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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환의 생활경제칼럼
유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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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환의 돈 이야기(59)-미합중국의 건국 국부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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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오지 워싱턴(2)

 

 

(지난 806호에 이어)
주몬빌을 비롯한 프랑스사절단을 암살한 영국 식민지 워싱턴 민병대가 프랑스군대에게 항복하고 목숨만을 구하고 돌아간 사실이 유럽제국에 알려져 영국은 프랑스를 비롯한 적대국들에게 조롱감이 되었다. 


고향으로 돌아온 워싱턴은 재혼한 형수의 딸 사망으로 인해 유산으로 남긴 농장을 임대받아 마운트 버논 농장 일을 계속하였다. 


1755년 2월 영국은 프랑스군에 패배하여 빼았긴 오하이오 강 협곡 땅을 되찾기 위해 브래독 중장이 이끄는 영국 정기군을 파병하였다. 브래독은 지역의 지형을 잘 알고 그나마 22세의 젊은 나이에 전투경험이 있는 워싱턴을 계급 없는 부관으로 삼으려 하였다. 


처음에는 대령계급을 요청했다가 비웃음의 거절을 받았지만 콧대 높은 영국사령관에게 영국 전략을 배우기 위해 부관의 임무를 수행하기로 했다. 브래독은 유럽 재래식 전법을 응용하여 숲이 지고 협곡이 험악한 미 서부지역을 공병대를 이용하여 길을 닦으며 진군하였다. 


워싱턴은 나무 뒤나 바위에 숨는 인디언의 저격적인 기습작전에 준비해야 된다고 조언을 했다. 프랭클린도 워싱턴의 경험을 존중해라 했지만 브래독은 대영제국의 정예군과 오합지졸의 식민지 민병대와는 다르다고 고집을 부리며 포를 비롯한 중장비 운반을 계속하였다. 


하루에 고작 2마일의 행군은 험한 계곡에 봉착하여 말과 군인들이 지쳐 죽어 넘어가자 브래독은 워싱턴의 조언대로 3천명 중 800백 명을 선두로 보냈다. 6월이 되면서 워싱턴은 이질에 걸려 브래독을 돕지 못하고 후미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7월에 겨우 비틀거리며 회복이 되어 브래독을 도와 주었다. 7월 9일 1400명의 선두군대가 모노가엘라 강을 세 편대로 나누어 도강을 하였다. 워싱턴은 브래독이 이끄는 편대에서 진군하게 되었다. 


그러나 난데없이 나타난 인디언들의 공격으로 놀랜 영국군은 신출귀몰하는 인디언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워싱턴은 각개전투만이 승리를 할 수 있다고 조언하고 민병들은 워싱턴의 지휘아래 용감하게 싸웠지만 영국군들은 도망을 하거나 서로를 인식 못하여 총격을 가하기도 하여 영국군 약2천명이 사살되고 부상을 입었다. 


총격을 받은 브래독이 쓰러지자 워싱턴만 남아서 그를 끌고 마차에 실었다. 브래독의 명령으로 전령이 된 워싱턴은 12시간 말을 타고 임무를 완성하면서 타던 말 두 마리가 총에 맞아 쓰러지고 모자와 외투에 4개의 총알이 지나간 흔적이 나타나 후에 워싱턴은 불사조 영웅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브래독은 죽음을 맞이하며 23세 된 워싱턴의 책임완수와 용맹성을 세계에 알렸다. 영국이 대패한 후 프랑스와 영국은 전장을 유럽 및 아시아로 옮기면서 1756년부터 1763년까지 7년 전쟁의 역사를 만들었다. 


워싱턴은 자신의 오판으로 영불간에 전쟁을 일으켰다. 7년전쟁에 승리한 영국은 북미주 프랑스를 오하이오 벨리에서 북쪽으로 몰아냈지만 전비로 탕감된 국채를 갚기 위해 미국에 부당한 관세부과로 독립전쟁을 야기하였고, 워싱턴은 총 지휘관이 되어 프랭클린의 외교와 라파이옛트를 포함한 건국국부들의 애국심과 단결심으로 미국을 독립시켰다. 1755년 워싱턴은 대령으로 진급하여 버지니아주 군 총사령관이 되었다.

 

부호 농장주


1757년 워싱턴은 약 200에이커의 땅을 구입하고 로렌스 형의 유산인 농가를 호화주택으로 개조 하였다. 부호 커티스가의 과부가 된 말싸 커티스를 1757년 3월 아내로 맡기 위해 구애를 시작하여 결혼을 하게 되었다. 


말싸는 아들 존과 딸 팻시를 갖고 있었다. 말싸와 결혼으로 워싱턴은 말싸가 받은 커티스가 유산의 3분의1을 갖게 되었고 의부자녀들의 나머지 유산 재산관리인이 되었다. 


워싱턴이 소유하게 된 유산은 수천 에이커의 토지와 노예300여명이 포함되었다. 워싱턴은 형수의 유산과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의붓딸 펫시의 유산 등을 합쳐 약 7천6백 에이커와 약 5백명의 노예를 포함한 농장 외에 임대료 받는 토지 약 5만 에이커를 소유하여 2008년 세계100대 부호 중에 90번째 부호 순위에 올라 현재가치 2백억 달러 이상의 소유자로 미 역대 대통령 중 최대의 재산가로 알려졌다. 


워싱턴은 상류사회인들과 사교를 위해 호화스러운 파티를 즐겨 항상 돈이 딸려 빚을 지고 땅 일부를 팔던지 빚을 늦게 갚아 심한 인플레로 가치가 떨어진 원금을 갚았다.

 
담배농장의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목화, 밀 등 다른 농산품과 과일재배를 했지만 소비하는 만큼 큰 수입을 만들지 못했다. 그는 자신과 말싸의 사망 전까지는 소유한 노예를 해방시키지 말라는 유서를 남겼다. 노예를 엄격히 다루고 노예매매시 노예가족이 흩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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