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sj
(국제펜클럽회원, 문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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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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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송한데요, 뭣 좀 물어봐도 될까요?”


“네, 뭔데요?”


“내가 나이를 먹다 보니 핸드폰 기능을 알려줘도 어느 땐 잊어버려서 잘 못하는 때가 있어요. 간단한 것 같은데 이것 좀 도와주시면 고맙겠어요” 


“아 이거요? 이럴 때는 이쪽으로 밀고요, 또 여기에 이것이 숨어 있어요, 이렇게 밀고 여기서 시작하세요.” 


“어머나, 세상에 나도 이거 알았었는데. 까맣게 잊었네, 고마워요, 학생이세요?”


“네”


 핸드폰도 기능이 많아져서 다 사용하지도 못하는데 때로는 잘 되다가도 안 되는 때가 있다.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고, 계속하다가 뭐가 엉키면 더 문제일 것 같고, 애플스토어 가려면 예약을 해야 하고, 그냥 가면 한없이 기다려야 하니 이런 간단한 문제는 한국에서 금방 온 듯한 학생한테 물어보면 딱 이다. 


 자주 가는 한국 식품점이나 식당에 가면 한국에서 공부하러 온 학생인 것 같은데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나는 그런 학생들을 보면 꼭 아들 같고, 딸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일한 지 얼마나 되었어요?” 


“한 1년 돼가요”


“부모님은 토론토에서 사세요?”


“아뇨, 한국에 계세요”


“학생이라면서요?”


“네, 공부하러 왔는데 공부도 제대로 못하고 파트타임 일을 조금씩 하면서 이러고 있습니다.”


“아 그래요?”


 나는 혹이나 마음을 다칠까 봐 조심스럽게 웃으면서 목소리를 소근소근 하게 “한국에서도 먼 캐나다까지 공부하러 와서 이 금쪽같은 시간을 이렇게 가게 뒷일 하면서 보내서야 말이 되겠어요? 캐나다에 올 때는 목표가 있었을 게 아닌가요? 그 목표가 무엇이었어요? 그 목표를 이루어야 하지 않겠어요? 정신 차리고 그 목표를 생각해 봐요. 어쨌든 캐나다에 가면 무엇을 하고자 했던 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봐요.“


동기유발을 시키기 위한 1차 방법이었다. 


“물리치료 쪽으로 센테니얼 칼리지 다니다 말았어요.”


“그러면 그 공부를 더해야겠네요?”


“글쎄요, 해야 할 텐데 뜻대로 안되네요.” 남의 얘기 하듯 한다.


“목표를 잊으면 안돼요. 어서 공부하여 칼리지 졸업은 물론, 거기에 관련된 자격증들을 몇 개정도 따 놓으세요. 능력은 자격증이 말해주는 거잖아요? 증이 있어야 해요, 증! 증! 잊지 말아요! 캐나다가 좋으면 캐나다에서 살 수 있는 길도 찾도록 하고요, 도와줄게요.”


 20여 년 전 일이다. 큰 딸이 대학 3학년인데 남자친구가 없었다. 남자친구 좀 새겨보라고 해도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예쁘고 상냥하고 애교도 많은데 남자친구가 없는 것이 문제였다. 


딸은 늘 나에게 하는 말, 엄마가 친구이고 애인이라서 시집 안가고 엄마랑 살겠다는 것이다. 이거 정상이 아니다. 큰일 났다. 주변에 보면 딸들 시집 못 보내서 30 - 40 세가 넘은 딸을 둔 엄마들이 잠 못 자고 난리들임을 보던 참이다. 남의 일이 아니었다. 


 아는 분에게 이 일을 말하니, 왜 엄마가 딸을 옆에 끼고 사느냐고 멀리 떠나 보내란다. 그러면 남자친구가 분명히 생긴다고. 어떻게 집을 떠나 따로 살게 하나? 그 당시 나로서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겁이 나고 걱정하며 고민 중에 마침 학교에서 1년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대학과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있다고 한다. 


어머나 그거 참 좋은 프로그램이네 너도 가라, 딸에게 바람을 넣었다. 미술 공부는 이태리에 가서 해야지. 이태리가 미술의 본고장인데. 어머나! 이태리! 말만 들어도 설레는 이태리! 꿈에 그리던 이태리! 가보자! 가자! 


 부랴부랴 서둘러 이태리 피렌체로 떠나 보낸 1년 후, 토론토로 돌아 올 때는 백년가약을 맺은 남편감이 있었다. 멀리 떠나 보내라는 그 말씀, 생각해 보면 깜짝 놀랄 충격이었지만, 참으로 고맙기 그지없고 확실한 동기부여였다.


 딸을 결혼시키기 전에는 나를 떠나 살게 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토론토로 돌아와 대학 졸업과 비슷한 시기에 결혼식을 하게 되니 딸애의 나이 방년 25세였다. 
 동기부여! 누군가를 자극하여 목표를 이룰 수 있는 행동을 하게 하는 일, 젊은 학생으로 보이면 핸드폰 안 되는 것 물어 보면서, 무조건 붙잡고 동기유발을 하게 하는 것이다. 


“학생, 공부하러 왔잖아요? 이래서는 안돼요. 어서 공부를 해야 해요. 희망했던 목표를 달성해야 하잖아요? 캐나다까지 와서 돈 조금 받으며 이런 허드렛일로 금쪽같은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말이 안돼요. 공부도 때가 있어요. 아무 때나 공부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꽃도 피는 때가 있고 지는 때가 있잖아요?”


 몇 명이나 붙잡고 애타게 말을 했을까. 지난 십여 년 동안 나는 한국에서 온 유학생으로 보이기만 하면 붙잡고 동기부여를 주고자 시도했었다.


 “아줌마, 왜 전화번호를 안 일러주셨어요? 아줌마 만나기를 얼마나 기다리고 찾았는지 아세요? 저 이번에 센테니얼 칼리지 졸업했고요, 자격증 두 개 땄고요, 또 딸 거예요, 저 공부한대로 물리치료 쪽으로 일하고 있어요. 그리고 저는 캐나다가 좋아요. 캐나다 시민권자 아가씨 있으면 소개해 주세요. 아줌마, 고마워요, 제가 뭐를 해야 할지 망설이고 주저할 때, 확실한 동기부여를 해주셔서 제 목표를 달성했고, 계속 발전시키고 있어요. 아줌마를 늘 생각해요. 정말 고마워요.”


“정말?” 감동! 그 자체였다. 나는 또 성취감을 느낀다.


“잘했다 잘했어” 감탄의 소리가 나도 모르게 너무 크게 나왔다. 사실 나는 그 학생을 기억할 수가 없다. 누가 누군지 아나, 아마도 기십 명은 말해 주었을 테니까. 아무튼 내 아들처럼 기뻤다. 


대한의 아들이 공부하러 외국 땅에 와서 어영부영하다가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면 무얼 해먹고 살겠단 말인가. 한평생 살아가기가 쉽지 않은데. 동기부여를 해 주어야지.


 동기부여! 정말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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