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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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편지-생명력을 잃어버린 사데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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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아있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어 남은바 죽게 것을 굳건하게 하라. 하나님 앞에 행위의 온전한 것을 보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그러나 사데에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명이 네게 있어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이름을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있는 자는 성경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3:1-6)

 

살아있는 교회는 세상의 기쁨이며 소망이다. 그 교회로 인해 죽어가는 영혼들이 구원함을 받고, 어둡고 더러운 세상이 밝아지고 정화되며,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위에 확장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은 교회는 하나님을 슬프시게 하며 사람들의 조롱과 지탄의 대상이 될 뿐이다. 예수님이 네 번째로 편지를 보내는 사데 교회가 바로 그런 교회였다.

 

두아디라에서 동남쪽으로 48키로 쯤 되는 곳에 위치한 사데는 예수님이 이 편지를 쓰시기 700여 년 전에는 상업이 번창했으며, 군사적으로 요충 지대였던 부유하고 중요한 도시였다.

 

그러나 초대교회 시대의 사데는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을 간데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련가 하노라”란 길재의 시조가 생각날 정도로 지난날의 찬란한 영광은 찾아볼 수 없는 도시로 변해있었다.

 

경제적으로는 그런대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폐허처럼 되어버린 이곳에 생기를 불러일으켜야 할 교회마저 메말라 가는 나뭇잎처럼 되어가는 것을 보며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예수님이 이 편지를 보내신다. 예수께서 서두에서 “하나님의 일곱 영”을 가지셨다고 밝히신 것은 그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으셨음을 상기시키신 것이다.

 

일곱 별은 예수께서 주인이신 교회를 의미한다. 따라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의 소유자이심을 밝히시며 편지를 쓰시는 까닭은 사데 교회를 칭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꾸짖기 위해서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가 누구신가를 들어내신 다음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니 죽은 자로다.”라 말씀하신 것이 그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예수께서 지적하시는 사데 교회의 행위는 에베소 교회의 경우처럼 그들의 주를 위한 수고와 인내가 얼마나 큰 가를 아신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생명력을 잃어버렸음을 알고 계시다는 말씀이시다. 그때 사람들은 사데 교회를 “활력 있는 교회”라 불렀지만 실상은 죽은 교회였다. 그러나 사데 교회는 그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삼손이 요염한 이방 여인 들릴라에게 그의 힘의 원천이 머리털에 있다고 알려주자 그녀는 삼손의 머리를 밀어버렸다. 불레셋 군사들이 들이닥치자 삼손은 벌떡 일어나 그들을 때려눕히려 했다. 그에게서 하나님이 주신 힘이 떠난 것을 몰랐기 때문이었다(삿 18:22).

 

사데 교회도 이미 죽어서 사탄조차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교회가 되어버린 것을 그들은 알지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세상과 짝지어 하나님의 일을 등한시 하며, 하나님의 교회를 인간의 방식과 계획대로 운영하기를 원하는 사탄의 의도대로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회를 세속화 시키려는 그 같은 사탄의 계책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예수님이 자기들이 죽은 지도 모르는 사데 교인들에게 하신 첫 말씀은 “깨어나라.”였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심히 괴로워하시며 기도하실 때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피곤하여 잠들어 있었다. 그런 그들을 보고 예수님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마 26:41)고 말씀하셨다.

 

믿는 자들은 늘 깨어 기도해야만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 헤매는 사탄의 먹이가 되지 않고 믿음 위에 굳건히 설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벧전 5:8-9).

 

사데 교회는 잠들어 있었다.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도 없었고,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안을 누리지도 못했으며, 주안에서 형제자매 된 성도들과 서로 사랑하며 주님의 교회를 충성하며 섬기지도 못했다. 그들은 사탄의 최면술에 걸려 비몽사몽간에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같은 교회에 예수님은 깨어 일어나 아직 완전히 꺼지지 않고 조금은 남아있는 믿음의 불길을 타오르게 하라고 명하신 것이다. 사데는 주전 549년과 218년 두 차례에 걸쳐 방심하며 경계를 소홀이 하다 적에게 넘어갔었다. 예수께서는 이 역사적인 사실을 사데 교회에 상기시키며 그들이 깨어 일어나 갇혀 있는 사탄의 그물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이 잠에서 깨어나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를 생각해 내서 회개하고 그때로 돌아가라고 일러주셨다. 복음의 기쁜 소식을 받아드리는 순간 우리들의 마음에 잦아드는 기쁨과 감격은 크기만 하다. 그 기쁨과 감격과 감사한 마음을 혼자만 간직할 수 없어 널리 알리겠다는 생각 또한 구원받은 사람들 모두가 가지게 된다.

 

그때를 생각해 내서 그 시절로 돌아가 육신은 살아 숨쉬지만 영혼의 숨길은 꺼져가는 지금의 비참한 현실을 깊이 회개하고 새롭게 시작하라는 것이 예수님의 강력한 경고이며 명령이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에게도 그들의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칭찬하신 후에 그들은 첫 사랑을 버렸다고 책망하시며 그 잃어버린 처음 사람을 속히 되찾으라고 명하셨다.

 

사데 교회에게 하신 말씀도 그와 유사하지만 사데 교회에게는 책망만 하셨지 칭찬의 말씀은 없으셨다. 그러면서도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를 발견하여 회개하라고 하신 것은 그들의 영혼이 시들어가고는 있지만 회개하고 돌아오면 다시 옛날의 활기와 활력을 되찾을 수 있음을 알려주신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이 회개하기를 거부한다면 “내가 도둑같이 너희에게 가겠다.”고 말씀하신다. 그의 사랑의 충고와 경고 그리고 엄숙한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다면 “사랑의 하나님” 아닌 “심판의 하나님”으로 그들 앞에 불시에 나타나시겠다고 통보하신 것이다.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을 맞이하는 것처럼 기쁜 일은 없다. 그러나 심판관으로 오시는 하나님 앞에 서는 것처럼 두렵고 떨리는 일은 없다. 정의로운 심판관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숨겨진 죄악들을 들추어내서 공의로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 제자들에게 그가 언제 다시 오실지 모르니 “깨어 있으라.”고 여러 차례 말씀하셨다(마 24:42-43; 막 13:33,35,37; 눅 21:36). 예수님이 사데 교회를 향해 “도둑같이 오겠다.”고 하신 것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최후의 심판에 대비하며 깨어있으란 것은 아니었다. 교회의 사명을 망각하고 잠들어 있는 그들의 나태함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그들을 찾아가겠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택할 수 있는 특권을 주셨다. 그러나 선택에 대한 책임은 우리들의 몫이기 때문에 사데 교회는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는 선택을 했어야 했다.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사데 교회 전체가 죽은 것은 아니었다. 소수이긴 하지만 그들 중에는 사탄의 간계에 빠지지 않고 주님께 충성한 성도들도 있었던 것이다. 비록 적은 수일지라도 충성된 예수님의 일꾼들은 교회의 희망이요, 세상을 밝히는 빛이다.

 

하나님이 소돔을 멸망시키려 하자 아브라함이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심은 부당하다며 그곳에서 열 명의 의인을 찾아내면 그들을 용서해 달라고 간청한 사실을 상기하면 소수의 의인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하고 큰 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사데 교회에도 의와 승리와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하는 흰 옷을 입을 자격을 갖춘 성도들이 있음을 지적하시며, 그들에게 주실 상급에 대해 말씀하신다.

이기는 자에게는 흰 옷을 입히고,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우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신원 보증인이 되어주시겠다는 것이 예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상급이다.

 

바클레이(William Barclay)는 인간에게 가장 필요하고 소중한 것은 구원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 했다. 구원의 대열에 합류하지 못하면 인생 자체가 무의미하고 허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최대 소망인 구원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하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구원받은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는 책이 생명책이다(계 21:27). 예수님은 그의 뜻에 따라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의로운 승리자들의 복장인 흰 옷을 입혀주시고, 천국시민권을 발급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신 것이다.

 

예수께서 주시는 또 하나의 언약은 그를 구세주로 모셔드리는 사람들의 영구 보증인이 되어주시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약속을 해주시는 데도 “내게로 와서 구원의 기쁨을 누리라.”는 예수님의 사랑의 초대에 응하지 않는 이들이 적지 않음은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은 그런 불행한 사람들에게 구원받은 우리의 삶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과 자비와 은혜를 들려주며 천성을 향해 걸어가는 믿음의 순례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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