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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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생애(3)-민족해방의 사명을 부여 받는 모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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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가 그의 장인 미다안 제사장 이드로의 떼를 치더니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호렙에 이르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모세가 이르되내가 돌이켜 가서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때에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곳은 거룩한 땅이니 발에서 신을 벗으라.’.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로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 3:1-10)

 

모세가 미디안 광야로 간 것은 바로가 살인혐의로 그를 체포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모세가 애굽 왕실을 떠나 그리로 가게 된 것은 “왕실대학”이란 일반대학을 마치고 “광야대학”이란 신학교에 입학한 것이었다.

너무 비약적인 생각인지는 몰라도 오늘날 신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대학에서 학사 또는 석사과정을 마치고 신학대학원(Seminary)에 진학하는 것은 모세가 받은 훈련과정을 따르는 것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어쨌든 대학과정을 마치지 못하고, 심한 경우에는 고둥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학생들을 모두 받아들여 단기간 성경을 가르친 후 목사안수를 주는 신학교가 생겨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그런 신학교에서 공부다운 공부도 못한 무자격 목회자들이 대량으로 배출되는 것은 오늘날 교회가 시대적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세가 도피처로 찾아간 미디안은 시내산이 있는 시내 반도의 광야로서 그 곳에는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의 후손들이 목축업을 하며 정착해 있었다. 모세가 도망자의 신세가 되어 험하고 먼 광야를 가로질러 미디안 광야의 어느 우물가에서 피곤한 몸을 쉬고 있을 때 한 떼의 여인들이 양들을 몰고 왔다.

그때 한 무리의 목자들이 들이닥쳐 우격다짐으로 그 여인들을 밀어내고 자기네 양들에게 먼저 물을 먹이려고 했다. 이를 보고 의협심이 발동한 모세는 그들을 쫓아버리고 여인들의 양들이 물을 먹도록 해주었다.

모세의 도움을 받은 여인들은 미디안 제사장 루우엘의 딸들이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모세는 그들의 집에 머무르게 되었고, 그들 중의 하나인 십보라를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다.

이제 모세는 미다안 광야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할 준비를 갖추게 된 것이다. 장인 제사장인 이드로의 도움과 아내 십보라의 위로와 격려를 받으며 광야대학의 수련을 받을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바로의 통치권이 미치지 못하는 미디안에서 가정을 이루어 살면서 모세는 애굽 왕실에서의 안락하고 호화스러웠던 생활을 잊어버리고 양을 치는 광야생활에서 만족과 행복을 맛보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미디안을 고향으로 삼아 평생을 거기서 양치기로 살아갈 생각은 없었다. 비록 장인의 자상하고 사료 깊은 배려와 아내의 헌신적이 사랑을 받으며 단조로운 광야생활에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그 곳은 어디까지나 타향이요, 그가 영원히 거할 곳이 아닌 것을 모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모세의 마음은 첫 아들의 이름을 “타국에서 손님이 되었다.”란 의미인 “게르솜”이라 지은 사실에 잘 나타나 있다.

미디안 광야에 사는 사람들의 주업은 목축업이었다. 때문에 모세가 거기서 장인 이드로의 양을 친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모세가 양을 친 데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양치기가 된 것은 광야대학에서 그를 지도하신 하나님께서 신입생 모세에게 맡긴 과제였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목자시오, 우리 모두는 그의 인도와 보호를 받는 하나님의 양들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면 이 사실은 더욱 명백해진다. 아버지 이새의 양 떼를 돌보던 소년 다윗이 하나님에 의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고(시 78:70-72), 양을 치던 아모스가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는 사실은(암 7:14-15)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상징하는 양들을 돌보게 함으로 그가 사용할 일꾼들을 훈련시켰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미디안 광야의 목자 모세는 양을 치면서 양들이 무엇을 원하는 가를 알기 위해서 그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애굽 왕실에서는 사람들을 지휘하고 감독하며 명령하는 데 익숙했었지만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 들을 줄도 몰랐고, 들을 필요도 없었다.

공주의 아들 모세의 명에 불복하는 이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일은 힘이나 권력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온유와 겸손과 사랑으로 행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양을 치면서 그 같은 품성을 기르도록 하신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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