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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환의 생활경제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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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환의 돈 이야기(51)-미합중국의 건국 국부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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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예트 소장

 

 

 

My Heart has always been truly convinced that in serving the Cause of America, I am fighting for the Interests of France. (Marquis de Lafayette)

 

1777~1779년    


6월 13일 프랑스의 청년장군 라파예트 소장(1757-1834 )은 미국의 독립전쟁에 가담하여 프랑스의 숙적 영국을 패배시키는 큰 꿈을 갖고 자비를 들여 사우스 케럴라이너의 조오지타운에 입항했다. 곧 벤자민 휴거 미 연합국 소장을 만나 무보수로 용병을 자원하여 필라델피아로 향했다. 


벤자민 프랭클린 프랑스 특사의 친서를 받은 미 연합상원은 라파예트를 미 연합국 소장으로 임명해 주고, 8월 5일 워싱턴총사령관 휘하에 소개시켰다. 미 연합국 민병의 사열을 받은 라파예트는 군복도 못 입고 조촐해 보이는 민병의 처지에 당혹감을 숨기는 워싱턴을 보고 그로부터 전략을 배우러 왔다고 겸손한 태도를 보여 즉흥적으로 워싱턴과 부자지간 같은 친분을 맺게 되었다. 


라파예트는 루이 16세 황제의 신임을 받은 애국자로 프랑스가 미 독립군을 재정적 원조와 무기공급을 계속하게 하였다. 그는 워싱턴을 따라 9월 11일 브랜디 와인 전투에 참여했다가 다리에 총상을 받고 후퇴했다. 


그 후 1779년 1월 유럽과 다른 지역에서 영국과 전투를 벌이는 프랑스군에 참가하기 위해 본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글라스터 전투(11월 25일), 벨리 포지 전투(12월 19일), 바렌 힐 전투(1778년 5월 20 일)에 이어 몬머스 전투(6월28일), 로드 아일랜드 전투(8월 29일)에 워싱턴과 합동작전 또는 단독지휘로 영국군과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다. 


1778년 2월 6일 프랑스 귀족들과 특히 그를 좋아하는 귀족부인들의 마음을 사로 잡고 호화스런 파티를 즐기던 벤자민 프랭클린은 사라토가 전승의 소식을 전해 받은 루이16세와의 회담에서 미 연합국의 독립을 인정받고 두 나라 동맹국 조약에 서명하여 프랑스는 미국과 지정학적인 군사동맹을 맺었다. 


프랑스는 7년 전쟁 이후 미대륙에서 영국에 의해 물러난 상태이기 때문에 기회를 엿보며 소리 없이 미국에 군사원조를 아끼지 않았었다. 또한 양국은 무역조약을 맺어 상업을 활성화하며 프랑스 해군력 증강으로 미국을 보호하게 하였다. 이를 계기로 미 상원은 1779년 존 제이를 스페인 대사로 1780년 존 아담스를 홀랜드 대사로 파견하여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었다. 


1780년 


5월 10일 두 번째로 미국독립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보스턴에 도착한 라파예트는 미 식민지 개척자들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 미국을 떠나 프랑스군에 가담하여 영국과 전쟁을 하던 라파예트는 1년 4개월 만에 미국땅을 다시 밟게 되었다. 그는 영국군에 계속 밀리는 워싱턴 미 연합군대를 위해 계속 루이16세의 지원을 요청하고 필라델피아에서 겨울을 나며 프랑스군을 기다렸다. 


1781년

 
1월 17일 케럴라이나 코펜스 전투에 데니엘 모간 미 준장이 영국군을 섬멸하여 남부지역이 영국군의 지배하에서 벗어나자 워싱턴은 라파예트로 하여금 군을 재편성하여 버지니아의 바론 본 스튜벤( 1730-1794 )소장과 합류하여 반역자 베네딕트 아놀드가 이끄는 영국군을 공격하게 하였다. 


스튜벤은 프레데릭 대제 휘하에 프러시아 장교로 활약하다가 파리에서 프랭클린의 친서를 갖고 워싱턴에게 소개되어 1777년 미국으로 건너와 1778년부터 5년간 워싱턴 군대의 군사훈련을 맡아 워싱턴의 민병은 미 연합국의 정규군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아놀드를 잡지 못하고 라파예트와 스튜벤의 미 연합군은 버지니아의 요크타운에 집결하였다. 라파예트는 프랑스 대사관을 통해 서면으로 루이 16세에게 프랑스의 대대적인 파병을 요구했다. 


7월 6일 그린 스프링 전투에서 제임스강을 넘으려는 영국의 후미를 공격하던 라파예트는 강력한 영국군 수비에 밀려 퇴각했지만 콘월리스가 반격을 중단하고 요크타운에 보루를 쌓느라 바쁜 틈에 라파예트는 프랑스군과 미 연합군이 집결하는 시간을 얻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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