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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맑고, 쓸쓸한 김준태 시인의 시집 ‘가스페 블루스’를 읽고(하)
kimyoungjae

 

 

(지난 호에 이어)


 통로 없는 마음인 줄은 알았지. 눈꽃들이 에워싸도 태연히 돌아앉아 벽 줄기만 매다는 모습을 보고. 갈 곳 없는 마음인 줄도 알았어.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 밤새워 기도만 하는. 오랜 숨을 몰고 온 거야 질투 모르는 착한 광물을 꿈꾸며. 단단해지자 홀로 맑을 수 있는 정신이 되자. 그렇게 꾹꾹 눌러 적으며. 찾아온 거지 이곳 들뜬 시만 꼬드기는 허튼 움막에. 소리 없이 소리 짓는 시심詩心을 보라고. 어느 한 순간을 향해 깊어가는 시선視線의 무게를 보라고. 깨쳐 일어나 창 밖을 보면 여전히 그 자리 그 음성. 얼음 속에 담긴 뜨거운 목소리인 줄을 알았지. <‘고드름 속에 박힌 물소리’ 전문, p 71> 

 

그의 장기長技는 한편으로는 해독이 어려워 보이는 독백처럼 쏟아내는 이런 산문시에 있다. 툭툭 앞뒤를 끊어내는 듯한 어눌해 보이는 어투 속에 그러나 깊고 참신한 비유와 맑고 깊은 의미와 정신이 울림으로 다가와 우리가 그의 시를 다시 읽어보고 생각하도록 만든다. 


벽에 매달려 손바닥에 얼굴 묻고 기도하는 고드름. 그 속에 들어 있는 물은 우리의 사유 속에 갇힌, 어느 한 순간을 향해 깊어가는 시선의 무게와 같은, 외형에는 보이지 않지만, 속에 들어 있는 변하지 않는 진리, 원형 또는 시를 짓는 마음, 단단해지고자 홀로 맑을 수 있는 정신이 되고픈 마음, 얼음처럼 찬 외형 속에 담긴 뜨거운 열정 같은 것이 아닌가 하고 시인은 고드름 속에서 물을 보며 우리에게 묻고 있다.


그의 시들 중에는 감성이 부드럽게 풀어져 비교적 편하게 읽히는 시들도 있는데 다음의 ‘가스페 블루스 3’을 보면,

 

오늘 바다에 와서 나, 우네. 시퍼레서 너무 깊어서. 실연기失戀記 푸른 봉인 위에 입을 맞추며. 불러 보네, 빈 방에 두고 온 마음아 곱사등이 사랑아. 가을이 벌써 몇 번, 눈 퍼붓는 겨울은 또 몇 번. 눈 감으면 사방 은밀해지고 너만 오롯할 줄 알았는데. 내 사는 허허벌판엔 온종일 망각의 바람만 불어. 잊고 살았네 방향 없이 헤실 바실 걸었네. 비밀이 사라진 목숨이란 참 이상도 하지.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아. 낙엽은 저물도록 혼자 맴돌다 멎고. 표정 없는 눈발만 겨우내 펄펄. 어지러워 자꾸 어지러워 달려온 바다. 파도 텅텅 울리는 바람 절벽에 서서. 오늘 나, 시를 쓰네 기도를 하네. 살자 다시 목 놓아 펑펑 울자. 눈을 들어 바라보니 쪽빛 하늘, 검은 해안에 살포시 너울지고 있네. <‘가스페 블루스 3’, 전문, p.81>

 

함께 밤새워 울어보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한 릴케의 말이 생각나는 시이다. 시인은 자기 삶의 끝자락과도 같은 캐나다 최북동쪽 끝단의 가스페 해안의 밤 바닷가에서 빈방에 두고 온 마음, 곱사등이와도 같은 사랑을 생각하며 자기 삶의 절벽 끝에 서서 자신을 돌아보며 기도하고 시를 쓰며 펑펑 우는, 처절한 자기 고백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절망의 처절한 극한 상황에서도 시인은 눈을 들어 검은 해안에 살포시 너울지고 있는 긍정의 쪽빛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이렇듯 그의 대부분의 시는 현실의 괴로움, 벼랑 끝에선 절망을 노래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위의 시들 중, 마지막 구절, ‘말간 시냇물이 흘러가고 있더군’라거나 ‘끝없이, 빈방 하나가/소리 없이 겨울을 연다’와 같은 표현들에서 보듯 긍정으로 삶을 포용하는 건강한 시 정신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것이 그의 시들이 절망을 이겨내고 돌아와 삶을 관조하는 평상심을 회복하게 되는 이유이다.

 

숨소리 끝을 보는 것/불의 숨./바람의 숨./물결의 숨./일렁이다 지는 노을/그 울림의 한 가운데에/닿는 것./아직껏 남은/틈 사이/호사스러운 아픔마다 이별하며/다시 깜깜한 마음으로/살 박혀 들어간/수심水心/줄 하나로/보이지 않는 확연함을/새벽 안개 속에 묻는 것. <‘밤낚시’, 전문, p.50>

 

시인은 밤낚시를 하며 낚싯바늘 끝을 바라보며, 우리가 삶 속에서 바람, 물결, 일렁임 속에서 삶의 목표로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기다림 자체가 삶인지, 결국 평생을 기다려 우리가 낚는 것, 아니 낚고 싶은 것은 보이지 않는 확연함, 그것조차 안개 속에 다시 묻는 것은 아닌가 하고 인생의 의미와 목표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도록 만들고 있다.

 

소나기 속에서 소나기에 젖지 못했다/외로운 방에서/더구나 외로운 시간을 붙잡지 못했다 <‘비 오는 마을의 오후 1’, 부분, p.17>

 

내 마음에/내가 있으니/되었다 잘 되었다 <‘1주년’, 부분, p.47>

 

나는 이렇게 근지러운 욕망이다 때론 한없이 각혈하던 정신. 몸 벗은 육상과 심상이 서로를 흘기는 날엔 기도도 말고 눈물도 말고. 홀로 잠든 상수리나무를 한 바퀴 돌아 나직이 아주 나직이. 불꺼진 들창 앞 휘이- 쓸려가는 겨울 시 같이.
<‘겨울 상수리 나무 3’, 부분, p56>

 

종일 마른 가지에 매화를 그렸다. 뭉텅 빠진 기억처럼 깜박이다 꺼지는 낮은 천장 허름한 불빛. 살긴 내가 살아왔는데 자꾸만 낯설다 이 삶이. <‘더딘 겨울 저녁’, 부분, p.77>

 

그의 시집 어느 곳을 펴보아도 처절한 자기성찰과 경구와도 같은 그의 깨달음이 도처에 널려있다. 그는 우리에게 묻는다. 삶은 무엇이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며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고. 


그것이 궁극적으로 시가, 문학이 추구하는 바일 것이다. 그가 맑고 깨끗한 눈으로 투영하여 바라본 고통과 절망에 가득한 삶은 그러나, ‘삶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깨달음일지도 모르겠다. 


그가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들여다보며 찾아낸 대답이 지금까지 그의 시의 성과겠지만, 김 시인의 삶에 대한 질문을 천착하는 이러한 작업이 계속되어 앞으로 문학적으로 더 큰 성취가 있기를 바란다. 


다시 한번 김준태 시인의 시집 ‘가스페 블루스’의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우리 모두 그의 앞날에 건강과 문운이 함께하기를 빈다. (2019년 9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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