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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100주년 기념]조선은 왜 실패하였나(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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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나 그 외 다른 가난한 나라의 빈곤에 대해 대부분 학자나 평론가는 그 주요 이유를 지리적 위치 때문이라고 한다. 대부분 사막이고, 강우량이 부족하여 토양과 기후가 농업에 부적합하고, 이들의 문화적 속성이 경제발전과 번영을 저해하는 이슬람적 신념을 갖고 있는 탓이라 한다. 또는 지배층이 나라번영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알지 못해 그릇된 정책을 시행하기 때문이라 한다.


이런 학자들은 백성을 희생시켜서라도 자기 배만 부르면 된다는 소수 권력층이 이집트를 다스려 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척 하는 것이다. 이집트 무바라크 대통령(1981-2011년 재임)은 개인 재산이 700억 달러에 달한다.


과거 몇 번 혁명이 있었으나 바뀐 것이 없다. 여러 의견이 있으나 가장 큰 걸림돌은 정치권력을 소수층이 독점하고 제멋대로 하기 때문이다. 이는 여러 다른 나라의 빈곤을 설명하는 보편적 이론이다.


한 나라의 빈부를 결정하는데 경제제도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지만, 그 나라가 어떤 경제제도를 갖게 되는지를 결정하는 것이 정치제도이다. 정치와 경제제도의 상호 작용으로 한 국가의 빈부가 결정된다. 관료가 부패하면 반드시 망한다.

 

 

(지난 호에 이어)


스탈린과 공산당 정치국이 마음을 바꾸면, 이전 계획이 뒤집어지고 무시된다. 현실이 그러니 고스프란은 의사 결정을 하기 꺼렸다. 


더욱이 잘못된 결과가 나오면 결정에 참여한 자는 총살 당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책임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1937년 인구조사를 했다. 결과 1억 6200만이었다. 스탈린이 기대한 1억 8천만에 한참 모자랐다. 3년 전에 발표한 1억6800만에도 못 미쳤다. 그 동안 숙청과 기아 탓이었다. 스탈린은 인구조사담당자들을 시베리아로 보냈다.


2년 후 다시 조사를 했다. 이번에는 스탈린의 의도를 알아채고, "자세히 알고 보니 1억7000만 이었다"고 발표했다. 스탈린도 소비에트 경제에서 인민이 열심히 일할 인센티브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1930년대부터, 소련 노동자도 목표 생산량이 달성되면 상여금을 받았다. 꽤 많은 상여금을 주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목표생산량은 당연히 지난해 생산량을 기준으로 작성된 탓에 상여금을 받기 위해서는 목표생산량이 매년 상향되어야 하고, 계속 더 많이 만들어 내야 하기에 고달프게 됐다.


1940년대에 접어들자 지도자들은 이런 잘못된 인센티브제도를 알게 되었다. 당근뿐 아니라 채찍도 함께 써야 한다고 결정했다. 법을 만들어 열심히 일하지 않는 노동자는 모조리 범죄자로 취급했다.


새로 만든 법은 허락 없이 작업장을 20분 이상 비운 자나, 무단결근자는 25% 감봉, 또는 6개월 강제노동이다. 그 결과 1940년부터 1955년 사이에 성인 3분의1이, 그런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그 중 25만이 총살, 1500만이 감옥, 250만이 시베리아로 갔다. (매년 농땡이로 감옥 가는 인구가 100만). 


그래도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 결국 1987년 고르바초프가 이런 착취적 제도를 벗어 던지자 공산당은 흔들렸고, 소련은 와해됐다.


 북한 이야기


1945년 일본이 항복하고, 한반도는 두 동강이 났다. 1950년 북한은 남한을 침공했다. 황평원이 동생과 헤어진 것도 이 무렵이었다. 형은 가까스로 인민군 징용을 피할 수 이었고 이후 남한에서 약사로 일 했다. 의사인 동생은 북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50년 만에 이산가족 행사에서 둘은 만났다. 동생은 북 공군에서 일하고 있었다. 북에서는 괜찮은 직업이다. 동생은 잘 살고 있다고 말했지만 형의 눈에는 삐쩍 마른 모습이었다.


형은 북쪽에서 나온 가족들이 돈을 부탁한다는 말을 들은바 있어 동생에게 돈을 주려 했다. 동생은 "가져가봐야, 그 돈 내놓으라 할 테니, 그냥 넣어두라"고 했다. 동생이 낡은 외투를 입고 있어 “그 외투를 벋고 이걸 입고 가라” 했으나, 동생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 없다. 여기 오려고 정부에서 빌린 것이다"


독자도 아는 바, 남북간 경제격차가 크다. 1945년 두 정부가 판이한 경제운용 방식을 택하면서 운명이 갈렸다. 오늘날(2019년 신년사) 이들이 경제개발에 매진 하겠다는데…?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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