. 내가 들고 가지요.”

 그들은 말없이 오두막집을 향해 조금씩 발을 옮겼다. 그들의 침묵은 두 사람을 서로 비틀어 매는 또 다른 고리로 이어지는 듯 했다. 두 사람은 새장 옆에 놓아 둔 바구니가 있는 곳까지 왔다.

 

 

 “카나리아, 고마워요.” 그녀가 말했다.

 두 사람이 똑같이 그 새장을 잡으려고 몸을 구부렸다. 그 동작 때문에 그들의 몸이 부딪쳤다. 어거스틴의 어깨가 소녀의 팔을 쓸었다. 제각기 놀란 그들은 몸에서 힘이 모두 빠져나가는 듯했다. 그들은 마비된 사람들처럼 새장 위에서 당황했다. 그들 사이를 흐르는 똑같은 생각은, 삶의 활력소이며 죽음처럼 피할 수 없는 사랑의 약속으로 그들을 융합하고 있었다.

 카나리아가 다시 또 퍼덕였다. 몸을 먼저 움직인 것은 멜라니였다. “아아...” 그녀는 새장의 손잡이를 쥐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어거스틴에게 등을 대고 서서 그 새장을 잡고 똑바로 서 있었다. 그녀의 고개가 숙여졌다.

 아직도 요동이 가라앉지 않은 어거스틴은 억지로 힘을 냈다. 그는 자기 머리 위의 장미화관을 벗어 멜라니의 발치에 던져 버리고, 불안정한 걸음걸이로 뜰을 지나 비아 코엘레스티스로 가는 길목으로 걸어 올라갔다.

 오직 카툴루스의 시구만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주피터의 사제가 외어대던 주문처럼, 그는 도취되어 외우고 또 외웠다.

 “위대하도다. 그대의 앞날에 기다리고 있는 비할 데 없는 환희여.”

 

 

 

 

제17회

 ∽ 13 ∽

벌 받을지어다…질투로 빨갛게 달아오른 쇠 채찍에. –고백록

 

 멜라니와 한참 동안 얘기하고 난 후, 어거스틴의 머릿속엔 카툴루스의 싯귀가 맴돌았다. 그는 중얼거렸다. 나의 승리는 틀림없을 것이며, 멜라니는 내 사랑의 압력 밑에 굴복하고 말리라. 아니면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아직은 자기 같은 한 연인이 기대할 만큼 여성다운 깊은 헌신으로 그를 사랑하고 있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애초부터 그녀는 적어도 어거스틴의 매력에 이끌린 것만은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그녀가 언제 굴복하게 되느냐는 건 시간문제일 뿐. 그래서 타닛의 춤추는 소녀들이 보여주었던 정열을 가지고 그는 구혼하는 태도를 밀고 나갔다. 애타게 그리워하며 희망을 걸었다. 그는 그 투쟁이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간단하지 않음을 곧 깨달았다. 알리피우스와 단둘이 방에 있던 어느 날 저녁에 그는 그 사실을 고백했다.

 

 

 “알리피우스, 너 사랑해 본 일 있니?” 하고 그는 물었다.

 알리피우스는 침대에 기대 앉아 수학책을 보고 있다가 책을 옆으로 치우며 정색을 하고 그의 친구를 바라보았다.

 “왜 그런 걸 묻지?”

 “난 지금 사랑에 빠졌어.”

 “네가? 아니, 누구하고?”

 어거스틴은 그에게 모든 걸 말해버렸다.

 알리피우스는 휘파람을 휙 불었다.

 

 

 “그렇지만 설혹 그 여자가 네게 오겠다는 언질을 받았다 해도, 넌 그 여자를 이리 데려올 생각일랑 마라.” 그는 근심스런 표정을 하고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물론, 너희들 셋이랑 이 방에서 같이 지내겠다는 건 아니야. 그러나 저러나 이 근방에 세를 얻을 만한 데가 있어야 할 텐데.”

 다음 일요일 아침에 어거스틴은 펠리시타스 공회당에 갔다. 미사에 참여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멜라니와 약속한 터라 그녀를 만나러 간 것이었다.

 출입구 가까운 데서 그는 멜라니를 기다렸다. 교인들이 떼를 지어 그의 옆을 지나 회당 안으로 들어갔다. 미사가 시작되어도 멜라니는 나타나지 않았다. 침울해진 그는 회당 앞길로 걸어 나갔다.

 

 

 반시간쯤 지났을까. 털북숭이 잡종 개 한 마리가 터벅터벅 다가오더니 장난을 치며 그의 발뒤꿈치를 물어뜯었다. 어거스틴은 휙 돌아서서 욕설을 퍼붓고는 개의 배를 냅다 걷어찼다. 아파서 깽깽거리며 개는 멀리 도망갔다. 그는 몹시 후회가 되었다. ‘여기서 빨리 빠져 나가야겠는데... 이 아가씨가 왜 나를 이렇게 화나게 만들지?’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이유를 알기 위해 그는 말콰로 급히 달려갔다. 놀라운 사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레포리우스의 집이 가까워지면서 그는 흰 옷을 입은 멜라니가 꽃밭 근처에서 어떤 뚱뚱보 로마 군인과 시시덕거리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그 둘은 서로 바싹 붙어 있었다. 적어도 너무 바싹 붙어 있다고 어거스틴은 생각했다. 그 군인의 놋쇠 투구는 머리 위에 척하니 올라 앉아 반짝이고 있고, 그가 뭐라 얘기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멜라니는 그를 향해 서있었지만 그녀의 머리는 그녀가 꽃잎을 따고 있는 꽃송이 위로 숙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는 것으로 보아 그 군인은 뭔가 재미있는 얘기를 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어거스틴은 화가 치밀고 속이 상해 걸음을 멈추었다. 마음속에 죽이고 싶은 충동마저 일어났다. 저런 못된 악당 같으니라고! 제가 차지할 권리라도 있단 말인가? 동네 사람들 앞에서 저 녀석이 그녀에게 구혼을 하게 하다니... 그녀의 수치심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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