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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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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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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그 외진 곳에서 출판기념회를 하느냐 힐난하는 표정들이다. 옥빌 동신교회에서 출판기념회를 하려는 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강의도하며 수강도하며 동신 늘푸른 시니어대학과 인연을 맺은 지도 벌써 4, 5년은 된 듯하다. 


노인인구가 갑자기 늘어날 이유가 없으니 대개 처음 시작할 때 등록한 학생들이 그대로 계속 진학 진급을 하면서 여일하게 정분을 쌓아 왔다. 엄격히 말하자면 진급이란 게 있을 수없이 다 똑같은 형편과 수준이지만 수강 햇수에 따라 학사, 석사가 있고 지난해에는 박사도 배출하였다. 


어언 창립 10주년, 20회기 개강을 하게 되었다. 어떤 의미로든 시니어대학에 나올 수 있는 학생들은 시니어 중에서도 건강한 분들이라고 할 수 있다. 정신 건강도 우수하여 판단력이나 자기주장이 뚜렷하고 강하다. 연륜에서 풍겨오는 지혜의 향기와 너그러운 인생의 관조를 고르게 지니고 있는 데다 제 2의 인생을 새롭게 개척하려는 자기발전의 목적이 투철하다. 


60세 이상의 어르신들은 한마디로 자아개발의 의욕은 왕성하나 행동반경이 전보다 좁아진 분들이라고 정의하면 가장 알맞은 표현일 듯하다. 정신적 감성적 육신적인 능력은 고루 갖추고 있으나 강력하고 예민한 순발력이 떨어지는 시기라고도 한다. 


지난 주 교내 노래자랑에서는 90세의 어르신이 목소리도 낭랑하게 한 곡 뽑으셨다. /강 건너 남촌에는 누가 살 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 젊어서는 육척 장신이었을 껑충한 키를 앞뒤로 제치며 노래를 부르는데 어느새 관중석에서 터져 나온 합창에 무대 앞은 덩실거리는 어르신들로 꽉 차 흔들거렸다. 


우열을 가리는 장기자랑이고, 상품이 걸린 경연대회인데 그런 것 아랑곳없이 신나고 흥겹게 어깨춤을 추는 학생들이 시니어대학생들인 것이다. 송세훈씨의 시집을 저자보다 먼저 들고 온 분도 80세가 넘은 사군자 강사였다. 한국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여러 권의 책을 구입해 가지고 와서 소문을 내 버렸다. 


여름내 출판기념회 채근을 받으며 차일피일 미루어오던 터였다. 머리 위에서 맴돌던 하늘이 새파랗게 올라가버린 황금들판에 서니 갑자기 하나 둘 떠나는 이별의 소리가 사방에서 바스락거렸다. 눈만 뜨면 햇빛 따라 눈맞춤 하던 해바라기는 아예 땅바닥만 내려다보고 청청하게 앞뜰을 지켜주던 단풍나무는 먼 길 떠날 채비에 빨갛게 노랗게 몸치장하느라 바쁘다. 


시간들이 어디론가 나를 지나쳐 떠나간다는 생각이 온 몸에 찬물을 끼얹는 듯 오싹하게 하였다. 년 말을 향해 달리는 마라톤에 마무리 속력을 넣을 때가 닥쳤다는 긴장감이 조급함을 몰고 왔다. 


미루기만 하던 시집출판기념회를 하기로 결정하였다. 시니어대학 특강시간에 이어서 간략한 출판자축연을 할 계획이 뜻밖의 탈바꿈을 하게 된 것은 순전히 바이올린 연주자 때문일 것이다. 스스로 여느 다른 시인들과는 별도로 손넽(Sonnet) 형식의 시집을 냈다고 밝힌 시인은 80대에 첫 시집을 출간한 수줍음도 있어 대도시의 행사를 기피하였다. 


마음은 있어도 먼 도시까지 출판기념회에 참석 할 수 없을 것 같은 시니어 친구들과 함께 조촐한 자축연을 하려고 생각했다. 외진 곳, 무명시인의 시집 출판기념회라면 올 사람이 있으랴 가늠하였는데 신문기사를 보고 제일 먼저 전화 한 분이 저명한 바이올린 연주자였던 것이다. 


피아노반주자만 구해달라는 주문이 쉬운 일은 아니었으나 교회 반주자가 자원하고 나서자 먼 거리를 오겠다는 연락이 사방에서 이어졌다. 주방봉사 팀의 고충 등 사소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매듭을 지었다. 순수하고 따뜻한 시어로 풀어낸 시집 ‘외계인’의 출판기념회는 시니어 대학 친구 분들께 드리는 아주 소박한 가을의 선물로 포장하게 되었다. 


시니어대학 강의에 갑자기 끼어든 출판기념회를 더욱 뜻있는 행사로 만들기 위해 곱절의 수고를 해주신 상담학 박사 양미원 목사님, 바이올린연주를 자청하여주신 오경희님, 피아노 반주를 지원해주신 이진영님 그리고 주방봉사를 맡고 계신 피아니스트 고선주 권사님(故 고학환 한인노인회장님의 따님). 


이분들이 보통 바쁘신 분들인가. 오늘 바이올린 연주자가 곡명을 보내 왔다.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부드러운 바이올린의 숨소리가 흘러 넘친다. 가을이 바야흐로 아름답게 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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