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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을 읽고(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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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2. 청일전쟁의 전운과 제물포


비숍 여사는 정치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으나, 당시 조선 남부에서 시작된 동학란 소문, 그리고 청일전쟁 전야의 광경을 이야기 해주고 있다. 그녀가 원산을 떠나 증기선을 타고 부산에 도착하니, 일본 포함이 정박해있고 일본 군인 200여명이 언덕 위 불교 사원에 숙영하고 있었다.


다시 제물포에 도착해 보니 그곳은 부산과 달리 매우 흥분된 분위기였다. 거대한 일 전함 6척, 프랑스 배 2척, 중국 배 2 척, 러시아 배 1척이 외항에 늘어서 있었다. 일 수송선에서는 군인, 말 그리고 쌀과 전쟁 물자를 하역하고 인부들이 그것을 해변에 쌓고 있었다.


배에서 내린 여사는 그토록 활기 없던 항구가 바뀌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거리에는 일본 군대의 행진소리가 울려 퍼지고, 모포나 마초를 실은 마차가 길을 메웠다. 거리마다 일본인 집은 모두 막사로 변해 군인으로 가득하고, 발코니에는 소총과 군장들이 번쩍였다. 


무기력하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 못해 멍한 상태에 빠진 조선 사람들은 일 진영으로 변해버린 거리를 공허하게 응시하면서 길가에 축 늘어져 있었다.


일본군은 100마리의 말과 200명의 인부를 이용하여 일 영사관으로부터 한양으로 총알, 포탄을 수송하고 있었다. 마을의 보초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심문했다. 그들은 동학란 봉기로 재한 일 거류민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그들의 목표를 은폐하고 있었다,


조선의 남쪽에서 일어난 반란은 관리의 수탈에 격분한 농민들의 반란이었으나 처음부터 그 명분이 뚜렷하여 그 지도자는 모반자라기보다 차라리 무장 개혁자라 부르고 싶었다.


조선의 대신과 수령들은 나라의 복지에는 전연 무관심한 채 오직 자신의 재산을 모으는 데만 주력했고, 그들의 탐욕을 제어할 길이 없었다. 지난날 관리가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과거는 이미 뇌물, 흥정, 매관매직으로 대체되었고, 지방으로 발령받은 관리들은 그냥 한양에서 살고 있었다.


''그들은 평화로운 시기에는 아첨하고, 혼란 시에는 도망갔다'', 수 없이 많은 소문 가운데 왕이 동학란을 진압하기 위해 한 장군에게 300명을 주어 보냈는데, 동학군과 전투하면서 300명 모두 동학군에 투항하고 장군은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이는 여러 정황으로 볼 때, 홍계훈 장군의 황룡촌 패전을 의미하는 듯하다.


일본은 3개월 동안 6000명을 상륙시켰고, 한양 남산에 대궐과 수도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위치를 점령했다. 또한 제물포와 한양에 있는 일인을 보호하기 위해서 이런 조치를 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극동의 정치를 공부하는 사람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일은 이미 정확한 조선 지도를 만들었고, 조선 내 강의 깊이와 폭을 측정했으며, 3개월 동안 조선의 쌀을 사들였고, 중국 군대의 형편에 대해 중국인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한양에 일 군이 나타나자 중 영사관의 30명 부인들은 황급히 중국으로 돌아가는 배를 탔고, 곧이어 800명의 중국인 남자들이 제물포를 떠났다.


중국인 거류지에서의 공포는 대단해서, 평시 침착하고 상황판단이 빠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평소 잘 따르던 중국인 하인은 이를 꽉 물고 영어로 ''나는 죽게 됐어, 나는 죽게 뙜어''라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제물포에서 잊을 수 없는 그날 저녁 부영사가 찾아와 조선을 떠나야만 한다고 충고했다. 그의 진지한 표정으로 볼 때, 충고를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날 밤 영국인 동료 2명과 함께 일본 기선 하고마루를 타고 발해만으로 향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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