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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클럽회원, 문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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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화(遷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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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천화(遷化)라는 단어를 알기까지는 50여년이 걸렸다.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께서는 “웃지 않는 세 정승” 이라는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아! 지금도 아버지의 음성이 들리네. 들리네.


웃지 않는 세 정승 중, 첫 번째 정승 이야기만 하고자 한다. 능력 있고 인품이 좋은 한 정승이 있었는데, 전혀 웃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하루는 임금님이 “그대는 왜 웃지를 않는가?” 라고 물으시니 “저는 웃고 살 수가 없습니다.” 임금님은 “그 이유를 말해줄 수 있는가?” “예” 


“삼십여 년 전, 제가 결혼식을 마치고 색시 집에서 첫날밤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색시는 원삼 입고 족두리를 쓰고 연지 곤지 찍은 채 얌전히 앉아있는데. 제가 변소에 다녀와야 할 일이 생겨서 일어나 문지방을 넘으려 하자, 색시가 도포자락을 콱! 잡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뒤돌아보니 색시는 시치미를 딱 떼고, 얌전히 그렇게 앉아 있는 것입니다. 


또 다시 나가려고 하니 아까처럼 또 도포자락을 콱! 잡는 것이었습니다. 돌아다보니 또 그렇게 시침을 딱 떼고 얌전을 떨고 앉아 있었습니다. 이럴 수가 있나? 첫날밤도 안 지낸 새색시가 새신랑 도포자락을 잡아당기다니. 기가 막히고 정말 괘씸한 생각이 들어서, 그냥 홱! 하고 나와서 제 집으로 와버렸습니다. 


자초지종을 부모님께 말씀 드리니 ‘첫날밤도 안 지낸 새색시가 발칙하구나.’ 하시며 다시 과거 준비에만 열중하라고 하셨습니다. 과거에 급제하고 결혼하여 삼십여 년이 흘렀습니다. 원님으로 이곳 저곳 발령을 받아 돌아다니다가, 마침 간 곳이 처음 결혼했던 그 고을이었기에 옛날 생각이 나서, 그 발칙한 새색시는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집이 어디였던가? 하며 더듬더듬 찾아가보니 그때는 크고 좋았던 대궐 같은 기와집이 다 허물어지고, 문짝들도 다 덜렁덜렁 떨어질 듯 하여 귀신이라도 나올 양, 마당에는 무성한 잡초가 우거져 있고, 거미줄만 가득한 채 폐가요, 흉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어찌하여 이 집이 이리 되었는가? 생각하면서 그때 그 새색시가 앉아있던 방이 궁금하여 열려진 그 방 앞에 와서 들여다보니, 아니 이게 웬 일입니까? 결혼식 날 곱게 차려 입은 새색시가 그 때 그 모습 그대로 원삼 입고 족두리를 머리에 얹은 채 얌전히 앉아 있는 게 아닙니까? 저는 놀라서 방으로 들어가 엉겁결에 “색시야” 하며 만지려고 손을 대니 그 모습이 사그르르 삭아내려 한줌의 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기가 막혔지만 한없이 그곳에 있을 수도 없고, 문지방을 넘어 나오다 보니 문지방에 작은 못 끝이 나와 있는 게 아닙니까? 아! 이 못 끝에 나의 도포자락이 걸렸었구나, 저는 그때서야 알았습니다. 아마도 색시는 그때 나간 신랑이 왜 안 돌아오나? 왜 아니오나? 하면서 저를 기다리다 지친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앉아있구나 깨달았습니다. 


아! 이 못 끝에 옷자락이 걸린 것을, 저는 색시가 제 도포자락을 붙잡고 앙큼을 떨었다는 좁은 소견에 멀쩡한 새색시를 굶어 죽게 하고, 그 집안을 폐가로 만든 경솔했던 저를, 저는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웃지 않습니다, 웃을 수가 없습니다.” 


임금님은 “아! 그랬군요, 갸륵하고 훌륭한 정승이오.” 라고 하셨단다.


붉은 가을이 뚝뚝 떨어지는 어느 날, 우리 집에는 남편 친구 분들이 오셨는데, 나이아가라 폭포를 구경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각자 소감들을 발표하는 중, 한 분은 “천화하고 싶었다.” 라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천화가 뭐예요?” 


“죽었지만 형상은 있는 거지요, 건드리면 한줌의 재가 되는, 목탁을 두드리며 도를 닦던 고승들이 어느 날 법당에서, 혹은 산중 낙엽 속에서 천화하셨다고 하잖아요? 또 다른 말은 죽음의 흔적이 없는 것이지요.” 나는 웃지 않는 정승의 이야기를 하면서 이것이 천화냐고 물었다. 


“네, 그 새색시도 천화 한 것입니다” 아, 천화? 50여 년 전 아버지의 귀감이 되는 옛날이야기 중에, 새색시의 그 모습이 천화(遷化)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다니, 나로서는 신기한 수수께끼가 풀리는 감격의 순간이었다.


인터넷을 뒤졌다. 천화를 설명한 곳이 여럿 있었는데, 불교용어이며 속세말로는 자살이라는 것이다. 나이아가라 폭포에 뛰어내려 천화하고 싶다는 말은 자살하고 싶다는 말이라니 등골이 오싹!


“나이야! 가라!”가기만 하면 나이를 가라! 고 한다 하여 젊어진다는 우스갯소리의 웅장하고도 아름다운 나이아가라 폭포인데, 그 곳에서 천화하고 싶었다니.  


경치가 아름다운 샌프란시스코의 악명 높은 자살다리 금문교(Golden Gate bridge)는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자살방지그물을 설치했다. 토론토에도 블루어와 댄포스로 이어지는 프린스에드워드 다리(Prince Edward Viaduct Bridge 077)가, 한 때는 불명예스러운 자살 숫자가 높기로 세계에서 2위를 기록했었다. 


여러 해 전에 토론토 시에서 거금을 들여 자살방지 조명안전망(Luminous Veil)을 설치해서, 다리에서 떨어질 수 없도록 해 놓았고, 밤에 보면 색색으로 변하는 아름다운 다리로 변해있음을 볼 수 있다. 


고민? 걱정거리가 무엇이냐? 하루 24시간 언제라도 전화하면 도와주겠다는 표지판이 여러 군데 붙어있다. 듣자마자 아름답게만 생각했던 그 천화라는 말이 자살이란다. 누구라도 한번쯤 천화를 꿈꾸어 보지 않았을까. 


그 동안 수 없는 천화 속에서 방황하며 고뇌하였음을 나는 고백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천화로부터 자유로운가. 아래를 보지 말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아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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