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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환의 생활경제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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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의 미합중국 대통령(19)-제임스 넉스 포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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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꿈이 큰 꿈으로(1844)

1844년 포크는 대통령이 되기 위한 디딤돌로 부통령직을 원했다. 그는 밴 뷰런 대통령 후보와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민주당 전당대회에 공천을 신청했다.

재출마하는 밴 뷰런은 노예제도를 원하는 남부지역의 인기를 얻지 못했고 정부로부터 토지매매 지불액을 금, 은화로 받아야 한다는 정책을 고수하여 서부개척자들의 인기를 얻지 못했다.

특히 남서부 영토확장은 노예제도를 고수하는 남서부주와 노예폐지를 주장하는 북동주간의 쟁점이 되어 경선후보자 정책에 큰 변수가 되었다. 또한 경선후보자들은 민주당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잭슨의 결정에 따라야 했다.

1844년 5월 13일 포크의 능력을 관찰한 잭슨은 포크를 만나 서남부 영토팽창을 할 수 있는 후보자가 가장 유력한 대통령후보자가 될 것이라고 말하며 포크가 대통령후보 경선자가 되기를 귀띔했다. 의외로 놀란 포크는 밴 뷰런과의 약속을 어길 수 없어 잭슨의 조언을 침묵과 비밀로 지켰다.

경선 직전 잭슨의 영향으로 민주당은 경선후보자가 3분의 2의 지지를 받아야 지명을 받을 수 있게 정관을 변경시켰다.

5월 27일 제1차 경선대회에서 밴 뷰런은 다수 표를 얻었으나 2/3의 지지를 얻지 못해 다음 경선에 들어갔지만 제2차 경선에서 6차까지 2/3 지지를 받은 후보자가 나오지 않았다.

일부 당원들이 포크의 이름을 대통령 후보경선에 올려 제7차 경선을 치르면서 포크의 지지도가 보이기 시작했고, 제8차까지 가면서 포크의 지지도가 올라가면서 밴 뷰런의 지지도는 내려갔다.

5월 30일 제9차 경선에서 포크는 233표를 얻어 압도적으로 민주당 대통령후보가 되었고 조오지 M 달러스가 포크의 러닝 메이트가 되었다. 포크는 잭슨의 영향력으로 미역사상 첫 번째로 부통령이나 국무장관을 거치지 않고 다크 호스로 대선후보가 될 수 있었다.

6월 4일 내쉬빌에서 이 지명소식을 받은 잭슨은 기쁨이 충만했고 벌티모어에서

머무르던 포크는 6월 6일 자신의 대통령 지명 소식을 접했다.

일부 민주당원들은 포크가 밴 뷰런을 배반하는 음모를 꾸미지 않았나 하는 의심을 했지만 포크는 언제나 밴 뷰런의 러닝 메이트로 의리를 지켰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자신보다 국가를 위하는 마음이 강한 포크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낙선된 경쟁자들을 위해 단임으로 대통령직을 끝나내겠다고 공표했다.

참고로 포크와 비교한다면 애국심보다 자기애성으로 정신질환 수준을 넘는

나르시스트 결정체 트럼프는 온갖 거짓말로 범죄를 저지르며 백인우월주의자들이

내란을 일으키도록 부추겼다.

 

1844대선(1844)

포크는 위그당의 헨리 클레이 대통령후보와 치열한 공방전에 들어갔다. 다행히 잭슨의 영향으로 무소속 타일러는 그의 내각이 민주당 재입당을 약속 받는 조건으로 대선후보를 포기하여 포크는 타일러와 표를 가르지 않게 되었다. 반면에 클레이는 뉴욕주를 비롯하여 반노예정책 후보자와 표를 가르게 되었다.

포크는 다음과 같은 선거공약으로 유세에 들어갔다.

첫째 관세를 삭감하고

둘째 영국의 캐나다와 오리곤 지역 영토분쟁을 해결하고

셋째 연방정부로부터 독립적인 미 재무성 재 설립

넷째 텍사스주 영입과 멕시코 공화국으로부터 뉴멕시코 캘리포니아 지역 매입

1844년 11월 12일 선거결과에서 포크는 48.1%의 지지율과 105개의 선거인단 표를 받은 클레이를 누르고 49.5%의 지지율과 170개의 선거인단 표를 받고 11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대통령 취임(1845)

1844년 11월 15일 대통령 당선 소식을 받은 포크는 1845년 1월까지 잭슨의 지지와 지시를 받으며 타일러의 내각을 완전히 경질하고 탕평책으로 각 주의 유능한 정치인들로 내각을 구성하였다. 단지 미래 대통령을 꿈꾸는 정치인들은 배제했다.

1845년 3월 4일 비 내리는 취임식에서 포크는 그의 선거공약을 완수하겠다는 의지를 굳건히 다짐했다. 포크는 49세의 나이로 그 당시 가장 젊은 대통령 취임 기록을 갖게 되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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