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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클럽회원, 문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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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장도(銀粧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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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들이 여기 직원이요? 왜 여기로 출근을 합니까? 당장 나가요”


 지금으로부터 한 40여 년 전 일이다. 친정아버지께서 충남도교육위원회 재무과장으로 계실 때,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아버지가 재무과장으로 발령을 받아 출근하여 집무를 시작할 무렵, 직원이 아닌 남자 서너 사람이 손님이 오면 기다리는 의자에 죽 앉아 있더라는 것이다. 그것도 하루 종일 며칠 째. 사실 아버지는 알고 계셨단다, 이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아버지는 시침을 딱 떼고 “당신들은 무슨 볼 일로 오셨소?” 그 분들은 깜짝 놀라는 듯.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하는 눈빛이었단다. 


아버지는 단호한 어조로 “여기가 당신들 직장이요? 아니잖소, 당신들의 직장으로 출근하시오” 


그 말에 서로들 눈치를 보며 꼼짝도 안 하더란다. 


“당장 나가시오, 당장” 호통을 치니 슬슬 일어나며 하는 말들


“최 과장! 두고 봅시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으니까” 재수없다는 듯 눈을 옆으로 돌리는 그 사람들은 신문기자들 이었단다. 


 그 당시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충청일보, 대전일보 등에 소속된 기자들이었다는데, 공공기관에 와서 죽치고 앉아 뭐 기사거리 없나? 밥 얻어먹고, 커피 얻어먹고, 담배 얻어 피고, 그곳으로 아예 출근을 한다는 것이었다. 


 직원이 말하기를 감히 그들을 나가라거나 뭐라고 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전혀 없었다면서, 혹시라도 뭐 잘못을 하면 기사가 크게 나갈까 봐 무서워서 벌벌 떨었다고 했다. 


거기에다 “과장님 이러시면 안 되는데요?”라고 하며 말리기까지 하더라는 것이다. 아버지는 직원들을 향하여 왜 당당하지 못하고 벌벌 기고 사느냐고 야단쳤다고 하셨다.

지금까지 아주 나쁜 버르장머리로 그들을 키워주었다는 데에 더 큰 문제가 있다면서, 이래가지고 부정부패를 어찌 척결하겠느냐고, 나부터 목을 대고 해야 할 일이 아니냐고 통분하며 역설하셨다고 했다. 


 한국의 신문 기자들이 다 그렇다는 말은 절대로 아니다. 그 당시 그 곳의 상황만을 말하는 것이니, 읽으시는 분들은 오해 없기를 바란다. 


 공무원인 직원들도 기자들 밥 사주고 커피사주고 하는 돈들은 어떻게 해서 쓰는가? 그 자체부터가 부정부패 아닌가? 잘못 쓰고 떼어먹다가 걸리면, 직장 떨어지고 퇴직금 못 받고 가문에 망신당하는 일인데, 목숨 걸고 그들의 뒷바라지를 하는 것이었다. 


이래도 걸리고 저래도 걸리는 박봉의 불쌍한 공무원들이지만, 공과 사를 왜? 분명히 판단 못하느냐고, 일전이라도 공금은 공금이니 공금으로 사용되어야 할 것이며, 사적으로 일전이라도 썼다면 당연히 처벌 받아야 한다고 하셨다. 


 내가 정직하면 당당하다는 말씀으로 우리 사 남매를 교육시키시며, 비굴하거나 비겁하게 살지 말라고 하셨다. 검소에 검소를 더하고, 절약에 절약을 더 하면서 내 비록 월급이 적고 가난하여 때로는 꽁보리밥에 소금물을 찍어 먹고 살았을지언정, 비겁하게 살지는 않았다고, 너희들도 정직하게 사는 길이 옳은 길이고, 자신과 하늘 앞에 떳떳한 일이니 당당하게 살라고 하셨다. 


 경제적으로 부유하게 사는 것이 인간의 목적이 아니고, 옳게 사는 것이 목적이며 당연히 인간이 가야 할 길이라고 가르치셨다. 공금이든 남의 돈이든 몇 푼 떼어먹으면, 그게 그리 기분 좋고 잘 사는 길이냐고, 하루를 살더라도 당당하게 살다가 죽으라고 하셨다. 용서 받을 수 없는 일을 저질렀다면 자결하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어떤 일을 잘 하려다가 잘못 할 수도 있다. 잘못했으면 빨리 잘못을 인정하며 용서를 빌고, 용서를 받으라는 것이다. 그것만이 무죄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아버지는 재무과장 임기를 당당히 마치심은 물론, 다른 과로 옮기시며 42년 오직 한 길 대한민국 국가 공무원 사무관으로 일하시고 정년퇴직을 하셨다. 정직하면 당당하게 산다는 것을 삶의 좌우명 1번으로 삼으셨다. 나는 이런 우리 아버지를 좋아하고 존경하며 자랑하는 바이다. 


 자식이 불의를 행했다고 자결하라는 부모가 있는가? 안동 김씨 나의 친 할머니도 처녀 시절에 은장도를 대물림으로 물려주시며, 뭇 사내가 달려 들어 목숨인 정조를 잃었다면 이 칼로 자결하라고 하셨다. 


 아! 어찌 하오리까, 은장도는 지금도 가지고 있으면서 이혼하고 재혼까지 한 나는 왜 이승에서 얼쩡거리고 있나? 저 세상으로 가신 우리 할머니의 모습이 클로스 업 된다. 저승에 가서 우리 할머니를 만나면 삼십육계를 해야 하나? 


은장도를 내밀면 할머니는 당연히 내 목을 칠 것이다. 나는 지금부터라도 달리기 연습을 많이 해 놓을 것인가? 세상 떠날 때 은장도는 꼭 쥐고 가야 할 것인가? 


 오호 통재라, 나는 부족한 사람. 이 글을 쓰면서도 이(이빨) 부딪치는 소리에 부들부들 살이 떨린다. 


 아 우리 아버지! 최자 익자 원자!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내려다보시며 정직하게 살라고, 그래야 당당하다고, 지금도 우리를 향하여 웅변하시는 그 음성이 귓전을 때린다. 아버지의 그런 피가 내 속에서 콸콸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 늘 소름 끼치도록 감지된다. (2018.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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