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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환의 생활경제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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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의 미합중국 대통령(7)-앤드류 잭슨(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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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방법 무효화 운동 저지(1832)


 1828년 잔 쿠인지에 의해 통과된 관세법은 남부 목화농장주들에게 경제적인 타격을 초래하였다.
 

 1832년 7월 높은 관세로 남부의 원성이 높아지자 잭슨은 관세법 통과로 이득을 보는 북부 생산공장주들과 합의하여 관세를 45%에서 27%로 내렸다. 그러나 11월 캐롤라이나주는 연방관세법을 용납할 수 없다고 반기를 들었다.

 

 이에 맞서 잭슨은 미 해군을 찰스턴 항구에 정박하게 하고 연방법 무효와 연방탈퇴 운동권자들을 교수형에 처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12월 말 잔 캘훈은 임기만료 3달을 남기고 부통령직을 사임하고 캐롤라이나주를 대표하는 상원직을 맡았다. 잭슨은 반대하는 주에 연방군사력을 동원하는 법을 상정했다.

 

 1833년 3월 2일 캘훈은 클레이와 함께 잭슨과 관세를 재조정하여 1842년까지 20%로 내리는 합의점을 찾고, 잭슨은 주에 연방군사력을 동원할 수 있는 법을 통과시켰다.

 

 이를 관망한 에이브러햄 링컨 상원의원은 후에 연방군을 동원하여 흑인노예 해방운동을 할 수 있었다.

 

 미 연방은행 폐지와 재선(1832)


 1832년 7월 니콜라스 비들 미국 연방은행 총재는 1816년 매디슨 재임시 설립한 제2 미 연방은행의 연장 법안을 상원에 상정하여 통과시켰으나 잭슨의 거부권으로 무산되어 1832년 대선의 쟁점이 되었다. 비들은 자금을 풀어 연장을 주장하는 클레이를 지원하였다.

 

 이에 맞서 잭슨은 연방은행은 극소수의 부호들을 위한 도구라는 유세를 통해 중하층의 표를 공략하였다. 12월 5일 대선 결과에서 잭슨은 219표의 선거인단 표를 얻어 54%의 지지율로 클레이 후보를 가볍게 밀어냈다.

 

 1833년 잭슨은 미 연방은행에서 연방정부의 보증금을 유출하여 주 은행계좌에 예치하기 시작했다. 1835년 1월 1일 잭슨은 경기호황으로 올린 세입과 유출 금액으로 국채를 완전 탕감할 수 있었다.

 

 1835년 1월 30일 의사당 밖에서 잭슨은 리처드 로렌스의 암살 총격에서 무사했다. 연방은행의 폐지로 시중에 돈이 돌지 않아 실업자가 되어 암살 시도를 했다고 로렌스는 진술했다.

 

 1836년 경기 호황은 부동산 투기를 초래했고 땅값이 오르자 잭슨은 연방소유의 토지구입은 금화나 은화로 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이로 인해 주 은행들은 금화나 은화를 찾는 예금주들의 뱅크 런으로 문을 닫아야 했고, 미 역사상 1929년 세계공황 다음 가는 1837년 경제공황을 초래했다.

 

 백악관 내조


 잭슨은 원주민 양자 2명과 조카를 양자로 삼고 8명의 보호자 역할을 했다. 잭슨은 백악관 입성하기 전 부인을 잃은 후 재혼을 하지 않고 부인의 조카인 에밀리 도날슨과 세라 요크 잭슨에게 백악관 영접을 맡겼다.

 

 은퇴와 사망(1837-1845)


 1837년 은퇴한 잭슨은 고향으로 돌아와 허미티지 농장관리를 맡았다. 가슴에 박힌 총알 합병증으로 몸이 쇠약해졌으나 1837년 경제공황의 책임을 묻는 국민들로 지지율이 떨어지면서도 미국의 정계는 그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대통령 재임시 미시간주와 알캔서스주를 영입했으나 텍사스를 주에 영입하지 못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1845년 6월 8일 쇠약하여 침대에 누운 잭슨은 슬픔의 눈물을 흘리는 친척 친지들에게 “나 때문에 우느냐, 울지 말고 착하게 살아 후에 천국에서 만나자“라는 마지막 유언을 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의 시신은 허미티지 가족묘지에 누운 부인 레이철 옆에 안장되었다.

 

 트럼프는 21세기의 잭슨이 될 수 없다
 

 역사학자들은 잭슨을 논란이 많은 대통령으로 대우하고 있다. 원주민을 축출하고 흑인 노예해방을 반대하고 연방은행을 폐지한 잭슨의 초상화를 세계공황 직전인 1928년 이후 20달러 지폐 앞면에 올린 것이 가장 큰 논란이었다.

 

 현재 조폐공사는 노예출신 여성 헤리엣 터브맨(1822-1913) 노예해방운동가의 초상화를 20달러 지폐 앞면에 올리고 잭슨을 뒷면에 보낼 계획이다.

 

 트럼프가 잭슨의 허미티지 묘지를 방문한 후 스티브 베넌으로 하여금 잭슨의 초상화를 트럼프 집무실 벽에 걸게 한 것으로 짐작하는 많은 언론인들과 역사학자들이 ‘트럼프는 21세기의 잭슨이 될 수 없다’고 한결같이 강조하는 이유 중 하나가 두 사람의 공격적인 성격은 비슷할 수 있어도 잭슨은 국가와 국민을 위했던 반면 트럼프는 자신을 위해서 기본이 다르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민주적으로 치러진 2020년 선거 결과를 부정하고 2021년 1월 6일 미 의회를 점령하라는 암시 내지 실행을 요구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 사실을 알면서도 공화당 의원들은 트럼프의 독선을 따랐다. 즉 미국식 민주주의가 공화당의원들에 의해 퇴행하는 것을 목격했다.

 

 미국이 잭슨과 트럼프를 부정하지 못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를 백인들의 생존의식에서 찾을 수 있다. 백인들은 17세기 이후 북미주에 정착하여 원주민을 축출하고 흑인노예를 부리며 주인노릇을 하고 있었다. 더 잘살기 위한 경제성장을 유지하기 위해 이민자들을 받아야 하는데 백인들보다 유색인들의 숫자가 많아지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언젠가 백인들이 소수민족으로 전락하면 그들은 원주민이 축출당했듯이 조상이 착취한 땅을 유색인들에게 넘겨주어 권력 및 소유 의식을 잃게 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이 약점을 이용하여 자신만을 위한 거짓선동으로 미 서부와 남부의 저교육 저소득층 백인들의 지지표를 얻었다. 이 지역에서는 트럼프를 따라가야만  정치생명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극소수를 제외한 공화당의원들은 트럼프를 지지하든지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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