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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 이순신, 그리고 원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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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 이순신, 그리고 원균(1)

 

 성공한 민족은 역사에서부터 시작된다. 반면 자기의 역사를 부정하고 왜곡시킨 민족은 필연적으로 멸망하게 되어 있다. 이러한 사례를 우리는 세계사에서 무수히 경험해 왔다.


 며칠 전 한국문협 시조분과 동아리 회원이 너무 역사 얘기만 쓴다고 메일을 보내왔다. 본국엘 나갈 때마다 자주 만나 담소를 나누던 분인데, 친하기 때문에 이런 조언도 하는구나! 고마운 쪽으로 마음을 돌리지만, 그 전부터 잘 알던 사이라 그 분의 의도가 진정한 충고를 벗어난 편협한 조언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요즘같이 험난한 시국에 문인이 역사 이야기를 안쓰면 무었을 써야 하는가? 방랑시인 김삿갓처럼 죽장에 삿갓 쓰고 구름 따라 세월 따라만 읊어야 하는가? 백사장에 않아 철썩이는 바다나 바라보며 비분강개나 하여야 하는가? 한가하게 남의 글이나 인용해 시절 타령이나 해야 하겠는가? 명색이 중견 시조인으로서 할 말이 아닌 것 같다. 


 예컨데, 롯데제과에서 선전하는 껌 선전을 보자. 롯데 껌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롯데 껌을 선전한다. 두 말할 것 없이 자기 기업의 위상을 살리려는 일조이석의 이득을 노린 것이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수십 수백 번의 역사 얘기를 해도 손해나는 것이 없다.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선다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도록 가르쳐도 시간이 아깝지 않다. 그래야만 불의와 정의를 구별할 줄 아는 정의의 사도가 나올 것이다. 자칫 편향되어 일제 때 어용학자처럼 되어버리면 그야말로 우리의 역사는 왜곡의 수렁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변호인의 배우 송강호가 지난해 12월 17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제35회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당초 명량의 최민식이 우세할 거라는 예상을 깨고 송강호가 받은 것이다.


 이에 앞서 최민식이 부산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고, 소감에서 자신이 너무 시건방을 떨었다고 자책했다. 그 성찰이 진심인 지는 가늠할 수 없지만 외관상으로는 보기 좋았다. 하지만 이번 최민식이 송광호에 밀린 것은 아마 그 한마디가 팬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결국 대중성 견지(見地)로 보면 ‘변호인’이 ‘명량’보다 국민의 성원을 더 받은 것 같다.


 이 두 작품은 상반된 영화이지만 관람자 1천만 명을 돌파한 명실 공히 걸작임엔 누구도 부인 못할 것이다. 


 ‘변호인’의 특징은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부패를 적나라하게 파헤쳐 무디어진 삼권분립의 경종을 울렸다고 하면, ‘명량’은 일제의 의해 우리 선조들이 겪은 임진왜란, 정유재란의 고초와 피 맺힌 원한을 사실적으로 파헤쳐 국민들로부터 시원하다는 칭송을 받은 역사 대하드라마라 하겠다.


 ‘명량’은 시작부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시작하자마자 영화에 대해 제작진들과 배설 문중 사이에 상호 이해를 놓고 의견들이 분분했다. ‘명량’ 영화에 나오는 “배설장군이 제작진들로 인해 명예가 훼손되었다고 배설 문중에서 법에 호소한다"고 했다. 


 조상을 섬기는 봉건 유교사상에서 본다면 배설 문중으로서는 당연한 처사라 하겠다. 아무리 삼강오륜이 땅에 떨어져 세상이 바뀌었다 해도 우리는 아직 조상을 섬기는 유교문화권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족보와 혈통을 괜히 중요시 하는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요즘 지각(知覺)있는 젊은이들은 조상의 뼈를 찾기 위해 족보를 찾느라 혈안이 되어 있는 이 때에 제작진들의 처사는 결코 객관적으로 볼 수가 없다. 조속히 쌍방이 원만하게 해결되길 바란다.


 제작진들은 영화는 영화니까 그냥 영화로 봐달라면서 버텼다. 허나 역설적으로 자기 조상들이 이런 일을 당했다면 어떻게 대처를 할 건가, 미뤄 짐작하건데 난리법석을 치르지 않으면 다행이다. 


 물론 그동안 공들여 만든 영화가 훼손되어 손해가 많았을 것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배씨 문중의 실추된 명예를 십분 생각한다면, 제작진들의 이해타산은 상쇄(相殺)된다. 이쯤에서 정중히 사과를 하는 것이 온당하다고 본다.


 도대체 ‘명량’ 영화가 어떠 하기에 이 난리를 치나 궁금하던 차, 공교롭게 친한 지인이 표를 주어 보았다. (명량이 처음 나왔을 때) 한마디로 만화도 이런 만화가 없었다고 진보 논객 조국 교수가 폄훼했다. 며칠 사이에 1천만 명 관객을 돌파했는데도 말이다. 


 이에 국민들로부터 뭇매를 맡는 것을 보곤 대한민국의 최고 지식인이 왜 이런 소리를 했을까 궁금하던 차에 실제 보고 나니 그의 논평이 백번 지당했고 나 역시 공감이 갔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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