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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왜 실패하나(13)-무적함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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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호에 이어)
그러나 영국 하워드 사령관은 드레이크가 부사령관으로서 예하 함대를 인솔해야 하는 임무를 이탈, 예하 함정이 부사령관의 위치를 몰라 진형이 분산되는 혼선이 잦자 해임시킨다.


덕분에 일찍 런던에 입항한 드레이크는 당시 넉넉지 못한 재정에 동원된 많은 선박에 지불할 사용료가 없어 걱정하는 여왕의 고민을 해결해주어, 여왕의 신임을 듬뿍 받게 된다. 나포된 배는 스페인 해군 봉급 운반선이었다.


시도니아 경이 이끄는 무적함대가 칼레항에 도착, 닻을 내리고 파르마 공작 예하의 지상군을 기다리게 된다.


마침 강한 바람이 스페인 함대 쪽으로 불고 있어, 하워드 제독은 야음을 틈타 화공을 계획한다. 8척의 배에 기름과 가연물질을 가득 실어 불을 붙인 후 스페인 함대 속으로 돌진시킨다.


 당시 함선은 나무 선체의 방수를 위해 송진을 사용했는데, 이것이 불에 취약했다. 스페인 함대는 불꽃이 튈까 봐 황급히 닻줄을 끊고 회피한다. 이로서 화재의 위험은 피했으나 함대의 진형이 흐트러졌다.


다음날 동이 트자 영 함대가 흩어진 스페인 함대를 공격, 3척을 격침시킨다. 그 다음날 스페인 함대는 진열을 정비하고,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영은 맹렬한 태풍 때문에 공격을 멈추고 기다렸다.


무적함대는 탄약이 얼마 남지 않았으나 초승달 대형을 유지, 적을 맞이하여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투를 시작하기도 전에 스페인 함대는 바람과 해류로 계속 해안 쪽으로 밀려, 좌초 위기에 처하게 되었고, 더욱이 닻이 없는 함선들은 잠시도 편히 안전 위치를 지키기가 불가했다.


이런 조건 속에 마치 모든 것이 이렇게 끝날 것 같았는데 돌연 바람 방향이 바뀌어, 함대는 북으로 밀리면서 탁 트인 바다에 이르게 되었다. 시도니아 공작은 칼레로 돌아가 지상군을 기다리자니 이미 항구는 영 함대에 봉쇄되었고, 배는 여전히 북으로 밀려가는 상황에 도리가 없다고 판단, 임무를 포기하고 귀국하기로 결정한다.


영 해군도 탄약이 떨어져 더 이상 전투를 계속할 수가 없었다. 해전은 이렇게 끝났다. 스페인 무적함대는 침몰된 배는 많지 않았으나, 많은 손상을 입은 함대로 고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식량도 부족했고, 물통이 샜기 때문에 물도 귀한 상태였다.


더욱이 아일랜드 북서 연안을 돌면서, 심한 태풍을 만났는데, 이 태풍이 2주간 계속되어 피폐한 배에 피해가 계속 되었다. 그간 전투에서 살아남은 23척의 배가 해안에 좌초되고 침몰된다.


출항 4개월 만에 스페인에 도착했을 때는 리스본을 떠난 전함 60척 중 반이 사라진 후였다. 이로서 무적함대는 사라지고, 해상통제권을 장악한 영은 제1 강국으로 성장한다.

 

 결론


무적함대가 사라지는 세계사의 전환에서, 해전의 결과는 드레이크보다 태풍의 위력에 의해 결정되었으나, 우리의 주의를 끄는 점은 역사의 순간에 여왕이 보여준 지도력이다.


조선에도 이순신이 있었고, 신라에는 장보고가 있었으나 이들은 감옥에 보내지거나 살해된다. 중국 명나라도 60여 척의 함대를 이끌고 인도양을 지나 아프리카 연안까지 원정했던 정화가 있었으나, 그가 죽자 어인 일인지 명은 스스로 함대를 파괴한다.


영국은 해적 드레이크를 키워, 일등국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점을 되새겨 보아야 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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