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sshon
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www.budongsancanada.com
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75 전체: 224,166 )
일부변경선 동(東)과 서(西)(10)
jsshon


 

(지난 호에 이어)
 한 낮이 되면서 이곳의 더위도 굉장한 맹위를 떨쳤다. 뒤뜰 잔디에 의자를 내다놓고 앉아서 ‘게일’이 골프치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조그만 공을 핀 위에 세워놓은 후 양 다리를 반쯤 벌리고 허리를 곧게 편 자세로 살짝 옆으로 멋지게 선을 그으며 스틱을 내려치면 단단하고 작은 공은 공중에 낮게 포물선을 그리면서 매섭게 튀어 나갔다.


 툭 터진 푸른 잔디에서 작은 공에 온 정신을 집중하고 겨루는 골프는 운동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유연한 율동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틱을 짚고 서서 지금 막 날아간 공을 눈으로 쫓는 모습은 시선이 멀리 가면 갈수록 주위를 잊고 무아의 경지에 도취되는 듯 아스라해 보였다. 


 ‘딱 터 송. 이것 한번 해 보겠소?’


 ‘게일’이 맥주를 마시려고 돌아서면서 스틱을 ‘훈’에게 건네었다. 


 ‘오 케이’


 손바닥에 침을 바르는 시늉을 두어 번 하더니 싹싹 부비고 스틱을 꼬나 쥐는 폼이 벌써 어림도 없이 틀렸다.

서투른 자세에 어릿광대 같은 장난기가 철철 넘쳐흘렀다. 공을 고쳐놓고 양다리를 반쯤 벌리고... 거기까지 그럴듯하게 흉내를 내던 ‘훈’은 스틱으로 공을 때리는 몸짓을 몇 번 하더니 휘익 포물선을 그으며 스틱을 내리쳤다. 


 그런데 자리를 떠난 것은 공이 아니고 ‘훈’이였다. 스틱을 내려치던 여력으로 뱅그르르 맴을 한 바퀴 돌더니 그대로 비틀거리며 두어 발자국 앞으로 떼어갔다. 


 - 아 하 하 하. 아 하하하 - 


 모두들 허리를 잡고 폭소를 터뜨렸다.


 ‘하이 ’낸시‘ ’게일‘ 한 젊은 여인이 울긋불긋한 비치 숄을 두르고 앞뜰을 돌아 왔다. 


 ‘오 하이 ’데보라‘


 ‘낸시’는 반색을 하고 일어서고 ‘게일’은 앉은 대로 손을 들었다 놓으며 인사를 했다. 그러는데 예닐곱 살 또래의 고만고만한 사내아이들 서넛이 우루루 따라왔다. 


 ‘코리아에서 손님이 왔다고 해서 인사 겸 들렸지요. 함께 우리 수영 풀에 오지 않겠어요? ‘데보라’가 ‘낸시’에게 물었다. 


 ‘참 여기가 ’수지‘이고 여긴 ’닥 터 ‘쏭‘이에요’


 ‘낸시’의 소개를 따라 고개를 까딱거리며 약간은 호들갑스러운 그 여인과 악수를 했다. 


 ‘맥주 한잔 하실까요? ’낸시‘가 의자를 권하면서 물었다.


 ‘아니요 그보다 지금 우리 집에 가자구요 맥주는 거기서 하고.’


 ‘그래요 그럼 먼저 가있어요.’


 ‘오케이 그럼 기다릴 게요 ’수지‘’


 ‘데보라’는 비치 숄에 주렁주렁 달린 긴 술을 너풀거리며 손을 흔들고 돌아갔다. 서넛의 아이들이 엄마에 어울리지 않게 또 우루루 그 뒤를 쫓아갔다. 


 ‘쳇 머저리 같은 청부업자가 돈은 많아서.’ ‘게일’이 투덜거렸다. ‘데보라는 ’게일‘네 집 바로 길 건너편에 살고 있었다.


 언젠가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노라니 아주 날씬하니 고급스러운 승용차 한 대가 그 집 앞에 와서 멎었다. 그것이 바로 ’캐딜락‘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지만 그때 거기서 내린 사람은 얼굴이 붉고 배가 툭 불거져서 오뚝이 같은 중년남자였다. 꼭 나비 한 마리가 날아오듯 한 여인이 현관에서부터 뛰어 나왔었는데 그게 ’데보라‘ 였다. 


 ‘캐딜락’을 타고 다니는 돈 많은 청부업자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흥미로운 생각이 났다. 차고 옆으로 난 철문을 통해 뒤뜰로 돌아선 순간 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핑크색과 옅은 물색의 넓적한 타일을 모자이크로 메꾼 넓은 뒤뜰엔 여러 개의 비치파라솔이 세워져있고, 그 아래엔 하얀 등나무로 된 둥근 테이블과 의자들이 보기 좋게 배치되어 있었다.


 수영 풀 주위엔 일광욕을 하기위한 두툼한 패드들과 타월이 깔려있고 녹색 바닥의 풀엔 작은 고무보트, 구명대, 그리고 장난감 보트와 오리, 큰 공 같은 것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오 와주어서 정말 고마워요’ ‘데보라’가 부엌 뒷문을 열고 쟁반에 맥주와 콜라, 과자와 땅콩 같은 것들을 담아가지고 나왔다. 


 -첨벙 첨벙 첨벙- ‘어느새 그 집 아이들과 ’제프리‘는 물방울을 사방에 튀기며 다이빙보드를 뛰어 내리더니 고무보트를 끌고 와서는 ’영‘이보고 타라고 하였다. 


 처음 보는 일이라 눈만 커다랗게 뜨고 엉거주춤하니 풀 가에 서있던 ’영‘이 갑자기 ’야 잇!‘ 하고 소리를 지르더니 털썩하고 보트에 뛰어 올랐다. 물보라가 사방으로 튀고,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보트를 밀면서 저쪽 끝으로 헤엄쳐 갔다.


 사람이 만물의 영장인 것은 ‘그런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판별하는 뚜렷한 인식 때문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너무도 급작스러운 변화가 오고 거기에 아주 익숙하게 적응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오히려 자신도 오래 동안 그렇게 살아왔던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