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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공동체 기획시리즈) 공동체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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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민(이사/회원)

 

 올해로 스물 두 돌이 된 성인장애인공동체의 출발은 한 만남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한인회 행사로 기억되는 한 세미나가 끝난 뒤 민혜기님, 임청신님, 그리고 나 세 사람이 자리를 함께 했다. 초기에는 모임에 특별한 목적을 둔 것이 아니었다. 사교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한 달에 한 번 정도 정기적으로 만나서 담소도 나누고 식사도 함께하면서 친교를 이어갔다.

 

 시간이 지나는 동안 이민사회를 잘 아시는 민혜기 사모님이 집에만 계시는 분들을 한 분 한 분 모임에 초대하셨다.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다 보니 모임 장소가 문제였다. 식당에서 만나는 것도 힘들어져 나중에는 교회를 빌려서 모임을 하게 된 것이 오늘날 성인 장애인 공동체의 실마리가 되었다.

 

 사람들이 모이자 과연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 당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몰랐다.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공동체는 점차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변모한 것이다. 내 생각으로 이런 모양새를 갖춘 것은 10년 안팎이다. 초창기에 모이셨던 분 중에 지금까지 나오시는 분들이 몇 분 계신다.

 

 당시 구성원 중에는 이미 세상을 떠나신 분도 있다. 나도 이민자로서 내 삶을 살아내야 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깊이 관여하기는 힘들었다. 이런저런 일로 모임에 한동안 참석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공동체가 존폐위기까지 내몰렸을 때, 몇몇 분들이 ‘공동체가 이대로 주저앉게 할 수는 없다’ 해서 나도 다시 모임에 나오게 되었다. 이후 공동체는 제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나는 요즈음도 공동체에 자주 참석하진 못한다. 공동체의 정기모임이 있는 금요일에는 거의 참석을 못하고 있다. 여름캠프의 경우는 휴가를 내서 참석한다. 주변의 말씀을 들어보면 요즘 공동체에는 좋은 분들이 많이 오셔서 잘 이끌어 주신다고 한다. 과거에 비하면 공동체가 상당한 궤도에 올라있다고 할 수 있다. 일하시는 분들이 상당히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그리고 비전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다. 다만 한인끼리는 잘하고 있는데 캐나다 전체 사회 내에서의 역할은 잘 몰라서 못하는 것들이 있다. 해당 분야에 전문역량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 한인사회에는 그런 분들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이제 공동체는 더 전문적 지식을 갖추거나 훈련을 받은 분들의 도움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또한 몇 가지 생각해볼 문제들이 있다. 우선 장애인에 대해 한국사람들과 캐나다인이 가진 인식의 차이이다. 캐나다인들은 우리의 성인장애인공동체와 같은 그룹을 잘 만들지 않는다. 그 사람들은 장애인을 일반사회 안에서 그냥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자 노력한다.

 

 한국은 다르다. 예전부터 장애인들을 따로 모아서 살아가도록 했다. 우리는 또한 이민자의 특수성도 가지고 있다. 아직 우리는 완벽한 캐나다인이 아니다. 장애인도 마찬가지다. 이런 이유로 이민사회 내에서의 또 다른 하위그룹으로서 장애인공동체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캐나다 장애인 정책과 연결고리가 많지 않았다. 현재는 그런 고리를 찾는 작업을 열심히 하고 있다.

 

 그리고 공동체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도 하고 있다. 장애인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성인장애인공동체에서 장애인의 범위를 어디까지 잡아야 하는가 하는 고민이다. 어떤 부분들은 한인노인회가 담당해주면 좋을 것들이 있다. 아직은 우리가 정말 어디에 포커스를 맞춰야 할 것인지 계속 논의 중이다.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기에 ‘장애인은 곁에서 도와주고 서포트만 좀 해주면 된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장애인들의 시각은 다르다. 나는 일하고 싶은 젊은 장애인들이 성인장애인공동체를 통해 자립의 길로 나가기를 바라고 있다. 사고를 당했든 질병이든 장애를 입은 사람 중에는 자신의 생활을 해나가기 위해서 꼭 직업이 필요하다.

 

 한 살 때 소아마비를 겪은 내가 이민 와서 처음 캐나다인 사회에서 일할 곳을 찾을 때 소셜워커나 도움을 주던 사람들이 내게 던졌던 첫 번째 질문이 있다. “당신의 커뮤니티 안에서 일할 곳을 찾아보았는가?”라는 것이다. 내가 한인커뮤니티에 접근했을 때 가장 빨리 직업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한인커뮤니티 안에는 장애인들이 직업을 찾을 수 있는 곳은 정말로 없다. 내가 소망하는 것은 우리 공동체와 한인사회 안에 볼륨이 큰 업체들이 함께 고민해서 특정 분야에 특정 유형의 장애인들을 고용하는 것이다. 공동체 안에 있는 젊은 장애인들이 가장 먼저 손꼽는 서비스가 바로 이것이다.

 

 특히 젊은 나이에 중도장애를 입는 경우 그 삶은 거의 절망 수준이다. 여기서 살다가 교통사고를 당하든 스트로크를 겪든 갑자기 찾아온 장애로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만약 공동체와 한인커뮤니티가 서로 협력하여 장애인 고용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간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그들에게는 새로운 희망이 될 것이다.

 

 누구라도 중도에 장애를 입게 되면 그로 인해 그 사람은 실직하게 된다. 일정기간 재활 끝에 재취업을 하려고 해도 넘기 힘든 장벽이 버티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 장벽을 한인사회가 한 칸은 넘겨줄 수 있다면 좋겠다. 가령 내가 현재 어떤 일을 하는 상황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기는 쉽다. 그러나 처음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항상 처음이 어렵다.

 

 만약 어떤 장애인이 한인커뮤니티 내 기업에서 일하고 있다가 다른 곳으로 옮긴다고 가정해보자. 그쪽에서는 ‘당신은 장애가 있는데 이 일을 할 수 있느냐?’고 물으면 ‘나 지금 이런 곳에서 일하고 있다’고 하면 된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쉬워진다. 그러나 ‘할 수 있느냐?’고 묻는데 ‘나 아직 안 해봤어.’ 하면 ‘어 그래? 그럼, 나도 잘 모르겠다’라고 나오게 된다. 그래서 한인커뮤니티가 그런 관문을 통과시켜줄 수 있는 역할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만약 이런 일이 가능하다면 자기를 내려놓고 공동체에 나올 장애인들이 많이 있다.

 

 사람들은 보통 장애를 입으면 세상 밖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분들의 현실적인 문제는 자립이다. 한국어를 할 줄 아는 한국사람들이 한인사회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정말 감사한 일일 것이다. 물론 지금도 성인 장애인 공동체는 한인사회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한인커뮤니티와 장애인 공동체가 협력하여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커뮤니티는 서로 성장해 갈 것이다. 이것이 내가 바라는 공동체의 비전이다.

 

(본 원고는 구술생애사 작가 김동환님께서 성인장애인공동체 이성민 회원과의 인터뷰를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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