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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환의 생활경제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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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캐나다 침략(18)-1812년 전쟁 전후(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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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이리호수 전투(1813년 9월10일)

1812년 전쟁에 영국 총사령관 직을 부탁 받은 웰링턴(본명: 아써 웰슬리) 장군은 영국과 자신에게는 나폴레온 전쟁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1812년 미영전쟁의 승리에는 5대호수의 영역장악이 필수적이라고 조언을 했다.

전쟁 초에는 영 해군이 5대 호수를 장악하면서 주로 군대 및 군수물자를 수송하는 방편으로 함대가 사용 되었지만 미국이 포격성능이 좋은 전투함을 만들어 수송을 맡는 영군함을 공격하면서 전투를 위한 함대로 양상이 바꾸어 지며 해전이 본격화 되었다.

1813년 9월 10일 오전 7시 잔 바클레이 영 함대사령관은 이리호수의 남쪽에 위치한 오하이오주 푸트-인만을 봉쇄할 목적으로 6척의 영 전투함대를 이끌고 연안을 접근하고 있었다.

이를 목격한 얼리버 페리 미 함대사령관은 9척의 미 전투함대로 푸트-인만을 빠져 나와 반도 북쪽의 영 전투함을 향해 접근했다. 11시45분에 바클레이가 승선한 디트로이트 함이 장거리 함포를 시작했다.

12시45분 페리는 화력이 좋은 단거리포를 탑재한 두 척의 미 함대를 영 함대에 접근시켜 포격을 가했으나 포탄부화로 큰 타격을 주지 못하고 사정거리가 멀어지며 그가 탑승한 로렌스함이 포격을 맞고 승무원 5분의 4가 산화되었다.

그는 로렌스함을 버리고 구조선을 타고 노를 저어갔다. 오후 3시 미 함대와 혼전을 벌이던 영국의 대형 함 디트로이트와 쿠인 샬레트가 원치 않은 아군 충돌사고를 일으켜 많은 인명피해와 탑재한 함포가 파괴되어 대형함 두 척은 불능이 되어버렸고, 미 함대에 포위되어 포격을 받게되자 바클레이는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전투로 영군은 41명이 사망했고 306명이 부상당했다. 1809년 전투에서 왼팔을 잃은 바클레이는 이 전투로 다리 한쪽을 잃고 바른팔이 마비되는 참극을 당했다. 반면 미군은 27명이 죽고 96명이 부상을 당했으나 이 전투승리로 미국은 5대호를 장악하는 쾌거를 올렸다.

 

테임스 전투(1813년 10월5일)

이리호수 전투승리로 디트로이트를 장악했던 영군은 호수를 통한 보급이 차단되어 캐나다로 후퇴를 해야 했다. 9월 26일 디트로이트를 탈환한 해리슨은 후퇴하는 영군을 추격했다.

프락터 영 사령관은 영군 800명과 테컴서의 샤니족 전사 500명을 이끌고 벌링턴 고지로 후퇴하는 중 온타리오 런던 서남쪽으로 80 KM 떨어진 챠탐 근처의 테임스강에서 해리슨이 이끄는 4,500명의 미 추적군대와 대적하게 되었다.

영군은 사기저하로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고 원주민은 침묵과 사생결단으로 임전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10월 5일 새벽 프락터는 아침식사를 하는 영군을 5 KM 후퇴시킨 후 전투태세를 갖추게 하였다.

이를 관찰한 해리슨은 제임스 잔슨이 이끄는 켄터키 기마병 1,000명을 돌진하게 하였다. 용감한 원주민 전사들의 총격으로 기마병 15명이 쓰러지고 전투가 치열해지자 프락터는 미군 250명과 함께 줄행랑을 치고 나머지는 총을 버리고 항복하였다.

영군의 도움 없이 숫자로 원주민 전사의 9배 되는 미군과 대적해야 되는 테컴서와 원주민 전사들은 목숨을 걸고 용감하게 싸웠다. 그러나 애처롭게도 혜성처럼 날렵하게 미군 사이를 휩쓸던 테컴서가 숲에서 포위한 미군의 총격을 맞고 쓰러졌다.

테컴서의 나이 45세. 추장을 잃은 원주민 전사들은 비통에 빠져 전투력을 상실하고 전투는 해리슨의 승리로 끝났다.

역사학자들은 테컴서의 시신행방과 테컴서에게 총격을 가한 인물을 확인 못하고 있다. 이 전투로 영군 50명과 원주민 30명의 사상자를 내었고, 영군 600명이 포로가 되었다. 테컴서의 맹렬한 전투로 미군은 약 370명의 사상자를 내었다.

 

악연

해리슨과 테컴서는 둘 중 하나가 죽어야 하는 운명이었다. 영토를 지키려는 원주민 제거에 앞장선 해리슨의 끈질긴 전투의지로 조상이 내려준 땅과 풍습을 지키려는 테컴서의 꿈은 사라지고 말았다.

테컴서가 장렬하게 전사한지 28년이 지난 1841년 3월4일 해리슨은 9대 미 대통령에 당선되어 취임선언식을 끝내고 급성폐렴으로 4월 4일 세상을 떠났다. 취임 후 31일만에 사망한 가장 짧은 임기를 마친 미 대통령으로 기록되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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