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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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편지-사랑과 충성으로 주를 섬긴 빌라델비아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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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말을 지키며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사탄의 회당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이기는 자는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 3: 7-13)

 

빌라델비아 교회에 보낸 예수님의 편지에서는 책망하는 말씀을 찾아볼 수 없다. 에베소 교회, 서머나 교회, 버가모 교회, 두아디라 교회를 향해서는 칭찬과 책망을 함께 하셨고, 사데 교회에게는 그들의 죽은 상태를 꾸짖으시며 깨어 일어나 새롭게 시작하라고 경고하신 예수님이시다.

 

그러나 빌라델비아 교회에게는 칭찬만 하셨다. 이는 그 교회가 흠 잡을 데 없이 완전해서가 아니었다. 세상에 완전한 교회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부족한 교회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 땅 위에 이루어드리며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께서 그의 몸 된 교회들을 보호하시며 인도해 주시기 때문이다.

 

빌라델비아 교회에 편지를 쓰시면서 예수님은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문을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이”가 그 자신이라고 밝히신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세 번이나 되풀이 했으며(사 6:3), 하나님께서도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이름”(사 43:15)이라고 그의 거룩하심을 강조하고 계시다.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거룩하시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진실하다. 예수님 자신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 14:6)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거룩하고 진실하신 예수님이 다윗의 열쇠를 가지셨다는 것은 그가 모든 문제의 최종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계심을 의미한다. 최후의 결정자이신 예수께서 연 문을 닫을 자가 없고, 그가 닫은 문을 열 사람이 없음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예수님이 빌라델비아 교회의 문을 열어주신 것은 그 교회로 하여금 많은 주의 일을 할 기회의 문을 열어놓으셨다는 말씀이시다. 예수님은 그 교회가 선교사역에 힘쓰기를 원하셨다. 빌라델비아는 아시아의 여러 주요 도시들로 통하는 지점에 위치해 있었기에 로마 군대와 각국의 상인들이 거기를 통과해야 했다. 그러기에 빌라델비아 교인들은 먼 곳으로 나가지 않고도 그곳을 지나는 군인과 여행자 또는 상인들에게 복음을 증거 할 수 있었다. 예수께서 빌리델비아 교회에 선교를 위한 문을 활짝 열어주신 까닭이 거기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다른 지방이나 나라로 나가서 말씀을 전하는 것만이 선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누구나 있는 그곳에서 주위에 주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그것이 선교인 것이다. 그 점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캐나다처럼 좋은 선교지는 없다. 세계 각처에서 여러 다른 인종들이 모여들어 복합문화를 이루고 있는 나라가 캐나다인 까닭이다.

 

예수님이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라 하신 것은 믿는 자라면 누구나 예수님에게서 받아야 할 칭찬이다. 작은 능력을 가지고 주의 일에 자신을 바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인생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사르밧 과부는 밀가루 한 움큼과 약간의 기름으로 엘리야에게 빵을 만들어 대접함으로 3년 반 동안 계속된 가뭄을 이겨낼 수 있었으며(왕상 17:8-16), 소년 목동 다윗은 시냇가에서 주운 조약돌 다섯 개로 천하무적 골리앗을 죽이고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구해낼 수 있었다.(삼상 17:41-49)

 

한 어린이가 가졌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어나게 했다(요 6:1-15). 이 같은 사실들과 더불어 받은 달란트를 최대로 활용하면 누구나 하나님의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될 수 있다는 예수님의 달란트 비유를 상기하면 어째서 예수님이 작은 것을 가지고 그의 이름을 지킨 빌라델비아 교회를 칭찬하셨는가를 알 수 있다.

 

예수님은 빌라델비아 교회를 칭찬하며 격려하셨지만 유대인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들만이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자처하면서도 서머나 교회를 핍박하였던 것처럼 빌라델비아도 괴롭히며 박해했다. 예수님은 그의 교회를 대적하는 유대인들을 그들 앞에 무릎 꿇게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악의 세력에 포위되어 악전고투하는 성도들에게 크나큰 용기와 힘을 주는 위로와 격려의 말씀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가 주로 인해 당하는 모든 고통을 예수님은 다 알고 계시며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롬 12:19)는 말씀대로 악한 무리들을 친히 처벌해 주시겠다는 약속이었기 때문이다.

 

성경 속의 수많은 믿음의 용장들이 이 약속 위에 굳건히 서서 세상을 이기는 인내와 용기를 발휘했다. 그 대표적인 인물 중의 하나가 다윗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 23:5)란 그의 기도가 이 사실을 명확하게 말해 준다.

 

예수님이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라.”하신 칭찬과 약속의 말씀은 세상 모든 교회들에게 주시는 것이기도 하다. 그들이 지킨 예수님의 인내의 말씀은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눅 9:23)라 하신 예수님의 명에 따라 영광의 그날까지 주께서 당하신 고통과 고난에 동참하는 인내심을 발휘함을 의미한다.

 

사도 바울이 그를 위해 마련된 의의 면류관을 향하여 실족하지 않고 달려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당하는 현재의 고통이 그가 누릴 장래의 영광과 비교할 수 없는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롬 8:18)

 

누구든지 사도 바울과 같은 빛나는 승리자가 되려면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눅 21:19)와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한 것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히 10:36) 하신 성경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인생의 경주에 임해야 할 것이다.

 

그의 인내의 말씀을 지키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해주시겠다는 말씀은 받은 달란트가 얼마든 그것을 두 배로 늘리며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성도들은 어떤 환란과 핍박 속에서도 보호해 주시겠다는 약속이시다. 이 같은 예수님의 언약을 믿을 때 우리는 어떤 난관이 닥쳐와도 헤쳐나갈 수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신 또 하나의 약속인 “내가 속히 오겠다.”는 신약성경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다. 그 말씀들은 예수께서 언제 다시 오시더라도 맞이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고 있으라는 경고다. 그러나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해 “곧 오겠다.”하신 것은 그런 경고가 아니었다. 그가 곧 올 것이니 어렵고 힘들더라도 주저앉지 말고 주의 일에 매진함으로 생명의 면류관을 빼앗기지 말라는 격려와 권면의 말씀이었기 때문이다.

 

에서는 야곱에게 장자권을 빼앗겼고(창 25:34; 27:36), 르우벤의 장자권도 유다에게 넘겨졌고(창 49:4,8), 사울의 왕권은 다윗에게 넘겨졌다(삼상 16:1, 3). 그들에게 주어진 권리들을 소홀히 여겨 힘써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주어진 작은 능력에 감사하며 그것으로 주께 충성하는 빌라델비아 교회에 그런 슬픈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그가 오실 때까지 깨어있어 승리의 면류관을 잃어버리지 말라는 사랑의 권면을 하신 것이다.

 

다른 교회들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예수님은 빌라델비아 교회에게도 이기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고, 그 위에 새 예루살렘과 그의 이름을 기록해 주겠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착하고 충성된 종의 자격으로 그에게 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생의 축복을 주시겠다는 약속이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으로 삼으시겠다고 하신 데는 특별한 까닭이 있었다. 빌라델비아는 여러 차례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었던 도시였다. 그런데 지진 후에 보니 남아있는 건물들은 그 기둥들이 굵고 튼튼했다.

 

예수님이 충성스러운 성도들을 하나님의 성전 기둥으로 삼겠다고 하신 것은 그들을 영원히 그의 충성된 종으로 인정하여 그의 곁에 있도록 하겠다는 언약이었다. 그 기둥 위에 “새 예루살렘과 그의 새 이름을 기록하겠다.”란 말씀은 “너희는 내게 속한 자들”이란 영광까지 안겨주겠다고 말씀해 주신 것이었다.

 

비록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빌라델비아 교회는 주인 되신 예수님의 칭찬을 받으며 하늘나라에 서는 영광까지 약속 받는 자랑스러운 교회였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그처럼 귀한 교회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성도들의 마음속에 예수님이 자리 잡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우리들도 그네들처럼 예수님을 마음속 깊이 모시고, 그의 뜻에 순종하며, 그가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신 찬란한 낙원을 향하여 전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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