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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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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빨강 금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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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문 곁 창으로 밖을 내다본다. 바람에 불려온 단풍나무 씨앗들이 젖은 바닥에 찰싹 깔려있을 뿐 빨간색 ‘재 구아’도 까만색 ‘엘란트라’도 없다. 어깨를 맞붙인 타운하우스니 바로 옆방이 빈 듯 허전하다. ‘에 레나’는 키가 자그마하고 서글서글한 성품에 붙임성이 좋아 친척집 조카처럼 정이 갔다. 내가 힘이 더 세다며 소매를 걷어붙이고 잔디를 깎느라 땀을 뻘뻘 흘리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과수원에서 사과나 복숭아 체리 같은걸 사오면 애들 방에 넣어주듯 스스럼없이 나누며 지내던 10년 이웃이었다. ‘브록’(Brock)대학에서 공부하는 딸을 위해 ‘썬더베이’에 사는 부모가 집을 사주었다. 졸업 후 두어 해 보조교사를 하다가 정규직장을 찾아 이곳 저곳 옮겨 다니는 눈치더니 근래에는 뉴욕까지 간 모양이었다. 


‘백마 탄 기사’가 나타나면 결혼할거라며 웃기더니 재작년에 빨간색 ‘재 구아’를 탄 기사를 데리고 왔다. 남편 ‘폴’ 역시 보조교사인데 뉴욕의 아파트값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국경을 넘나들며 출퇴근을 하더니 한겨울 지나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다며 포기하기에 이른 것이다. 새 직장을 찾아 아예 이사까지 결정을 한 것이다. 


가끔 주일에 교회에 가려고 나오다 마주치는 경우가 있었다. ‘폴’은 늦잠 자는 중이라며 ‘팀 호 튼’커피를 사들고 들어가는 ‘에 레나’의 모습이 무척 피곤해 보였다. 토론토지역으로 직장을 구하러 다닌다며 ‘기도 좀 해 주세요.’ 여전히 명랑한 목소리로 부탁하였다. 


저녁에 떠날 예정이라기에 서둘러 돌아왔는데 이미 다 떠나버린 후였다. 문 앞에 선물 봉투 하나, 굿 바이! 즐기세요(Good Bye! Enjoy it). 굵은 매직펜으로 박아 쓴 메모 한 장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아침에 인사는 했지만 떠날 때 직접 배웅하지 못한 서운함이 안개처럼 눈앞을 가렸다. 직장을 구하려고 애쓰는 야윈 모습들이 한 없이 애처롭고 그들 앞에 요동치는 생존경쟁의 세찬 파도가 슬픔처럼 밀려왔다. 텅 빈 드라이브 웨이가 허허로운 바람을 일으키며 마음바닥을 훑고 지나간다. 


까만 화판에 까만 표구를 한 액자를 꺼내보았다. 열두 마리 빨강금붕어들이 먹이를 가운데 두고 둥글게 모여 있다. 머리를 맞댄 붕어들의 수염이 하늘하늘 흔들린다. 지느러미가 부드러운 비단결처럼 살랑살랑 물결을 가르고 갈라진 꼬리가 좌우로 흔들리며 유연한 힘을 발산하고 있다. 금방이라도 풀쩍 솟아올라 홰를 치며 물방울을 사방에 쏘아댈 듯 휘젓는 몸놀림이 팔팔하다. 


사진인데 어쩌면 저렇게 살아있는 듯 정교하고 입체적일 수 있을까 신기해서 자세히 드려다 보다 깜짝 놀랐다. 그것은 사진이 아니라 아주 가는 비단실로 수를 놓은 자수액자였다. 


뒷면의 설명으로 행운의 금붕어 ‘치 쑤’(Chi Xu. 持續 지속)라는 걸 알았다. 빨간 금붕어는 상서롭다고 하며, 12마리는 12달을 뜻한다고 하였다. 일 년 열두 달 내내 행운이 넘치라는 축복의 액자였다. 어느 유명한 수예가가 정성들여 수놓은 축원의 비손이었다. 순간 이 액자는 나보다 그들에게 더 필요한 액자라는 판단이 번쩍 스쳤다. 


‘돈 밀스’ 어디라는 그들의 새 집으로 한달음에 달려가고 싶었다. 고운 마음만 감사히 받겠다고 손 사례를 칠 생각이었다. 오늘 옆집에서 탕탕 못질 소리가 난다. 아직도 떠난 이웃에 대한 감상에 연연해 있는 자신을 깨우다가 새로운 상념에 빠져 들었다. 


지난 일생 동안 있은 나의 이사행적을 되돌아보았다. 한국을 떠나 미국 ‘바 팔 로’, ‘바 팔로’에서 캐나다 ‘런던’, ‘런던’내에서 2번, 그리고 나이아가라 ‘폰 힐’로 오기까지 총 5번의 이사를 하였다. 


그런데 언제나 이사를 간다는 일은 벅차고 버겁고 힘이 들었다. 무사히 이사를 가는 일에 급급한 나머지 우리를 떠나 보내는 이웃들의 감상 같은 건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다. 떠난다는 사실을 슬퍼할 겨를도 없었고. ‘에 레나’의 떠남을 섭섭해 하듯이 즐겁게 지내던 이웃이 우리를 떠나 보내면서 어떤 감상을 가졌을지는 더더욱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사이 좋게 머리를 맞댄 열두 마리 빨간 금붕어가 뽀르륵 날숨을 뿜어낼 것만 같다. 일 년 열두 달 서로 비비며 사이 좋게 둥글둥글 살아가는 삶의 풍요로움을 일깨워준다. 볼 때마다 ‘에 레나’와 ‘폴’의 소원성취와 행복을 기원하게 한다. 어느 곳에서 살던지 축원으로 교류하는 우리의 마음은 항상 평안하고 행복할 것이다. 


어느날, 홀연히 닥쳐올 이사를 위해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고 싶다. 나눌수록 많아지고 베풀수록 더 크게 돌아오는 사랑의 자취를 쌓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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