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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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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변경선 동(東)과 서(西)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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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다음 날은 토요일이었다.

 ‘엄마! 저것 좀 봐.’

 

 미쳐 잠에서 깨지도 않았는데 ‘영’이 큰 소리로 깨웠다.

 드르릉- 꽝. 드르르- 꽝. 꽝.

 

 요란한 쇠 소리가 바로 창밑에서 나고, 그 창가에 매달려서 ‘영’이 눈을 반짝이며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뭔데?’

 밖을0 내다보니 거기엔 정말 굉장한 괴물이 하나 있었다. 석탄 차만한 큰 트럭이 한 대 서 있고 빨간 철모를 쓴 인부들이 집집에서 양철통에 담아 내 놓은 쓰레기들을 트럭 뒤에다 부으면 철문이 드르릉 드르릉 소리를 내며 압축을 시켜 트럭 안으로 밀어 넣고, 인부들이 내던진 빈 쓰레기통들은 꽝 꽝 요란한 소리를 내며 보도위로 뒹굴고 있었다.

 딸랑. 딸랑. 종소리를 예쁘게 흔들고 와서는 연탄재, 쓰레기 먼지를 함빡 안겨주고 달아나던 서울의 쓰레기차들. 거기에 비하면 어느 곳 하나 매끈한 곳이라곤 없는 우람한 풍경이었지만 깨끗하고 간편한 것이 역시 기계문명의 우위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태요옹- 태요옹-’

 

 아래층에서 ‘제프리’가 노래삼아 ‘영’을 부르고 있었다. 이층에까지 와서 깨우지는 못하겠고 같이 놀았으면 좋겠고 해서 이 꼬마는 층계 밑에서 뱅 뱅 돌며 ‘영’을 부르는 중이었다.

 

 토요일이어서 집에서 쉬게 된 아빠들과 모처럼만에 식탁에 둘러앉았더니 ‘낸시’가 토스트를 구워서 접시에 올려놔 주었다. ‘낸시’와 ‘게일’은 아예 커피 한 잔에 치-즈 한 쪽 씹고는 고만이었다.

 -이거 어디 배고파서 살겠나.- 따뜻한 해장국에 흰쌀밥 생각이 벌써 났다. ‘자 마민 이거 하나 더 먹어’ 눈치 빠르게 빵 한 쪽을 접시에 더 얹어 놨다.

 

 ‘오 미안해요 내가 권하지 않아서. 이 뚱보가 다이엣을 하느라고 영 말이 아니군요. 아얏!-’

 ‘낸시’가 눈을 흘기며 ‘게일’을 꼬집었다.

 

 ‘음식이 달라졌을 테니 무작정 권할 수 도 없고... 그저 먹을 만하면 얼마 던지 사양하지 마세요.’ ‘낸시’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해가 더 오르기 전에 끝내자고 남편과 ‘게일’이 잔디깎는 기계를 끌어내는 것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다시 졸음이 오기 시작했다. 올라가서 얼마나 잤을까. 배가 고픈듯 해서 눈이 떠졌다. 점심때가 되었나본데 식구들은 모두 뒤뜰에 앉아서 한담들을 하는가 보았다.

 

 ‘하이 ’수지‘ 뭘 좀 드십시오.’

 ‘게일’이 맥주 한 병을 내다가 ‘숙’에게 주었다. 곁에서 보고 있던 아빠가 쿡쿡 웃었다.

 ‘아 맥주를 못 하시는가요? 그럼 콜라를 드릴까요?’

 ‘하하하 ’수지‘는 콜라에도 취하는 사람인걸요.’

 ‘오우 그럼 점심으로 뭘 해드려야겠군.’

 ‘아니요 괜찮아요.’

 

 피크닉 테이블 위에는 튀긴 감자, 소금을 뿌린 땅콩 같은 것을 담은 그릇들이 있고 그 밑에 수북하니 빈 맥주병이 쌓여 있었다.

 

 ‘냉장고 열어보고 아무거나 꺼내먹어.’ 남편이 곁에 와서 눈을 찡긋했다.

 

 ‘저 맥주들 아침나절에 다 마신 거에요?’

 ‘그럼. 저녁때까진 아마 한 박스도 마실걸.’

 하긴 물만 마시고 사는 붕어들도 있긴 있으니까. 고개를 내저었다.

 

아닌 게 아니라 미국사람들은 무던히도 마시기를 즐기는 사람들이다. 이야기를 하면서도, 신문을 보면서도, 심지어 잔디를 깎으면서도 한 손으로는 기계를 붙들고 한 손으로는 맥주병을 들고 다녔다. 특히 더운 여름철에는 냉수로 위를 세척하듯 마셔 댔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먹을 만한 것이 없었다. 한 주먹에 뭉치면 그대로 밀가루 덩어리 같은 식빵은 이제 보기도 싫었다. 비릿한 우유도 더 이상 마시고 싶지 않았다. 오렌지 주스나 한 컵 마시고 또 배를 곯으며 기다려야 할 모양이다.

 

 부엌을 나오다가 거기 찬마루 위에 크림을 넣은 과자상자를 발견하였다. 주스 한 모금 마시고 과자 하나 먹고, 또 주스 한 모금 마시고 과자 하나 먹고를 반복하는 사이 과자 한 상자가 텅 비어 버렸다.

 

저녁때 다시 내려와 보니 찬마루에는 똑같은 과자상자가 잔뜩 쌓여 있었다. 그 후, 그 댁에 머물고 있는 동안 불평도 할 수 없이 내내 그 과자로만 연명을 해야 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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