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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장애인공동체 기획시리즈) 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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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미(회원)

 

 나는 어릴 때 엄마가 나를 눕혀 놓고 발 운동을 시켜 주시던 것을 기억한다. 나중에 들어보니 돌이 채 되기 전 나는 소아마비 병균과 약 일주일 싸우다가 간신히 살아났다고 한다. 오빠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외가에 가게 되었는데, 1~2년 살다 오기로 된 것이 5년이나 더 있다가 학교 갈 무렵에야 간신히 돌아왔다고 한다. 아마도 첫 손주로서 귀여움을 듬뿍 받은 탓일 것이다. 내 밑에는 또 남동생이 있어서 나는 양념 딸로서 가족의 보호 속에 원만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빠가 군에 계셔서 시골로 이사갔을 때였다. 가족과 나들이 다녀오는 길에서 동네 남자아이들이 “절름발이, 병신…” 이라고 깔깔 웃으며 놀려서 깜짝 놀랐다. 무섭고 창피해서 키 큰 아빠 품에 안기고 싶었는데, 모든 것이 slow motion 같게 느껴졌고, 어렴풋이, 나는 홀로 서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는 나에게 한국 나이 4살 때 피아노를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내 장래를 걱정하시다가 피아노 교수를 하려면 일찍 시작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얼마 전 우리 가족은 다시 서울로 이사했고 청와대 앞에 살게 되었다. 청와대에서 일하시는 언니가 봄이면 open yard day가 있어서 나는 등에 업고 동생은 손을 잡고 놀러 갔다. 어린 방문객들에게는 연필을 하나씩 나눠주고 있었다. 동생은 군복 입은 사람이 연필을 주니까 싫다고 언니 뒤에 숨었다.

 

 그 분은 내 손에 연필 2자루를 주면서 “한 자루는 집에 가서 오빠 주어라” 하셨다. 나는 “저 군인 아저씨가 집에 오빠가 있는 걸 어떻게 알았지?” 하고 궁금해했었다.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는데, 그 분은 내가 업혀 있으니까 옆에 걷고 있는 남동생을 오빠라고 착각하신 거였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는 무서운 남선생님이 한 분 계셨다. 하루는 학교가 끝난 후 친구들과 ‘하모니카’라고 불리는 빙글빙글 도는 기구를 타게 되었다. 그런데 그 무서운 선생님이 보시고 “누가 이런 거 타랬어?” 하면서 잡으러 오셨다. 친구들이 뛰길래 얼떨결에 뛰다가 생각해보니까 ’아이고 선생님이 내 뒷모습 봤으니까 도망가 봤자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주말 내내 ‘선생님이 같이 탄 친구들 이름 대라 하면 어쩌지?’라고 걱정했었다. 그런데 고맙게도 그 선생님께서는 나를 그 주에도 그 다음 주에도 부르시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은 해도 나는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새로운 사람들과 앉아서 떠들다 보면 말도 잘 통하고 재미있는 사람들도 만나는데 나중에 내가 걷는 모습을 보고 놀라는 분들도 계셨다. 괜히 숨긴 것 같아 무안할 때도 있어서 나중에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있으면 일부러 화장실도 갔다 오고 하면서 내 모습을 보여주기로 했다. 가끔 잊어버릴 때도 있기는 했지만.

 

 캐나다는 아빠가 군에서 나오시면서 형편이 어려워지자 캐나다에 사는 고모가 우리 가족을 초청해 주어서 오게 되었다. 이곳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고 대학교까지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15살 어린 나이에 독립운동에 가담했고 6?25 때 전선에서 싸우셨던 아버지도 이미 하늘나라에 가셨다. 엄마는 2018년에 낙상하신데다 뇌출혈 후유증으로 결국 가택 병간호가 힘들게 되자 2019년 4월에 한인 전문 운영인 무궁화요양원에 입주했다.

 

 나는 2009년 이모의 소개로 처음으로 성인장애인공동체에 나오기 시작했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잘 이해해 주어서 좋았다. 음악, 운동, 미술, 컴퓨터, 하모니카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어서 더욱 더 좋았다.

 

 2016년 나는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공동체 이사님들과 회원들이 많이 도와주었다. 어떤 이사님과 그 분의 딸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도 만들어 보냈고 항암 치료 정보도 빨리 알려주어 큰 도움이 되었다.

 

 박 이사님과 SN씨는 건강에 좋은 반찬들을 이모 편에 보내주셔서 약물치료 중 메스꺼움을 잘 견딜 수 있었다. 또 이OO 씨는 헤모힘과 한약까지 꼬박꼬박 챙겨 주셨다. 힘내라고 격려 시(詩)를 보내주신 이사님, 공동체 부엌에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보내주신 이사님, 그리고 이메일을 보내주신 B 선생님, 희망을 잃지 말라고 종이학을 접어 보내주신 한 회장님, 항상 신경 써주신 유 사무장님, 모든 분께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다.

 

 내 인생길이 순탄하진 않지만, 가족과 그 분들의 사랑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남은 인생도 늘 함께 하시고 힘주시는 주님께 다 맡기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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