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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장애인공동체 기획시리즈-행복은 만들어 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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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범(회장/회원)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는 것이 나의 평소 생각이다. 나는 떠오르는 태양과 하늘을 붉게 만들고 있는 저녁 노을, 빨간 사과, 노란색 바나나 같은 것들은 알고 있지만 지금은 그것들을 볼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2007년도에 뜻하지 않게 실명을 겪게 되었기 때문이다.

 

 중도 시각장애라는 예기치 않은 현실이 이제까지의 내 삶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결혼 전부터 몸은 다소 불편했지만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고 ‘좋은 남편’이 되고 싶었다. 그런 꿈은 이 일로 말미암아 더 실현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가정과 자녀를 돌보아야 할 내가 어린 자녀들로부터 도움을 받는 처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전에는 내가 운전하고 아내가 곁에서 편히 쉴 수 있었던 상황이었는데 이 또한 바뀌어 버렸다. 힘들게 일하면서 잠시 쉬지도 못하고 잠을 쫓아가며 운전을 해야 하는 아내를 생각하면 깊은 자괴감이 들 때가 있다.

 

 시각장애로 인하여 집안에서도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혹시 내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아이들은 그때마다 “아빠 괜찮아?” 하며 나를 걱정한다. 이런 일을 겪다 보니 가족을 보호해야 할 내가 어느덧 보호의 대상이 되면서 가정에서 내 존재감 또한 약해졌다고 생각하게 된다.

 

 시각을 잃고 병원에서 퇴원한 직후였다. 이때 나는 신앙적으로 영적 갈등이 잦았다. 예를 들어 내가 교회에 앉아 있고 애들은 편안하게 놀고 있는데도 내 머릿속에서는 갑자기 “야! 너의 애가 저기 길가에 가다가 교통사고가 일어났어!”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나가서 확인하면 끝날 일인데도 그렇게 할 수 없으니 불길한 생각들로 가득 차오르고 그런 생각에 맞서는 생각들로 내 머리는 더욱 더 복잡해진다.

 

 또한 밤이 되면 자살에 대한 생각들이 무수히 내 머릿속을 채웠다. 때로는 만약 내가 자살을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들이 구체적으로 이어지기도 하였다. 이런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면 실제 자살이 되었을 것이다. 한동안 나를 힘들게 하였던 이런 자살 충동은 이성과 신앙의 힘으로 모두 이겨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절대 쉽지 않았다.

 

 보통 사람들은 깜깜하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잘 모를 것이다. 실명한 후로는 잠을 자더라도 언제 잔지 모른다. 또 깨어 있어도 깜깜하니 내가 언제 잠에서 깨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소리로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를 한 개 샀다. ‘새벽 한 시입니다’ 라는 소리를 들었고, 그 다음에 ‘새벽 다섯 시입니다’ 라는 소리를 들었다면 ‘아! 내가 두 시부터 다섯 시까지 네 시간 동안 잠을 잤구나!’ 라고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시간은 2007년 이후로 멈춰 서 있다. 그러나 내 주변의 시간은 흘러가는 것 같다. 우리 아이들이 다섯, 네 살, 두 살 되던 때에 내 기억은 멈춰 있다. 아이들 모습을 보지 못하고 목소리만 들으니 한편으로는 보고 싶다. 어떻게 컸는지 궁금하다. 주변 사람들이 아이들에 대해 ‘이쁘구나’ 하면 ‘아! 우리 애가 이쁜가 보다’ 라고 생각하고, ‘착하구나’고 하면 ‘아! 우리 애가 착한가 보구나’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내도 얼마나 늙었는지는 모르지만 역시 2007년도에 보았던 그 모습을 떠올릴 따름이다.

 

 만약에 내가 다시 볼 수 있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생각을 종종 해본다. 우선 졸음과 싸워가면서 운전하는 아내를 대신해서 내가 다시 운전대를 잡고 그 사람을 편히 쉴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 다음으로는 아내와 자녀들 모두 함께 밤하늘이 보이는 곳에 가고 싶다. 하늘을 바라보면서 지나온 일들을 이야기하고 앞으로의 계획도 함께 세우고 싶다. 그리고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을 한 번 더 만나보고 싶다.

 

 장애인공동체 안에는 내가 눈 뜬 상태에서 본 사람들이 몇 분 계시고 실명 후에 만난 사람들도 참 많다. 유O선 사무장도 그렇고, 동갑내기 유O곤 이사, 이O금 교수님 등 여러분들이 계신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분들의 이미지가 과연 실제와 얼마나 매치가 될까 몹시 궁금하다. 내가 눈을 뜨고 그분들을 본다면 나는 “처음 뵙겠습니다” 라고 인사를 건넬 것 같다. 물론 꿈같은 이야기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나를 들뜨고 기쁘게 한다. 그리고 사실 나에게는 평생 눈을 감는다는 생각도 없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의사들은 시신경이 죽으면 100% 눈을 못 뜬다고 한다. 물론 의학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죽은 지 3일이 지난 나사로도 살아나서 회복되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나를 치료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언제일지는 잘 모르겠다. 내 생전일지 아닐지. 그러나 눈을 다시 뜬다는 그 마음만은 항상 갖고 있다. 이런 것이 행복일 것이다. 행복은 만들어가는 것이다. 나는 지난 일보다는 앞으로의 일에 꿈과 희망을 건다.

 

 연극을 할 때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한 얘기가 있다. ‘나는 앞을 볼 수 없지만 잠잘 때 꿈속에서는 눈뜬 자유인이 되어서 추억의 사람들을 계속 만나고 있다’고. 이 말을 들은 공동체의 사무장이 ‘꿈속에서 내가 보이느냐’ 라고 물은 적이 있다. 대답은 ‘안 보인다’이다. 이 점에 대해 사람들은 궁금해할 것이다. 꿈속에서는 내가 눈을 뜬 상태에서 본 적이 있는 사람만 보인다. 아무리 친밀한 사람이라도 눈을 감은 상태에서 알게 된 사람들은 꿈속에 보이지 않는다. 선천적으로 시각장애를 갖고 태어난 분들의 경우는 알 수 없으나 중도에 장애를 입은 나의 경우는 그러하다. 눈 감은 후에 만난 사람들은 형태가 없으니 나타나질 않는 것이다.

 

 이전에 본 적이 있는 사람은 꿈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에서 얼마든지 만나고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내가 앞을 못 보니 갑갑하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이런 부분 때문에 그리 갑갑하지 않을 때도 많다.

 

 앞으로 나는 아내와 많은 여행을 하고 싶다. 아내를 통해서 느끼는 것이 많을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 곁을 혹시 어떤 차가 지나가거나 창밖에 펼쳐지는 자연환경과 풍경이 어떠하다고 아내가 이야기해주면 나는 나름의 상상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나와 같은 시각장애인들에게는 곁에 있는 분들이 침묵하기보다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설명하고 묘사해주신다면 좋겠다.

 

 본다는 것은 ‘눈으로 보는 것’도 있지만, ‘생각해 본다’도 있고, ‘들어본다’, ‘맡아본다’, ‘먹어본다’, ‘만져본다’, ‘맘먹어 본다’, ‘가본다’, 그리고 영적인 것도 있다. 소위 말하여 ‘영안으로 본다’ 라는 것이다. 눈은 안 보이지만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시각을 대체할 수 있는 집중력이 생긴다.

 

 다른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지만 나는 피부에서도 그런 것을 느낀다. 앞에 위험이 감지될 때에는 피부에도 느낌이 와 조심하게 된다. 듣는 것도 전보다 더 집중된다. 눈이 하지 못하는 일을 온몸이 대신하는 것이다. 이런 부분은 다른 장애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신체 일부에 장애가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살아갈 방법을 다 만들어 주시는 것 같다.

 

 아직도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집안에만 머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런 분들을 찾아 공동체로 이끌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이다. 공동체에 나와서는 재활 프로그램을 통해 이들이 자립과 자활의 길로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 다음 목표이다.

 

 봉사를 통해 장애인들과 기쁨을 나누고 더불어 행복을 키워나가는 후원자와 봉사자들은 성인장애인공동체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더디 가더라도 우리에게는 분명한 목표가 있고 꿈과 희망이 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는 천사의 마음을 가지신 분들이 계신다. 그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본 원고는 구술생애사 작가 김동환 님께서 성인장애인공동체 한재범 회장과의 인터뷰를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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