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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불 갈등의 캐나다 역사(31)
chungheesoo

 

(지난 호에 이어)

그 동안 245년간 퀘벡 사회 전체를 지배해온 성당의 문제점이 제 2차 대전 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외부와의 접촉이 별로 없었던 퀘벡인들이 제 2차 대전에 대거 참전하면서 외부사회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여 퀘벡 사회의 폐쇄함과 낙후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들은 이러한 폐쇄성과 낙후함을 성당의 절대적 지배와 연결시켰다. 그들은 성당의 절대 지배로 인해 개개인의 사생활이 획일화되었고 창의력이 없고 개인 자유가 박탈 당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또한 성당은 정계와 유착함으로 정계의 부패를 묵인 하는데 일조를 했다고 비난했다. 더 심각한 것은 카톨릭 성당이 영국계 캐나다인과 유착하여 퀘벡 주민의 복리보다 퀘벡 지도층과 영국계 캐나다인의 이익을 위한 일을 했다는 비난이었다.

하여튼 1960년대까지는 카톨릭 성당이 퀘벡 사회를 총체적으로 지배한 것은 사실이었다. 실은 필자의 Laval 대 동기 한 분이 “Nous vivons dans la peur de soutane noir-우리는 신부들의 까만 수탄(신부의 옷) 공포 속 안에 산다.” 라고 주장했다. 카톨릭 성당에 대한 반발은 조용한 혁명의 핵심적 동기가 되었다.

 

7.1.4 문화적 배경

문화적 변수는 사회개혁의 필요성 및 긴급함을 외쳤다. 퀘벡 국가주의자 (Quebec nationalism)들은 음악, 소설, 연극, 영화 등의 예술계로 퍼졌다. 필자의 Laval 대학의 동기인 유명한 가수 Gilles Vigneault 는 “ Mon pays ce n’est pas mon pays…..” (내 나라.. 내 나라가 아니야…) 라는 노래를 작곡하고 스스로 불렀다.

내용은 이렇다. “나는 퀘벡이라는 나라에서 살지만 내 나라가 아니다…” 이 노래는 20년간 퀘벡의 애국가가 되었다. 또한 파티의 노래가 되기도 했다. 이 노래는 퀘벡인이 합심이 되고 퀘벡 해방이라는 목적을 중심으로 한 정치적 단합의 구심점이 되기도 했다.

당시 국가 TV(CBC 불어 네트워크인 Radio Canada)에서, Tig Tag 라는 연속 드라마가 있었다. 내용은 성당이 지배하는 사회생활을 묘사한 내용이었다. Gratin Gelina의 연극은 버림 받은 서자(퀘벡주)의 비참한 생활을 보이는 내용이었다. Marcel Dubé TV 드라마는 억압적인 퀘벡 전통 문화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자매 이야기다.

 요약하면 퀘벡의 조용한 혁명은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배경을 두고 일어난 거대한 사회혁명이었다. 예술계는 이러한 혁명의 필요성, 긴급성 및 합리성을 외치면서 혁명에 불을 붙였다. 그런데 조용한 혁명은 하루 아침에 된 것은 아니다. 준비 기간이 있었다. 준비 단계를 거쳤다.

 

7.2 준비단계 (Gdbout 수상)

조용한 혁명은 당시 자유당 수상 Godbout (1940-1944) 때 준비단계에 들어갔다. 놀라운 사실은 1943년에 처음으로 퀘벡 여성이 투표권을 부여 받았다. 캐나다 타 주의 여성은 1918년에 이미 투표권을 받았다는 것을 알 때 퀘벡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낙후 되었는지를 알만하다.

또 하나의 개혁은 민간 기업인 Montreal Light and Power Co. 라는 전기 회사를 국유화했다는 엄청난 정치적 결단을 했다는 것이다. 당시 민간 기업을 국유화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던 큰 사건이었다.

10년 후에 독립당 수상 Rene Lévesque 가 모든 전기 회사를 모아 지금의 Hydro-Québec 사를 세운 것이다. Godbout 정권시 온타리오주와 비교할 때 퀘벡 경제는 턱없이 낙후된 상태에 있었다. 이유 중의 하나가 산업화 사회의 현대화에 절대 조건인 전력(electric power)이 부족했다는 것이었다.

 한편 Godbout 정권은 노사관계 개선을 시도해 보았다. 당시의 노사관계는 억압적 사용자와 힘없는 노동자 간의 일방적 지배와 통치였다. 더군다나 주요 사용자는 영국계 캐나다인 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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