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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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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변경선 동(東)과 서(西)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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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하네다 공항

 동경 하네다 공항에 내리니 그 많던 승객들은 마른땅에 물을 붓듯 다 사라져가고 예의 그 두 청년과, ‘시카고’로 약혼자를 찾아 결혼하러 간다는 둥근 얼굴의 한 처녀만이 흐르다 만 모래알처럼 주위에 모여 있었다.

 ‘비행기가 4시간 연발이라는데요.’

 ‘구내 아무식당에나 들어갈 수 있는 식권은 하나씩 주었는데 어떻게 할까요?’

 ‘그러면 식사는 나중에 하고 동경시내 구경이나 하면 어떨까요.’

 ‘숙’은 이들과 일행이 되어 모노레일을 탔다. 시내에서 내려 다시 택시를 잡아타고 말로만 듣던 긴자거리를 돌아서 ‘미쓰비시 백화점’으로 갔다.

 공업화된 시커먼 거리에 넘칠 듯이 밀려다니는 군중들. 좁은 차도에 밀린 자동차들 틈을 비집고 나가기가 수월치 않았다.

 그저 복잡하고 소란한 도시. 그러고도 ‘서울’같이 바쁘지 않은 여유를 보이는 그런 도시였다. 한국을 36년간이나 짓밟고 수많은 인사들을 살육한 이들 일본. 오늘날 한국의 양분이라는 비극을 낳게 한 이들 일본인들은 또 그 때문에 한반도에 육이오참상을 치르게 한 장본인들이다.

 한 가족이 이산되며 동족살생을 감행하는 동란의 뒤에서 그들의 잇속을 채우고 이렇게 바쁘지 않게 유유자적하는 것이 우리의 피를 부글부글 끓게 했다.

 우리는 굳은 표정으로 백화점으로 걸어갔다. 일행이 문 앞에 다다르자마자 자동문이 안으로 확 열리면서 ‘어서 오십시요’ 단정한 안내양들이 예쁜 얼굴에 하나 가득 미소를 띠우고 우리를 맞이했다. 말로만 듣던 일본인들의 미소 상술에 우리는 서로 쳐다보고 싱긋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상품들, 마루에서 천장까지 꽉꽉 들어찬 물건들이 일층에서부터 맨 위층까지 쌓여 있는데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겨우 이층까지밖에 없는 ‘신신백화점’이나 ‘미도파백화점’이 고작인 전후의 빈약한 한국백화점들을 떠올리니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게다가 점원들의 친절과 안내양들의 미소는 우리의 화를 활활 부채질 하였다.

 한국. 내 조국이여. 우리에게는 무엇이 부족하여 패전국 일본의 부흥상에 주눅이 들어 놀라워만 하는가. ‘숙’은 ‘영’의 손을 잡고 비실비실 장난감부 앞으로 가보았다.

 나이가 지긋한 노인 점원은 서투른 영어를 쓰는 ‘숙’이 일본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색은 하나 없이 허리를 굽신 굽신 굽혀가며 ‘예, 예, 이것 말입니까?’ ‘예, 예, 얼마입니다.’ 묻는 대로 대답해주고 청하는 대로 내려주고 설명해주고 하다가 안사면 오히려 자기가 미안하다고 손을 비비면서 제자리에 도로 넣기를 수없이 반복하는 것이었다.

 손님들의 기쁨을 위하여 상품을 만들고 손님들을 주인으로 여기고 대하는 그 태도와 사고방식이 일본을 부흥시키고 있는 것을 환히 알 수 있었다.

 ‘이제 고만 나가지요.’

 카메라와 시계 부를 돌아보던 두 청년들이 볼멘소리를 하자 우리는 더 이상 위층으로 갈것을 포기하고 밖으로 나와 버렸다. 목과 허리가 뻣뻣하니 아팠다.

 찌는 듯 덥던 날씨가 저녁이 되자 섬나라인 일본의 동경 거리엔 바람이 몰아쳐 왔다. 어둡지도 않은 거리에 벌써 네온이 깜빡거리고 그 밑을 하나의 긴 벨트처럼 군중들이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었다.

 바람은 피부에다 끈적끈적한 습기를 발라주고 먼지를 씌워주며 달아나는데 그 사이로 자동차들의 경적소리가 시끄럽게 울려왔다. 왜식 정식으로 저녁을 마치고 일행이 다시 비행기에 탑승했을 때 온 몸은 나른하니 피로에 젖어 들었다.

 밤이 되자 다시 할머니 할아버지께로 돌아가자고 울던 ‘영’은 장난감 총을 하나 안고 그대로 옆에서 잠이 들어있다. 어느새 밤 10시가 되어 있었다. 내일 오후 3시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 예정이라고 한다.

 ‘숙’은 선반에서 베게 하나를 내려 ‘영’의 옆을 비스듬히 받혀주고 자신도 그렇게 한 뒤 담요 한 장을 길게 펴서 같이 덮고 의자를 뒤로 젖혀 기대어 앉았다. 발은 퉁퉁 부어 있고 무거운 몸은 아무리 고쳐 앉아도 자리가 편치 않았다.

 앞으로 갈일이 큰 일이었다. 몸을 뒤 채며 눈을 감았다. 오늘 아침부터 일어났던 모든 일들이 까마득한 옛날의 일같이 가물가물 했다. 잠을 좀 자야지.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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