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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환의 생활경제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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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의 미합중국 대통령(22)-자카리 테일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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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이름: Jackary Taylor

출생: 1784년 11월 24일 버지니아주 오랜지 카운티

사망: 1850년 7월 9일 워싱턴 DC

부인: 마가렛 스미스(1788-1852)

특성: 가장 긴 군 복무(43년)로 정치 경험 없이 대통령 당선

대통령 순위 및 임기 연도: 12대 1849년 3월 4일 – 1850년 7월 9일

역대 대통령 평가순위: 32/44

소속정당: 위그당

업적: 멕시코 전쟁 승리

인용구: 의상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

 

성장과 교육(1784-1810)

자카리 테일러는 1784년 11월 24일 버지니아주 오렌지 카운티에서 미 독립 전쟁에 참전한 부친 리처드 테일러 중령과 모친 세라 데브니의 5남매 중 세 번째로 태어났다.

 

 그의 선조는 메이플라워를 타고 이주한 윌리엄 브르스터로 알려졌고, 미 4대 대통령 제임스 메디슨과 남북전쟁 시 남부의 총사령관 라버트 리가 먼 친척으로 포함된다.

 

 자카리가 태어난 해에 부친 리처드 테일러는 더 좋은 기회를 찾아 버지니아주에서 켄터키주 루이빌로 이주하여 26명의 흑인 노예를 거느리는 1만 에이커의 농장주가 되었다.

 

 자카리는 모친의 가정교육으로 읽기와 쓰기를 배웠고 엘리셔 에이어 선생의 초등교육과 미들타운 학교에서 중등교육을 받았다.

 

결혼(1810)

마가렛 멕콜 스미스는 1788년 9월 21일 메리랜드주 켈버트카운티에서 농장부호인 부친 월터 스미스와 모친 앤 멕콜 페기 사이에서 태어나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다.

 

 1809년 켄터키에 거주하는 언니를 방문했다가 휴가 나온 자카리 소위를 소개받고 둘은 곧 열렬한 사랑에 빠져 다음해 1810년 6월 21일 결혼식을 올렸다.

 

 둘은 자녀 6명을 두었는데 둘째 딸 세라 넉스 테일러는 테일러의 부하인 제퍼슨 데이비스와 1835년 결혼식을 올리고 석달 만에 말라리아로 사망하는 비극을 초래하여 자카리와 세라의 슬픔을 자아냈다.

 

 후에 제퍼슨 데이비스는 남북전쟁 시 남부연맹의 대통령이 되었고 막내아들 리처드 딕 테일러는 남군의 장성이 되었다.

 

장교임관(1808-1810)

어렸을 때부터 부친의 군 복무 얘기를 들은 자카리는 군인이 되는 꿈을 키웠다. 1808년 5월 3일 그는 켄터키 7보병단 소속 중위에 임관하여 군인의 길을 걷게 되었다.

 

 1810년 결혼 후 대위로 진급했지만,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사업능력이 탁월한 자카리는 루이빌에 큰 농장을 사들이고 200명 이상의 노예를 부렸다.

 1811년 해리슨 인디에너주지사의 요청으로 자커리는 넉스요새를 인디언 공격으로부터 방어하여 해리슨의 신임을 받게 되었다.

 

1812년 전쟁(1812-1815)

1812년 9월 테일러는 테컴서로부터 해리슨 요새를 방어하여 명성이 알려져 소령으로 임시진급 되었다. 1812년 말 테일러는 홉킨스 준장의 부관으로 일리노이 전투와 티퍼캐누전투에서 전투경험을 계속 쌓아갔다.

 

 1814년 하워드 준장사단에 편입되었다가 하워드 준장의 신병으로 군 지휘를 맡게 된 테일러는 430명의 군을 이끌고 미시시피강 북쪽 크레딧 아일랜드전투에서 원주민 전사들을 격퇴했으나 영국군과 합세한 원주민 공세에 밀려 후퇴하였다.

 

동년 10월 잔슨요새를 구축하였으나 하워드의 사망으로 후퇴명령을 받고 세인트 루이스로 돌아왔다.

 

 1815년 전쟁이 끝나면서 소령 임시진급이 인정되지 않아 대위로 예편했다가 1년 후 정식소령으로 재임관하게 되었다.

 

먼로 대통령의 초청(1819-1825)

 1817년부터 2년간 테일러는 미시간지역의 하워드 요새를 방어하고 루이빌로 돌아왔다.

 1819년 4월 그는 중령으로 진급하게 되었고 잭슨 준장과 함께 먼로 대통령 백악관 만찬에 초청되었다.

 

 1821년 먼로의 신임을 받은 그는 7 보병단을 이끌고 제섭 요새를 구축하였고

 1822년 루이지애나주의 미시시피 강변의 바톤 루지로 전근되었다.

 1824년까지 군 징병 임무를 맡고 먼로의 지시로 시작한 미군 재편성 조직을 1826년에 완성했다. 그리고 바톤 루지에 농장을 사서 새 집으로 이사했다.

 

 대령 진급(1828-1832)

 1828년 5월 테일러는 미시간지역의 스넬릴 요새와 미시시피강 상류의 크로퍼드 요새를 2년간 방어하며 틈틈이 농장을 사들였다.

 

 1832년 4월 대령으로 진급하고 무능한 에킨슨 준장의 지휘로 불리하게 된 미군을 이끌고 블랙 호크 원주민 추장을 제압하여 미 서부개척의 통로를 열어 공을 세웠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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