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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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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바울의 성문’과 ‘클레오파트라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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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가 되기 이전의 바울(사울)도 사도 요한처럼 그의 생애를 뒤바꾸어 놓는 강렬한 빛과 음성을 듣는다. 그 빛은 사흘 동안 바울의 눈을 멀게 했고, 사흘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기도에만 몰두하게 했다. 이 사건은 스데반의 순교 후 더욱 극심해진 기독교인 박해에 앞장섰던 사울이 다마스커스로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러 가는 길에서 일어난다.

그는 눈부신 빛 속에 “사울아, 사울아!”하고 부르는 음성에 놀라 쓰러지며 “당신은 누구십니까?”하고 묻는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일어나서 성 안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알려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예수님의 그 부름은 유대 민족과 가나안 지역에 국한된 그리스도교를 모든 인류를 향한 세계 전체의 종교로 탈바꿈하게 만든 역사적인 소명의 순간이었다.

갑바도기아를 출발한 우리 일행은 사도 바울의 고향인 옛 길리기아의 다소(Tarsus)를 방문하고, 그리스의 아

 

테네에서 바울이 유명한 연설을 했던 아레오바고 언덕을 멀리서 바라보았다. 지성의 극치를 자랑하는 아테네, 새로운 학문이나 학설에 열광적인 호기심을 보이는 그들의 토론장인 아레스의 언덕, 아레오바고에서 사도 바울이 연설한 것이다. “‘아테네 사람들이 모르고 섬겨 온 신’, 그분은 이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을 전혀 낯선 존재가 아닌 친근한 분으로 소개하며 조심스럽게 접근해가는 그의 선교방식은, 그 지역의 문화를 받아들이며 선교해야 하는 이방선교의 이상적인 길라잡이가 되었다. 바울이 하느님의 아들인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기에 앞서 “하느님은 하늘과 땅의 주인이므로 인간이 만든 신전 안에서 살지 않으십니다”(행17:23, 24)고 역설했을 때, 수많은 신을 섬기던 아테네 사람들의 놀라운 반응이 눈에 보이는 듯 했다. 

터키의 남동부 지역 지중해 연안에 위치했던 다소는 기원전 64년 로마에 병합되었다가 주후 57년 길리기아의 수도로 승격한 동서의 문화와 언어가 만나는 큰 도시가 되었다.

 

 

 지금은 지중해에서 15㎞나 내륙에 들어와 있다. 다소에 들어서면 큰 도로 한 가운데 우뚝 서 있는 옛 성문이 먼저 눈에 띈다. 다소 태생인 바울이 사도가 된 이후부터 ‘바울의 성문’이라고 하지만, 원래는 ‘클레오파트라의 문’이라고 불렀다. 

기원전 41년 안토니우스가 이곳에 와서 면세혜택을 베푼 적이 있다. 그때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가 아름다운 여신 비너스로 분장하고 다소를 가로지르는 치드누스강 가에 닻을 내리고 이 성문으로 들어온 이후로 ‘클레오파트라의 문’이라고 부르게 됐다.

  비너스처럼 강물 위에서 다소 항구로 들어서는 클레오파트라를 그린 그림과 영화 ‘클레오파트라’에서 비너스가 탄생하는 듯 해돋이조개 같은 배 위에 서 있는 엘리자베스 테일러(클레오파트라 역)의 모습이 실감나게 떠오른다. 안토니우스 장군의 마음을 사로잡고, 로마의 역사마저 바꾸어 놓은 클레오파트라가 빨간 유도화로 엮은 화관을 쓰고 들어서는 듯한 남쪽 성문은 클레오파트라의 문이고, 온화한 연분홍빛 유도화인 올린다가 의로운 종려수 아래 활짝 피어 있는 동쪽문은 바울의 성문이라고 부르고 싶다. 

어렸을 때 할머니께서 안마당에 키우셨던 분홍빛 꽃이 피는 올린다를 이곳에서 다시 만난 듯, 내내 사랑으로 삶의 지혜를 깨우쳐주신 할머님이 새삼 그리워졌다.

 바울의 생가로 알려진 빈터에 굵은 쇠바퀴가 달린 도르레가 깊은 우물 뚜껑 위에 달려 있었다. 회향나무와 올리브나무들이 적막하고 소박한 바울의 모습처럼 그 둘레에 자리 잡고 있다. 

바울은 2차와 3차 전도여행 때 이 고향집에 들린다. 사람은 약세에 몰리면 자기 자랑을 하게 마련인데, 사도 바울도 로마군에게 체포되었을 때 “나는 길리기아의 다소 출신 유대인으로 결코 초라하지 않은 도시의 시민”(행21:39)이라고 자랑스럽게 밝힌다. 

그 다소에 있는 사도 바울의 우물가에 서서 우리는 깊은 묵상에 잠겨 있다가, 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따라 그리스의 아테네, 네압볼리, 빌립보, 암피볼리, 베뢰아, 데살로니카를 거쳐 이스탄불로 순례의 여정을 이어갔다.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뜨거운 은총을 체험하고 싶어 하면서도, 바울처럼 뙤약볕 아래를 걸어간다거나 풍랑이 심한 바다 위에서 조각배를 타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가 순례한 580km의 길을 편안한 버스와 비행기가 우리를 끌고 다녔기 때문이다. 갈릴리 바다에서 베드로라는 큰 인물을 낚으신 예수님은 다메섹 황토길 위에서 자신의 구원사를 완성할 더 큰 모퉁이 돌을 거두신 게 틀림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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