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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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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비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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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린다. 덱커에 떨어져 튀는 물방울들이 음계처럼 흐드러지게 가락을 울린다. 

풍~년~이 와 앗~네 ~ 풍~년~이 왔~네. 귀에 쟁쟁한 비디오의 풍악이 겹친다.

 

공공장소가 폐쇄되고 외출금지, 접촉금지가 처음 시작될 때 2주정도면 끝나겠지 했다. 치사율이 높다는 엄포 때문에 더더욱 움츠리고 지낸지 벌써 4개월째다. 따뜻한 햇살에 눈 비비고 나오는 개나리, 종달새 노래장단에 아지랑이 너울대는 계절이 미쳐 알은체를 하기도 전에 저 혼자 왔다 사라져 버렸다. 목련, 수선화, 튤립, 라일락 영문도 모른 채 떠났다.

 

몰 워킹을 마치고 도서관에 들려 대여섯 가지 신문을 훑고 수도쿠를 복사해 오던 일과는 집에서 받아보는 한국 신문으로, 안부를 겸해서 딸이 보내주는 이메일 수도쿠로 대치하고, 운동, 예배, 토론과 회의는 모두 온라인으로 처리한다.

 

갑자기 폭주한 영상물 때문에 몸살이 난 컴퓨터가 공간부족 경고사인을 보내는지가 오래된다. 외부와의 마지막 소통라인이 끊어질세라 읽고 지우고 비우기에 바쁘다. 자주 씻고 마스크를 하고, 장갑을 끼고 서로 2미터간의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주의사항이 유일한 예방책이니 철저하게 지키라 했다.

 

공포심까지 일으키며 잔뜩 긴장하였는데 시일이 지나면서 일상화 되어지니 점점 느슨해진 심신에 강제로 덤터기 씌워진 시간이 버거워지기 시작하였다. 규칙적인 삶의 리듬을 구축하려는 방편으로 자동차 드라이브를 택했다.

 

나이아가라 폭포까지 전에 가보지 않은 길을 골라 달리는 한 시간 반 정도의 드라이브는 주변거리를 탐색하고 여러 생활상을 비교하는 호기심과 즐거움을 주고, 우레소리 요란하게 쏟아지는 폭포수는 신경세포의 나사를 조여주는 청량제 구실을 톡톡히 하였다.

 

그간 받아놓고 미처 열어보지 못한 수 십 개의 비디오테이프들 중에서 한편을 돌리고 나면 하루가 무사히 접어지고 편안한 쉼을 찾게 되는 삶이 이어지고 있다.

차량의 왕래나 인적이 드문 마을 길을 드라이브 하노라면 나름대로 삶의 틀을 새롭게 짜려는 모습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그 중에 두드러진 것이 깨끗한 집 단장과 정원가꾸기다.

 

경황없어 미루어 두었던 너즈러진 집구석의 먼지들을 말끔히 털어내듯 유리창을 닦고, 차고를 치우고, 대청소를 하는가 하면 나무 가지를 쳐주고, 울타리를 다듬고, 화단을 곱게 조성하기도 하여 아름다운 전원주택으로 변모하였다.

 

뿐만 아니라 집집이 뜰 모퉁이에 텃밭을 일구어 자연과 혼연일체가 된 평화롭고 넉넉한 삶의 향취가 훈훈하게 품어 나온다. ‘자연으로 돌아가라’ 300여 년 전, 장 자크 룻소의 말이 사방에서 공명을 일으킨다. 그는 인간에게 있는 세 스승 즉 자연, 인연, 사물에서 순리대로 이행되는 자연섭리를 가장 주요시하였다.

 

‘장 자크 룻소’를 ‘잠자코 있소’라 발음하여 교실이 떠나가게 웃기던 한 소년의 추억이 아스라하다. 지구별(Planet Earth), 지구의 자화상이라는 다섯 묶음의 장편 비디오를 보면 벌레는 병아리나 새들이 잡아먹고, 병아리는 독수리가 잡아먹고, 작은 물고기는 펭귄이 잡아먹고, 펭귄은 물개가 잡아먹고, 물개는 상어에 잡혀 먹힌다.

 

맹수에 쫓겨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얼룩말이나 산양을 보노라면 움직이는 생물들은 거의 모두 저보다 약한 것을 잡아먹는 약육강식의 먹이사슬을 쫓아 생존 번식하는 것을 알게 된다.

 

반면에 뿌리내린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식물들은 꽃을 피우고 과실을 내고 씨를 맺어 종족 보존을 위해 나고 죽는 생존사슬에 매어있음을 보게 된다.

 

국제교육진흥원과 국립영화제작소에서 제작한 세 묶음의 한영(韓英) VHS에는 농본국가인 한국의 전통과 의례와 절기 등을 이해하기 쉽게 잘 소개한다. 농사는 씨를 뿌린 순간부터 싹이 나고, 꽃이 피고, 과실을 내는 전 과정에서 이른 비, 늦은 비와 따뜻한 햇볕을 보내주는 하늘의 섭리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내 노역의 과실을 이웃과 나누며 자손을 번식시키는 공존의 삶인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와의 투쟁은 즉석에서 해결을 얻을 수 있는 대적이 아니다. 예방지침을 준수하며 치료법이나 백신이 발명되기까지 인내하며 잠자코 기다릴 수밖에 없다.

 

오늘 아침신문에는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이 점차 수그러들었다고 한다. 일차적으로 해제해준 공공장소의 안전성에 대한 설문결과가 있었다. 대강 일별하면 옥내모임은 옥외모임보다 위태롭다는 것이고, 옥외모임도 공동수영장이나 음악공연장 같은 대중모임장소는 위험을 느낀다고 하였다. 반면, 야외 캠프장, 걷기, 개(犬. 견)공원, 골프, 테니스 등은 안전하게 느껴진다고 답했다.

 

씨를 뿌린 후 싹이 나고 열매 맺기까지 풍성한 수고의 결실을 목표 삼아 꾸준히 어려움을 참으며 심신을 단련하는 농사는 어떤 것보다도 단연코 안전할 것이다. 빗줄기가 제법 줄기차게 쏟아진다. 큰 화분마다 심어놓은 다섯 그루 내 방울토마토 나무에도. 풍년이 왔 네~ 지화자 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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