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sshon
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www.budongsancanada.com
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6 전체: 223,296 )
일부변경선 동(東)과 서(西) (3)
jsshon

(지난 호에 이어)

 며칠 전에 귀국한 어느 선배님이 판을 가로 맡으려 하자 “어머 이이가!” 질겁한 부인이 옷깃을 잡아채는 바람에 방안은 다시 웃음판이 되었다.

 “그런가?” 학장님의 낮은 베이스소리가 ‘숙’에게로 돌아왔다.

 “우린 6개월 안에 안 데려 가면 이혼장 날아가기로 되어 있어요.”

 “아이 구. 거 참 잘 햇수” 학장님 사모님의 말씀에 얼마나 들 웃어대던지-

 숨도 못 쉬게 웃던 남편의 웃음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아직도 화가 안 풀린 듯 ‘영’이는 입을 꾹 다문 채 앞만 똑바로 보고 앉아 있었다.

 할머니를 떠나는 슬픔을 혼자 삭이려 애쓰는 ‘영’을 물끄러미 보고 있노라니 언젠가의 옛 기억이 되살아왔다.

 4년 전이던가 대학교졸업식이 끝난 바로 다음날 경상북도 안동사범학교로 부임해야 했었다. 신학기가 되려면 아직 두 달도 더 남아 있었는데 사범학교 교장연수회에 참석한 교장선생님은 수업참관을 하던 자리에서 ‘숙’을 선발하여 졸업식만 마치면 곧 내려가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안동은 양반도시라서 딸자식을 내 놓고 길러도 아무 염려가 없는 곳이라고 아버님을 설득시키는데 성공하셨던 것이다.

 밤 10시 반에 청량리역에서 안동행 중앙선 열차를 기다리는 ‘숙’의 둘레에는 많은 식구들과 친구들이 전송 나와 있었다. 세상에 나와서 처음으로 어머니 품을 떠나는 햇병아리 선생님을 배웅하면서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객지에서의 외로운 생활을 걱정해 주었다.

 “어떻게 형편이 되면 내 곧 내려가 보마” 어머님이 불안하신 듯 다시 염려를 하셨다.

 “괜찮아요. 공연히 무리하지 마세요.” 짐짓 큰소리를 쳤었다.

 그런데 막상 기차가 슬 슬 플랫폼을 빠져나가고 거기 손을 흔들던 여러 얼굴들이 영상으로만 남게 되자 그만 저도 모르게 흐흑 하고 울고 말았던 것이다.

 모든 것. 내가 지금까지 그 속에서 평안하게 안주했던 보금자리를 송두리째 빼앗기고 나 혼자만이 유배되어 떠나는 것 같은 슬픔이 주체할 수 없이 마음을 침식시킨 것이었다.

 수 십 개의 굴을 지나서 안동에 도착한 것은 새벽 6시였다. 이제 완전히 혼자가 되어 내리기에 부산한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선생님 여태 이러고 계심 어떻게 합니까? 어서 내리십시다.”

 반백이 되신 교장선생님은 아직도 추운 새벽에 솜을 둔 명주 바지저고리에 마고자를 받쳐 입으시고 차안으로 마중 오셔서는 손가방을 챙겨들고 앞 서 나가셨다.

 출구를 빠져 무심히 역사를 걸어 나오던 ‘숙’은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여러분의 선생님들과 두 줄로 늘어선 남녀 학생들이 희부연 예명 속에 일개 무명의 선생님을 마지하기 위하여 반갑게 손을 흔들며 박수를 쳐주는 것이었다.

 교장선생님의 인도를 받아 숙소로 정해진 집은 기왓골이 비상하는 학의 날개처럼 하늘로 솟은 명가의 깊은 후원 별채였다. 아침이 되면 방문 밖 마루에 찬모가 무릎 꿇고 앉아 ‘선상님 진짓상 올릴까요.’ 하는 것이라던 지, 학교엘 가려면 대문을 몇 개나 지나야 했던 이집은 처녀선생을 극진하게 대접하려는 교장선생님의 배려와 안동전래의 양반규범이 한데 어우러진 것이었다.

 하지만 수십 수백 개의 눈들이 온통 주위를 샅샅이 감찰하는 것 같아 겹겹이 둘러쳐진 칸막이처럼 답답하고 불편하였다.

 일 거수 일 투족이 조심스럽기만 하던 어느 날 퇴근길에 한 노인을 만났다. 풀이 반들반들하게 다듬이질이 된 흰 명주바지저고리에 그 두루마기를 받쳐 입은 이 노인은 백발에 긴 턱수염이 눈같이 희게 가슴께에서 나부끼는 정갈한 모습이었다.

 저만치서 ‘숙’을 보자 언뜻 발을 멈추더니 ‘아 선상님 이제 귀가하십니까?’ 하더니 머리가 땅에 닿도록 허리를 굽히는 것이었다. 얼결에 같이 허리를 굽힌 ‘숙’의 얼굴은 홍당무가 되었다.

 스승은 임금님만큼이나 존귀한 존재로 여기는 그 노인의 태도는 옷고름을 풀어 헤친 듯 헐렁한 ‘숙’에게는 몸 둘 바를 모르게 하는 중압감을 주는 것이었다. 표본 같은 스승이 되어야 하는 괴로움 중에 가장 으뜸은 쉽사리 대화를 이룰 수 없는 단절된 외로움이었다. 서울까지의 기찻길이 영원같이 만 느껴지던 고립의 날들을 결국 감당하지 못하고 돌아오고 말았다.

 그런데 오늘은 어디로 가는가. 지구의 동쪽 끝에서 서쪽 끝으로,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이상에서 현상을 찾아가는 이 길에 약속은 없었다. 오직 한 가지 가능성에 대한 희망만을 붙잡고 가기만하면 모든 것이 마술의 지팡이에 닿은 신데렐라의 황금마차라도 될 듯이 젊은이들은 청운의 뜻을 품고 외쳐대는 것이었다.

 미국! 미국으로!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