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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환의 생활경제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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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의 미합중국 대통령(14)-윌리엄 헨리 해리슨(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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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관저 해리슨 임종

 

퇴역 후 정치생활(1814-1829)

1814년 해리슨은 미 북서부 총사령관 직을 사임하고 오하이오주 노스벤 가족농장으로 귀향했다. 1816년부터 1819년까지 해리슨은 오하이오주를 대표하는 미 하원직을 맡게 되면서 정치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하원직 임기 중 1817년 먼로내각의 국방장관직 후보로 나섰으나 먼로는 잔 캘훈을 선택했다.

 

1819년부터 1821년까지 오하이오주 상원직을 지내며 1820년 오하이오 주지사 선거출마에 낙선된 해리슨은 1824년 오하이오주 대표 미 상원으로 당선되었다.

 

해리슨은 1828년 그랜컬럼비아(Gran Colombia) 주재 미 대사직에 임명되어 미 상원직을 사임했다. 그는 컬럼비아 독재자 볼리바에게 민주주의를 종용하다 볼리바의 항의를 받고 1929년 잭슨 대통령 소환으로 미국으로 돌아왔다

 

1836년 대선출마(1836)

40년간 미 정부를 위한 봉사와 전공을 세운 해리슨은 1829년 야인이 되어 소액의 은퇴자금과 저축으로 농장을 운영하며 많은 식구들을 부양해야 했다.

 

해리슨의 전공을 기억하는 지인들이 그에게 지방법원 서기직을 부여하고 해리슨 차기 대통령선거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이 소식이 필라델피아에 전해지며 수만 명의 지지자들이 방문해 그를 전쟁영웅으로 대우하며 환호를 아끼지 않았다.

 

1835년 위그당의 대통령후보로 지명 받은 해리슨은 밴 뷰런 민주당 후보와 경쟁하며 1836년 대선에 출마했다. 1836년 12월 7일 73개의 선거인단의 지지표를 받은 해리슨은 잭슨의 인기몰이로 170개의 지지표를 받은 밴 뷰런에게 참패를 당했지만 36.6%의 지지율을 받은 해리슨은 50.8%의 지지율을 받은 밴 뷰런과 차기 대통령선거에서 승산 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1840년 대선출마

1839년 최초로 열린 위그당 전당대회에서 핸리 클레이와 윈필드 스캇을 누르고 대통령 후보 지명을 받은 해리슨은 밴 뷰런 민주당 대통령과 경쟁하는 대선에 출마했다.

 

해리슨은 1837년 경제공황이 회복되지 않아 투표자들의 인기를 잃은 밴 뷰런의 실책을 비난하며 미 중앙은행 복구로 경제회복을 약속하는 선거공약을 내세웠다.

 

해리슨은 1840년 12월 2일 지지율 52.9%로 234개의 선거인단 표를 받아 지지율 46.8%로 60개의 선거인단표를 받은 밴 뷰런을 압도적으로 누르고 대선에 당선되었다.

 

미합중국 8대 대통령취임(1841년 3월 4일)

68세의 해리슨은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나이가 많았고 첫 번째로 기차를 타고 워싱턴에 입성한 대통령기록을 세웠다. 1841년 3월 4일 취임식에 내리는 봄비는 살 속을 스며드는 냉기를 뿌리고 있었다.

 

해리슨은 외투도 입지 않고 모자도 쓰지 않고 8,445개의 단어로 구성된 취임서를 두 시간 이상 걸려 읽어 내려갔다. 취임서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경제공황을 해결하기 위한 중앙은행 복구 계획이었다.

 

취임식은 행진과 저녁 연회로 이어졌다. 초청된 1,000명은 1인당 10달러를 냈다.

 

해리슨은 취임식이 끝나고 내각구성으로 고심해야 했다. 그를 밀어준 친지나 위그당원들은 지위 상하 구분 없이 요직을 요구하며 백악관에서 진을 치고 그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유능한 심복을 두지 못한 해리슨은 내각구성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개성이 강하지 못한 해리슨은 심사숙고 할 시간도 없이 내각을 구성했다

 

취임 31일만의 죽음(1841년 4월 4일)

1841년 3월 24일 외투와 모자 없이 차가운 봄비를 맞으며 지역시장을 거닐던 해리슨은 이틀 후 발열을 하고 28일 심한 옆구리 통증을 느꼈다. 밀러 주치의는 감기처방과 폐렴처방으로 피를 뽑았다.

 

통증은 점점 심해지고 4월 3일 심한 설사로 혼비백산한 해리슨은 밀러 주치의를 잔 타일러 부통령으로 착각하고 대통령임무를 부탁한 후 4월 4일 0시 30분에 눈을 감았다.

 

폐렴이 사망원인으로 기록되었지만 일부 역사학자들은 장질부사나 콜레라의 합병증으로 인한 사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당시 워싱턴은 하수도 시설이 건설되지 않아 백악관 오물은 700 미터 정도 떨어진 오물 처리장에서 수거했고 오물로 덮인 늪지대는 항상 전염병 균이 창궐하였다.

 

 워싱턴 정부는 타일러에게 대통령 대행직무를 맡기고 30일간 애도를 하고 해리슨 시신은 오하이오주 노스벤드 해리슨 기념지에 안장되었다. 해리슨은 미 대통령 중 31일 최단기의 임기를 마치고 최초로 백악관에서 운명했다.

 

최고령(65세)의 나이로 영부인이 된 애너 심스는 이사 준비하느라 백악관 입성도 못하고 남편의 장례를 치렀다. 미 상원은 심스 해리슨 미망인에게 25,000 달러의 연금을 승인했다.

 

악연의 저주?

건강했던 해리슨이 1840년 대선에 당선되어 1841년 급사한 이후 매 20년마다 해리슨을 포함하여 당선된 미 대통령 7명이 임기 중 사망했다.

1860년 당선된 에이브러햄 링컨 1865년 암살

1880년 제임스 가필드 1881년 암살

1900년 윌리엄 1901년 암살

1920년 워렌 하딩 1923년 중풍으로 사망

1940년 프렝클린 루즈벨트 1945년 중풍으로 사망

1960년 잔 F 케네디 1963년 암살

1980년 로널드 레이건 1981년 암살미수, 1985년 임기 중 치매시작

2000년 조오지 W 부시 생존, 이라크 전쟁으로 미군 4,431명 전사

2020년 당선 조 바이든

마튼 캘리 미 역사학자는 2020년 위의 역사적 사실을 조상의 땅을 뺏기고 전사한 테컴서 원한에 의한 저주라고 기술하여 독자들의 시선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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