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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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편지-사탄과 대결한 버가모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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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니 거기는 사탄의 권자가 있는 데라. 네가 이름을 굳게 잡아서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재물을 먹게 하였고,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그러므로 속히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돌을 터인데 위에 이름이 기록한 것이 있나니 믿는 밖에는 이름을 사람이 없느니라.”(계 2:12-17)

 

버가모는 서머나에서 북으로 100키로 정도 떨어진 부유하고 아름다운 도시였다. 주석가 윌코크(Michael Wilcork)에 의하면 에베소가 아시아의 뉴욕이라면, 버가모는 아시아의 워싱톤과 같은 도시였다고 한다. 그곳엔 이십 만권의 책이 소장되어 있는 도서관이 있었으며, “의학의 신”으로 알려진 에스클레피우스(Asdlepius)를 섬기는 신전도 있었다.

 

버가모는 로마 황제를 위한 신전이 최초로 세워진 도시로서 황제 숭배의 중심지였다. 따라서 버가모 사람들은 열정적으로 로마 황제를 숭배함과 동시에 기독교는 무시하거나 괴롭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그들 마음대로 지배하려 들었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 버가모 교회가 황제숭배를 거부하며 예수님께 충성하기는 엄청나게 어려웠다. 예수께서 그 교회에 보내는 편지의 서두에서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라 하신 것은 그들이 적진 한가운데 진지를 구축한 군대 같은 상태에 있는 것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이 가지신 좌우에 날선 검은 하나님의 말씀이다(엡 6:17).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세상의 어떤 검보다 예리하고 무서운 병기다(히 4:12). 예수님은 그 검으로 버가모 교회를 위협하며 협박하는 악의 세력들과 싸워주시겠다는 의미에서 그가 가진 무기를 밝히신 것이다.

 

버가모 교회를 압박하는 사탄의 힘은 성도들의 힘만으로는 대항하기 힘들게 강했지만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바람에 날리는 겨처럼 될 것임을 알려주신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예수님의 보검은 사탄의 간악한 계교를 깨치실 뿐만 아니라 그의 말씀에 거역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사람들을 응징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예수께서 버가모 교회에게 하신 첫 말씀은 “나는 네가 사탄의 권좌가 있는 곳에 사는 것을 잘 알고 있다.”였다. 아시아의 행정수도였던 버가모는 우상들의 집결지였으며, 황제 숭배의 중심지였다. 그런 곳에 고립된 버가모 교회가 견디기 힘든 압력과 핍박을 당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버가모 교인들의 예수님을 향한 충성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예수님으로 인한 핍박과 고난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인내로 이겨내는 것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향한 박해는 날로 심해져서 마침내 버가모 교회에서 순교자까지 나오게 되었다.

 

주께 충성하다 죽임을 당한 순교자가 누구였는가에 대하여는 알려진 것이 없다. 혹자는 그가 버가모 교회의 목사였다고도 하지만 근거 있는 주장은 아니다. 그가 누구였는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버가모 교회가 예수님께 죽기까지 충성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그를 섬기다 죽임을 당한 안디바를 “나의 충성된 증인”이라 부른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초대교회 시대에 “순교자”와 “증인”은 같은 의미였기에 “예수님의 충성된 증인”은 주님께 충성한 “순교자”와 같은 의미였다.

 

예수께서 자기 자신을 가리켜 “충성된 증인”(계 1:5, 3:14)이라 하신 것을 생각하면 예수님은 그를 위해 죽기까지 충성한 안디바를 그와 동등한 위치까지 끌어올리며 안디바와 같이 고난당하며 교회를 지키는 버가모 교인들을 칭찬하며 격려하신 것이다.

 

에베소 교회나 서머나 교회처럼 버가모 교회도 완전하지는 못했다. 예수께서 “내가 네게 책망할 것이 있으니, 너희 가운데 발람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이 있다.”라 하셨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하면서 모압 평원에 도달하자 모압 왕 발락은 위기의식에 사로잡혀 이방 점술가 발람을 매수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간섭으로 발람이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않자 발락은 재물뿐만 아니라 영예와 권력까지 주겠다며 발람을 회유한다. 그러자 발람은 브올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에게 절하며 모압 여인들과 음행하는 죄악을 범하게 한다. 이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발람은 사탄의 주 무기인 “기만작전”을 사용했는데, 이것이 성공한 것이다.

 

이스라엘을 범죄 하게한 “발람의 꾀”를 현대어로 바꾼다면 “교회의 세속화”라 말할 수 있다. 때와 장소를 막론하고 사탄은 핍박이란 수단에 성도들이 굴하지 않으면 세상과 타협하도록 유화정책을 쓰는데 그 간교한 수법에 많은 교회들이 세상을 변화시켜야 할 사명을 잊어버리고 세상에 동화되어버리는 서글픈 현상이 일어난다.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면서 적당하게 세상 낙을 즐기는 것은 하나님도 이해하시며 허락하실 것”이란 유치할 정도의 유혹에 상당수의 사람들이 넘어가고 있음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믿는 자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성경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리라.”(요1 5:17)라 말해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세상을 미워하고, 세상 사람들을 멀리하며 경멸하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갈라놓는 세속적인 욕망과 미혹에 굴하지 말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인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교회는 세상의 어둠을 밝히며 정화시켜야지 세상의 영향을 받아 교회의 본질을 상실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탄의 권좌가 있는 버가모 성도들은 마귀들의 집중포화를 맞으면서도 항복하지 않고 싸웠다. 그러나 참으로 불행하게도 그들 중 일부는 하와가 먹어도 죽지 않는다는 사탄의 그럴듯한 꼬임에 빠져 금단의 열매를 따 먹은 것처럼 인생을 즐기면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는 발람의 거짓을 받아드렸다. 뿐만 아니라 발락의 가르침과 연관된 니골라 당의 교훈을 따르는 무리까지 생기게 되었다.

 

“발람의 교훈”, “발락의 가르침”, “니골라 당의 교리”는 서로가 연관 관계를 지닌 것으로 사람들을 혼란시키고 현혹시켜 범죄하게 하는 것들이었다. 특히 니골라 당의 교리는 발람과 발락의 속임수에 근거한 것으로 얼마든지 세상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가르침은 천국을 사모하되 세상의 영화와 쾌락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이들에겐 엄청난 매력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교회와 세상 사이의 중립지대에 서서 좌우를 살피며 살아가는 그들 나름대로의 편리하고 현명한 방법을 택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하며,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마 6:24)는 예수님의 말씀을 잊고 있었다.

 

그 때문에 예수님은 악의 세력에 대항하는 버가모 교회를 칭찬하시면서도 발람과 발락의 꾀를 따르는 이들을 책망하시며 그들에게 회개할 것을 명하셨다. 에베소 교회는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며 그들을 배척했지만 버가모 교회의 일부 교인들은 하와가 먹음직스러워 보인다고 먹어서는 안 될 열매를 따 먹은 것처럼 그릇된 니골라 당의 교리를 받아드렸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들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회개하기를 거부한다면 그의 입에서 나오는 날선 검 곧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의 무지를 깨우쳐 주겠다고 예수께서 선언하신 것이다. 이 말씀은 니골라 당의 가르침대로 사는 이들을 멸하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말씀으로 깨우쳐서 회개하여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하겠다는 말씀이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죄인들을 멸하시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신 것이다.

 

예수님의 버가모 교회에 보내는 편지는 승리하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세 가지 약속으로 끝난다. 첫 번째 약속은 이기는 자에게는 “감추었던 만나”를 주시겠다는 것이었다. 감추어진 만나는 십계명이 새겨진 돌 판과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더불어 법궤 속에 들어있는 것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인자하심을 상징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끝까지 그에게 충성하면 하나님의 영원하신 평안과 기쁨을 누리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두 번째로 주시겠다고 한 “흰 돌”은 깨끗하고 정결하게 살아 승리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하늘나라의 상급을 의미한다. 그 흰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하여 주시겠다는 의미는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고, “야곱“이 “이스라엘“로 변화했듯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되어 영생을 누리게 해주시겠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환난과 핍박을 이겨내며 그를 끝까지 충실하게 따른다면 아담과 하와가 상실한 영원한 낙원으로 복귀시켜 주실 것을 버가모 교회에게 약속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버가모 교회에게 주신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그의 발자취를 따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신 것임을 잊지 말고 매일 매일 자신을 죽임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 되어야 할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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