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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ced Retreat-강요된 휴식(2)
gigo

 

노삼열

(토론토대학교 정신의학과 석좌교수(은퇴))

 

이민, 제2의 시작

어찌 보면 지금 나의 건강 상태는 휴식에 대한 내 몸의 요구를 너무 오랫동안 무시한 채 살아온 결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반세기를 넘어선 캐나다 이민의 삶은 빈손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10년 전 은퇴를 선택하기까지 이민자의 여정은 retreat도 reflection도 없이 이어진 치열한 과정이었다. 그동안 동생과 어머니가 15년과 5년 전에 먼저 떠났고, 가족 중 나만 홀로 남았다.

우리 부부가 한국을 떠난 것은 폭염이 고개를 숙이지 않고 버티고 있던 1971년 8월 중순이었다. 출국 며칠 전 오후, 종로 세운상가 입구에서 내가 타고 있던 버스가 멈춰서 있었고, 버스 옆에서는 지하철 1호 터널 공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초라했던 당시의 노동현장이 눈에 선하다.

지금은 서울의 지하철이 더없이 선진화 되었고 한국 토건기술 수준 또한 훌륭하지만, 당시의 공사장 모습은 오늘의 산업대국 한국을 꿈꾸어도 좋을 만한 수준은 아니엇다. 한 트럭분의 흙을 파 들어가는 경우에도 수없이 많은 노동자들이 투입되었다. 곡괭이와 삽으로 퍼 올려진 흙더미를 옮기기 위해 한 사람은 큰 삽을 쥐고, 그 삽 양편에는 새끼줄이 하나씩 묶여져 있었고, 그 줄 끝에 장정이 하나씩 배치되어 있어서 삽질하는 3인조 팀이 투여됐다.

이들은 어기여차(?) 외치면서 리듬을 잃지 않고 효율적 작업을 이어갔다. 완전히 노동자들의 물리적 힘에 의존한 작업이었다. 지금도 가끔 북한 뉴스에 비슷한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트럭 한대 분의 흙을 옮기려면 이런 3인조 여럿이 필요했다. 며칠 후 토론토에서 토목과 건축공사 광경을 보면서 그 분야의 문외한인 나도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단언하지만 당시의 한국은 세계 10대 산업경제 대국을 운운할 형편이 아니었다. 넘겨야 하는 단계는 많았고 그 하나 하나가 숨가쁜 도전이었다. 불가능해 보이는 혁명 시도였다.

비민주적 비인도적 방법으로 소수의 기업체에 자금을 몰아줘 투자를 가능하게 하면서,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억눌러서 투자자들의 이득을 챙겨 주어야 했고, 이 모든 비정상적 오퍼레이션을 큰 무리없이 진행되도록 하기 위하여 행정 입법 사법과 군부와 정보기관들까지 하나가 되어 국민들의 눈과 귀를 덮어야 했다.

꼭꼭 눌러두지 않을 수 없었다. 전태일의 분신이 있었고 이한열 등 학생들의 희생이 이어졌다. 이외 수많은 학생들, 노동자들, 종교인들과 학자들이 사라지고 투옥되고 고문을 받고 교육대에 끌려가기도 하고 강제 해직되기도 했다.

이런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유신의 숨겨진 몸통이 지하에서 우물거리면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던 무렵에 우리 부부는 탈한국 이민자가 된 것이다. 아내의 뱃속에는 장남이 성장하고 있었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산업경제 혁명은 세기적 성공이라는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다. 화려한 찬사를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는 서울을 중심으로 한반도 어느 곳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젠 유럽과 일본을 가볍게 취급하고 일부 분야에서는 미국과 맞짱도 뜰 양이다. 중국과 동남아 그리고 소련도 홀대하려는 자신감이 쩐다.

과연 작은 고추가 맵다는 전설을 이루었다. 그래서 경제혁명의 주체였던 유신권력의 주인 작은고추 박정희 대통령을 영구적 국주로 받들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전화의 파괴 속에서 살아남고, 보릿고개를 겪으며 연명했던 어른들이 오늘의 영화와 기름진 삶을 어찌 환호하지 않겠는가? 당연하다.

한편 새 밀레니엄의 첫 4반세기를 넘어서는 대한민국의 현재 모습은 한강 기적의 현장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후진적 냄새가 진동한다. 다수의 대통령들이 정상적 퇴진을 하지 못하고, 야당과의 협치란 아랑곳하지 않고 내세웠던 공약은 깡그리 무시하는 행정부의 독주와 무리수는 역대급이다.

대통령실과 가족의 주위에 추한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 이미 하수인으로 자리매김한 사법부의 묵인으로 인해 밝혀지는 것은 없다. 한발자국도 나서지 못하고 있다.

입법부의 유치하고 치졸한 정치인들의 패거리 싸움은 눈뜨고 볼 수 없다. 사법과 치안의 부패는 행정 입법과 선택된 대 언론과 기업들과 역어진지 오래됐다. 너무 끈끈하고 뿌리가 깊다. 이런 전폭적 제도의 부패는 SNS와 unchecked fake news를 이용하여 일반인들을 혼돈 속에 가두어 둘 수 있다.

그래서 전국민 앞에서 참으로 어이없는 무식함과 망상에 가까운 생각을 쏟아 부은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출하도록 유도할 수도 있었다. 현재 한국의 기업들이 미국에서 입고 있는 깊은 상처들은 한국 정치와 외교의 무능과 깊은 관계 속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아직 자신의 안보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소유하지 못한 채 미국의 전략에 전폭 복종하고 따라야 하는 모습은 너무 부끄럽다. 그나마 대한민국을 지켜온 힘은 경제를 지켜온 기업들이다. 끊임없는 권력의 수탈 속에서도 체계적 기술과 인력 개발을 스스로 일궈내어 온 노력이 가상하다. 그러나 그들 역시 때로는 불의와 손을 놓을 수 없었고 스스로 권력의 후원자가 되어주기도 했다.

한국은 일본의 지난 50년의 경제적 흥망 궤도를 따르지 않고 새로운 과정을 보여줄 것인가? 유신권력과 같은 정치적 절대독재 하에서 한강의 기적이 시작되었고, 그 후 이어진 보수와 진보적 정치적 교체 속에서 어렵게 뿌리를 내린 경제력은 지속될 수 있을까?

어쩌면 한강의 기적의 원동력이 되어 주었던 절대적 독재 폭력의 깊은 뿌리가 완전 제거되지 않는다면 자국보호형 국제경제 전쟁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 같다. 왠지 물질적 힘에 all in해 있는 한국은 자신의 그 힘으로만은 버티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지워버리기 쉽지 않다.

사회제도와 국민들의 삶이 좀 더 인본주의적이고 민주적 모습으로 변해야 된다고 본다. 그렇지 않고 경제수치만 드려다 보고 있다가는 지속적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워질 것 같다. 부러질 것 같다. 일본처럼.

요즘 국제적 넷트웍을 통해 인기몰이가 한창인 K 드라마들을 보면 면구스러울 때가 많다. 폭설과 잔인한 린치 장면이 교실과 교정에서 반복되고, 이 말도 안 되는 불의가 학교와 선생들과 부모들의 무심과 보호 속에서 지속된다는 이야기가 어찌 상품가치로 평가되어 자랑거리가 될 수 있는가?

이런 성격의 문화는 한국의 지속적 성장을 막을 수 있다. 마치 자신을 살피지 않고 주위와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막무가내 살아온 나의 이민 반세기 이민생활 같아 보인다고 할까? 미세한 사고나 부상이 되돌릴 수 없는 참상으로 들어나기 전에 더 섬세하고 정직한 관찰과 철저한 예방을 시행하면 좋겠다는 바람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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